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놀이책 Q&A’로 책과 함께 즐겁게 노는 법을, ‘어부가’로 <논어>에 담긴 가족 생활의 지혜를 전하고 있는 오승주 작가가 이번에는 ‘그림책’을 펼쳐보입니다. ‘어린이와 부모를 이어주는 그림책(일명 어부책)’입니다. 그림책만큼 아이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하고 소통한 매체는 없을 것입니다. 재밌는 그림책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유년기 경험, 다양한 아이들과 가족을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어부책’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승주의 어·부·책] (2) 여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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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 테켄트럽 (지은이) | 김서정 (엮은이) | 봄봄 | 2013-11-05

아이가 꼭 가졌으면 하면서도 좀처럼 바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덕(德)’입니다. 덕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왜 나의 맛있는 닭고기를 상대방에게 양보해야 하는가. 나는 상대방보다 전화기를 10분 덜 가지고 놀아야 하는가. 왜 내가 먼저 놀리거나 때리는 행동을 멈춰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은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관념적이고 고차원적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손해를 보면 그 보답이 내게 돌아온다는 믿음은 어른들도 갖기 어려운데 어린이들에게 기대하기는 무리죠. <여우나무>(봄봄)는 ‘덕’에 대한 훌륭한  이야기책입니다.

숲과 동물들에게 아주 많은 덕을 베푼 늙은 여우 한 마리가 한적한 곳에서 깊은 숨을 내쉰 후 영원히 잠듭니다. 이야기는 바로 여우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우에게 신세 진 많은 동물들이 잠든 여우 곁에 하나 둘 모여듭니다. 여우에게 받았던 덕과 좋은 추억들을 자랑스럽게 꺼내놓죠.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정반대 이야기라고 보면 딱 맞습니다.

여우가 살아 있었을 때는 숲의 동물들에게 고마운 친구였고, 여우가 죽은 뒤에는 좋았던 추억을 서로 나누면서 행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여우가 죽은 자리에서는 여우나무가 자랐습니다. 추억과 사랑으로 자란 나무는 숲속 동물들의 또다른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죠.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여우에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바랐던 ‘덕’을 실제로 가슴속에 새기기 위해서는 ‘감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여우들 속에서 자랐고, 여러 그루의 여우나무가 제 보금자리였습니다. 외숙모는 항상 제가 찾아갈 때마다 따뜻하게 반겨주시며 ‘고맙다’, ‘착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칭찬을 해주시고 맛난 음식을 주셨죠. 큰아버지는 저를 몰래 식당으로 데려가 돼지갈비를 사주셨습니다. 대학 시절 만났던 서당 선생님은 돈도 받지 않고 오랫동안 제게 사서(四書)와 한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햇볕처럼 무궁무진한 덕을 받아 왔던 유년의 경험으로 <여우나무>를 다시 바라봅니다. 덕 있는 여우가 숲에 한 마리뿐이었다면 여우나무는 그렇게 무성히 자라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우의 덕을 고마워할 줄 아는 숲의 문화와 전통 덕분에 덕스런 숲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우처럼 덕이 많은 동물은 숲에 흔하지만 여우만큼 큰 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마다 덕이 있어야 큰 덕을 기억하고 고마워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제주도 속담에 “관덕정 설렁탕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덕을 흠뻑 적시게 하면 ‘덕’ 문제로 전전긍긍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덕 있는 부모 밑에서 덕 없는 자식이 자랄 리 없으니까요. 결국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문제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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