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고려시대 삼별초에 의한 마지막 항몽(抗蒙) 유적지다. 몽골은 고려 삼별초의 활동거점이었던 항파두리를 고려 원종 14년(1273년)에 점령한 후, 1374년(공민왕 23년) 최영(崔瑩)장군의 정예군이 원나라 목호(牧胡)군을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 전투에서 전멸시키면서 제주는 100년간의 긴 수렁에서 벗어난 역사적 아픔이 남아있다. 최근 항몽유적의 문화콘텐츠화라는 주제로 한국몽골학회에 논문을 발표한 김일우 박사의 논문을 매주 2회(수·토), 총 6차례 연재한다. #표시된 각주 내용은 원고 하단에 별도의 설명을 달았다. [편집자]

제주 항몽유적은 제주 지역이 우리나라 역사 서술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케 하고, 또한 100여 년 동안 제주 사람과 몽골족이 더불어 사는 일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통로로서의 역사성도 지니고 있다.

우선, 제주 항몽유적이 국사 서술과 관련해 지니는 역사성을 살펴보겠다. 

통상, 일 국가의 역사서술에서 가장 주요한 줄거리이자 뼈대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외항쟁사이다. 국가의 대외항쟁사는 국사 서술에서 빼놓을 수 없고, 국사교육에서도 우선시되는 주제임에 분명하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끈질기고, 장기적으로 전개됐던 외세항쟁은 40여 년 간 지속된 고려의 대몽항쟁으로 본다. 특히, 고려의 마지막 항몽세력은 제주 삼별초였고, 마지막 항몽거점은 제주 삼별초가 웅거하다 여·몽연합군에게 함락된 항파두성이었다.

한편, 몽골의 경우는 원종 8년(1267)부터 제주 성주를 조정으로 불러들이는 등 제주경영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때는 삼별초의 대몽항쟁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고려 왕정의 개경정부도 삼별초가 원종 11년(1270) 8월 진도로 들어가자, 관군을 보내 제주 장악에 나섰다. 그리고 진도 삼별초 경우는 원종 11년(1270) 11월 제주로 군대를 보내 개경정부의 관군을 제치고, 제주를 항몽의 배후기지로 확보했다.

고려 대몽항쟁기의 막바지 때 삼별초와 개경정부 및 몽골은 제주 선점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였고, 종내 삼별초가 제주 지역을 장악했던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제주가 동아시아를 잇는 바닷길의 요충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곧, 몽골은 세계정복사업의 일환으로 남송과 일본을 정벌할 때 제주 지역을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했고, 삼별초는 일본과 대몽연합전선을 도모하고자 제주 지역 확보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개경정부는 삼별초의 의도를 알아채고, 관군을 제주로 보내 방어케 함으로써 삼별초의 제주 진입을 막고자 했다. 그런 만큼, 제주 삼별초와 여·몽연합군의 결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겠다.

결국, 제주의 지정학적 위치가 제주 삼별초를 고려의 마지막 항몽세력, 또한 항파두성을 마지막 항몽거점이라는 위상을 부여하는데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대외항쟁사에서 제주 지역을 도저히 빼놓을 수 없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 국사와 제주사의 관계에서 제주 삼별초의 존재와 대몽항전을 보자면, 제주에서 일어났던 일이 처음으로 국사와 직결, 그것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제주의 항파두성과 그 밖의 항몽유적은 제주 지역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정면으로 등장하는 첫 통로가 되는 역사성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반도 육지부 문화의 이입을 엿볼 수 있는 통로라는 역사성도 찾아볼 수 있다.

삼별초의 제주입거는 그 이전 제주 진입의 외부세력 중 가장 규모가 컸을 것이다. 이들 경우는 성곽과 아울러, 관아 및 사원 등 주요 건물을 최고의 기술자에 의해 짓고, 선진의 농업 기술도 전해줬기에 제주문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본다. 이는 항두성내의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항파두성은 100여 년 동안 제주 사람과 몽골족이 더불어 사는 일의 단초를 제공했던 역사성도 지니고 있음을 살펴보겠다._#17

몽골은 원종 14년(1273) 고려와 연합해 제주 삼별초 정벌에 나아가 이들의 거점 항파두성을 함락하고, 이를 계기로 제주를 자신의 직할령으로 삼았다. 이후 몽골의 제주경영은 최영장군이 제주 목호세력(牧胡勢力)을 평정하는 1374년까지 100여 년 동안 지속됐다.

애초 몽골은 침략자로 제주에 들어왔고, 제주 사람은 몽골의 세계정복사업에 집단포로와 같이 동원되어 혹사당했던 예 등과 같이, 제주 사람과 몽골은 대립·갈등관계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몽골과의 교류로 우마사육이 제주의 전통적 산업으로 뿌리내려 경제력이 신장됐으며, 외부인이 제주로 유입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돼 인구가 늘어나는 등과 같은 제주사회의 규모 확대를 가져왔다. 특히, 많은 몽골족이 제주에 들어와 정착하고, 이들 일부와 제주 여성 간의 혼인도 이루어져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제주 인구가 크게 늘어났다.

