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 (32) 놀이 전문가에서 부부갈등 전문가로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아빠는 하늘, 엄마는 땅

음(陰)과 양(陽)은 동양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였습니다.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이죠. 양은 하늘을 상징하고, 음은 땅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아빠는 하늘, 엄마는 땅이죠. 하늘의 성질과 땅의 성질에 관한 비유는 『주역』이라는 책에 상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주역』의 첫머리에는 건괘(乾卦)와 곤괘(坤卦)가 나옵니다. 건괘는 모두 양으로만 이루어진 괘를 말하고, 곤괘는 모두 음으로만 이루어진 괘를 말합니다. 가족관계로 따지면 건괘는 아버지를 상징하고, 곤괘는 어머니를 상징하며 나머지 괘들은 자녀와 일가친척들을 상징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떻게 그리는지 살펴볼까요.

아버지(건괘(乾卦)) : 크고도 크도다, 아버지여! 만물이 여기서 시작하는구나. 하늘을 아우르고 구름이 움직이고 비가 내리니 각각의 생명이 형상을 얻었다. 그 시작과 끝까지 크고 밝은 빛이 함께 한다.

어머니(곤괘(坤卦)) : 지극하구나, 어머니여! 만물이 생명을 얻는구나. 하늘이 가고자 하는 길을 순순히 따라 가는구나. 땅은 두터우니 만물을 실어서 덕이 합하니 끝없이 이어진다. 하늘로부터 받은 큰 빛을 고스란히 머금으니 땅 위의 모든 생명이 혜택을 입는구나.
- 『주역』, 「단전」 건괘(乾卦), 곤괘(坤卦)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곡식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과정과 비유하면 얼마나 그럴듯한지 알 수 있죠. 열매가 자라려면 태양빛을 받아야 하고 비를 맞아야 합니다. 열매 하나를 땅 혼자서만 키우는 게 아니듯, 아기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에서 시작하죠. 아빠에서 출발한 에너지를 엄마가 소중하게 간직해서 생명을 얻는 거죠. 우리는 모두 하늘과 땅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동양의 지혜를 육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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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XABAY
부부갈등 전문가

서울시의 후원을 받아 놀이 전문가 양성 과정에서 문학을 이용한 놀이 분야를 강의했었습니다. 수강생은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습니다. 그 분들은 남편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뒤풀이를 하면 남편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놀이 특강을 하면서 만난 어머니들, 논어 읽기 모임을 하면서 만난 어머니들, 그 동안 저와 대화를 나눈 많은 아줌마들의 핵심 주제는 남편이었습니다.

20년 넘게 회사를 일궈 온 한 여자 선배에게 건강검진은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는 업무 스트레스는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여자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남편이 바람이 피거나 자식이 아픈 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엄마들은 알고 있죠.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남편과 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어머니들이 보여준 사고의 전개과정을 저 역시 경험했습니다.

어린이들과 책 놀이를 하거나, 공부방에서 가르칠 때 인성과 감정의 주제를 항상 만나죠. 아이의 삶을 따라 가다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문제에 항상 부딪칩니다. 아이가 감정적으로 불안정할수록 부모의 관계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저는 아이를 기르는 일이 부부 관계와 강력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치료사 스캇 펙 박사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충격은 아이에게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식 걱정을 하는 것 못지않게, 아이들은 부모님을 항상 의식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에 따라서 아이의 기분이 결정된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것입니다.

공자가 자천을 평가했다. “그는 군자의 인품을 지녔다. 하지만 이 나라에 군자의 표상이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면 그가 무엇을 본받을 수 있었겠는가?”
- 「공야장」 편

놀이 수업, 어린이 특강, 부모 특강, 가족 특강 등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공부방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나자 드디어 가족의 맨얼굴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성적과 공부를 목적으로 한 공부방이지만 아이들과 부모들의 성향을 관찰하기 충분하죠. 아이들 중에서는 사랑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조그만 것에 쉽게 흥분하거나 울고, 예의가 전혀 없고, 어른을 쉽게 여기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부모의 부부 관계가 연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부방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는 아이의 엄마입니다. 그래서 ‘회원모’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분들에게는 아이 아빠의 이야기를 좀처럼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아이와 아빠와의 관계가 깊은 고민이었습니다. 아이를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비유한다면 아이의 엄마 아빠는 원천(源泉)입니다.

[알림] ‘어부책-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코너는 다음 주부터 별개 연재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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