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⑥ 총선 앞둔 시기...문화예술 정책 꼼꼼히 살펴야

올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도내가 술렁인다. 누가 출사표를 던졌고, 누가 여론조사에서 우위인지 연일 새로운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거론되는 이들은 대부분, 전직 관료, 변호사, 단체장 등 사회적으로 권력이 집중된 분야의 인물들이다. 영향력 있는 주요 기관과 제도에서 경륜을 쌓은 사람들이 정치계로 입문하는 것이 오래된 관행이기 때문이리라.

출사표를 던지는 이들은 한 목소리로 과거와 다른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겠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은 집 걱정, 일자리 걱정, 육아 걱정이 없고, 자격만 갖추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사각지대에서 기본적인 생활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줄어드는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복잡하게 엉키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다. 과연 얼마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까? 나쁜 세상과 좋은 세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나쁘면서도 동시에 좋은 것인데, 한 사람의 정치인이 펼칠 수 있는 역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권자는 계속 실망해왔다. 그러나 정치계에 대한 실망이 커져도 정치에 몸을 던지는 이들은 줄지 않는다. 

예술가는 어떨까? 예술가가 정치에 참여하는 사례가 전혀 없지는 않다. 과거의 전례를 보면 예술가의 정치참여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현실정치의 장으로 들어가 타 분야의 인물과 경쟁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돈과 영향력을 가진 타 분야와 경쟁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방법은 예술의 상상력으로 정치를 비판하고 해체하는 것이다. 기득권과 관습이 작용하는 정치를 ‘예술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각각의 사례를 보자. 

고희동(1886-1965)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나 이후 동양화로 전향하여 한국미술계의 지도자가 된 인물이다. 20세기 초 개화된 집안에서 서양의 문물을 익혔고, 일본 유학을 통해 세상을 경험한 그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거나 붓글씨를 쓰는 일에 머물지 않고 동료 예술가들을 모아서 조직을 만들고, 정치계와 협상할 줄 알았다. 타고난 언변과 카리스마로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지녔던 그는 미술계의 단체장을 맡다가 1957년 민주당 창당에 간여하였으며, 이후 참의원에 당선되어 정치계에서 활동했다. 비록 5.16 이후에 실권을 하고 다시 예술가의 삶을 살다가 사망했지만, 그는 현실정치에 능했던 예술가이다.  

요셉 보이스(1921-1986)는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조각가가 나무를 깎아서 형상을 만들듯이 예술가도 새로운 사고를 사회에 던지고 사회의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백남준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큰 키와 진지한 목소리로 사람을 압도하는 매력이 있었다.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중, 학교 측과 마찰로 학교를 떠났고 이후 기존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정치를 예술처럼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유국제대학’을 창설했고, 녹색당의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핵무기에 반대하면서 생태예술을 실천한 인물이다. 보이스의 ‘예술적 정치’는 현실정치를 바꾸기에 지나치게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 숨이 막히는 정치구도를 보면 보이스와 같은 인물이 그립다. 

최근의 현실을 보면 예술가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해지고, 신자유주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를 극으로 내몬다. 부자 예술가는 조수를 수십 명 거느리고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 듯 예술작품을 제작하는가 하면, 가난한 예술가는 길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공예품을 판다. 

최근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진행한 문화생태지도 구축사업에서 제주 예술인들의 경제적 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예술가 770명 가운데 예술 활동이 주업인 작가가 356명이고, 이들 356명의 월평균 소득은 125만7000원이었다. 그나마 절반에 가까운 예술가가 한 달에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고 한다. 2007년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서도 한국의 시각예술가 58%가 100만원의 월 소득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전체 작가의 3%는 연봉 1억원이 넘는 수입을 창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양극화된 환경에서 100만원 미만의 수입을 가진 예술가들을 저소득층으로 분류해 어떤 식으로든 국가의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예술가의 복지와 혜택을 확대해 달라는 집회를 본 적이 없다. 서울의 경우 간혹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학연과 지연으로 네트워크를 이룬 예술계는 동료 예술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지도 않고, 정치적 목소리조차 눈치를 보아야 하는 곳이다. 

아마도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예술가 대부분이 점잖음과 체면, 대학교육을 강조하는 부르주아 계층 출신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일상과 관습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예술의 고고함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개성을 강조하고 이상향만을 바라보면서 살 수 없다. 그들의 식탁에도 쌀과 고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조사 결과를 단순히 현실 파악의 단초로 삼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처우개선과 정책을 요구할 때이다. 보통 침묵은 황금이기는 하나, 현 상황에서의 침묵은 부르주아의 삶을 이탈한 현실을 부정하고 아직 괜찮다는 자기기만 사이에서 소극적인 예술가의 초상을 드러낼 뿐이다. 

올해는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말하는 예술가가 전면에 나왔으면 좋겠다. 최소한 이번 선거에서 어떤 출마자가 예술가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펴고자 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이를 토대로 예술가마다 의견을 피력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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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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