제주사회의 규모 확대는 행정단위의 확대와 분화가 이루어지는 계기로 작용했고, 그 행정단위 명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제주의 산촌 형성도 제주와 몽골의 첫 교류를 통해 이뤄진 목축업의 번성 때문에 가능했다. 제주문화도 몽골적 요소와 융합됐다. 이는 제주어 가운데 몽골어 차용의 예를 10여 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고소리술’이 현재 제주의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_#18 고소리술은 제주의 전통주이거니와 소주에 속한다. 소주의 증류법은 페르시아에서 생겨난 뒤, 몽골로 유입되고, 이후 소주가 몽골의 정복사업과 세계제국 건설에 따라 동아시아권 등에 유포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동안 제주와 몽골이 가졌던 첫 교류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대립·갈등관계로 봤고, 그것이 제주사회에 미친 영향을 무시하거나, 극소화하려는 입장을 취해 왔었다고 하겠다. 여기에는 민족주의적 입장을 내세운 역사관과 아울러, 몽골제국 몰락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한족(漢族)을 중국지배의 정통으로 간주하고, 다른 종족은 오랑캐로 보는 화이론(華夷論)이 넓고, 깊게 이어져 내려온 영향 등이 크게 작용했을 듯싶다. 반면, 국가와 민족단위가 아니라 제주의 대외관계 및 제주 사람의 생활문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제주와 몽골의 첫 교류는 제주 지역의 정체성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이는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제주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 및 일본 열도 지역 등을 잇는 중간적 지점이고, 멀리 동남아 지역으로도 열려 있는 해상에 자리잡고 있다. 제주는 주변 지역과 교류가 잦을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제주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 및 일본 열도 지역 등과 잦은 교류를 가졌거니와, 이들 지역을 잇는 바닷길의 요충지로 주목돼 왔었다. 이로써 격변을 겪기도 했다. 또한 제주문화도 다양한 경로의 외부문화가 수용돼 토착화의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이들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예의 하나가 13세기 후반부터 100여 년 동안 교류가 이뤄졌던 제주와 몽골문화의 경우이고, 이것의 직접적 계기이자, 단초가 되었던 것이 제주 항파두성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만큼, 항파두성을 비롯한 제주의 항몽유적은 제주ㆍ몽골의 만남과 그에 따른 제주사회의 변화도 엿볼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역사성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요컨대, 제주의 항파두성과 그 밖의 항몽유적은 제주 도내의 그 어느 역사유적보다도 우리나라 역사와의 유기적 결합도가 높은 한편, 제주 역사문화의 정체성과 그 독특함을 대면할 수 있는 통로라는 역사성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4) 고고학·미술사적 관점

제주의 항몽유적·유물은 절대 편년에 가까운 연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미술사적 관점에서도 의미가 자못 크다.

역사유적·유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이들이 사용, 혹은 출현했던 시기인데, 제주의 항몽유적·유물은 연대가 거의 분명한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_#19 이는 제주의 항몽 관련 성곽, 건물터, 도자기, 기와, 무기 등은 고려시대의 성곽, 건축, 도자기 등의 연구에 매우 주요한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 항몽유적·유물이 절대연대에 가까운 편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항파두성의 사용 시기가 매우 짧은 기간에 한정됐다는 역사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곧, 제주의 항몽유적·유물은 13세기 당시의 보존도가 높은 유적인 것이다.

근래에도 항파두성에서는 13세기 당시의 생활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유물이 나왔다. 2011년 항파두성내 속칭 ‘대궐터’의 시굴조사에서 ‘고누놀이판’이 출토된 것이다._#20

고누놀이는 바둑과 장기의 원시적 형태, 혹은 윷놀이와 같은 것으로 고누판에서 한 칸씩 말을 움직여 상대방 말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승부가 갈리는 놀이였다. 고누놀이판은 10세기 초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의 청자가마터에서 출토됐고, 조선시대 때 전라도 담양에 세운 소쇄원(瀟灑園)의 마루에도 그려져 있음이 확인된다. 고누놀이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래되어온 전통놀이였던 것이다. 항파두성내 ‘대궐터’의 고누놀이판 출토는 고누놀이가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계속적으로 계승됐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또한 제주 삼별초 경우도 전쟁의 와중이기는 하나, 고누놀이와 같은 여가생활을 즐기는 등 일상적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한편 대궐터는 항파두성내 17곳 건물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건물, 또한 가장 돋보이는 고급유물을 사용한 시설물이 들어섰던 곳으로 드러난다._#21 이에 대궐터는 김통정장군 등 제주 삼별초 지휘부의 건물이 설치됐던 곳이라 한다. 고누놀이판의 대궐터 출토도 고누놀이가 지휘부에 속한 소수의 삼별초군이 즐겼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사실이라 하겠다. 

요컨대, 제주의 항몽유적ㆍ유물은 13세기 당시의 보존도가 높아 고고학·미술사적 관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13세기 고려의 역사문화를 생생히 해명하는 통로로서의 역사성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20
제주고고학연구소(2011),「사적 396호 제주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문화재 시굴조사(2차) 간략보고서」, 62쪽.

제주시·제주역사문화진흥원(2012), 앞의 보고서, 53~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