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선거 앞두고 판타지로 둔갑하는 마법의 언어 ‘개혁’

오늘날 어느 분야에서나 남발되며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유행어가 있다. 정책을 책임진 정부, 경쟁하는 정당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프레임으로 사용된다. 바로 ‘개혁’이라는 마법의 언어다. 개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임의적인 구호로 사용되면서 공동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개혁은 판타지로 둔갑한다. 모든 위기의 탈출구는 개혁에 있는 것으로 부각된다. 개혁은 문제해결의 만능열쇠인 셈이다.

개혁의 역사적 연원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국교로 정착하면서 두 가지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나는 정상을 일탈한 현재의 상태를 모범적인 기준이 되는 과거 일정 시점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기독교의 구원사상에 뿌리를 둔 것으로서 신의 나라라는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미래의 변화를 의미했다.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정치적 관점에서 개혁은 혁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영국의 정치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혁명은 말살과 파괴를 동반한 독재의 길이라고 경고하면서 옛 제도나 질서 중에서 유용한 부분은 유지하면서 무리한 변화는 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개혁은 혁명이 아닌 합리적인 중도로 자리를 잡았다.

마르크스주의가 득세하면서 개혁은 수정주의로 매도되었지만, 대중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개혁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독일 비스마르크의 복지제도, 미국의 뉴딜정책이 혁명을 저지하고 자본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개혁정책이다. 역사적으로 지속된 정치 철학 논쟁의 결과로서 개혁은 사회 모든 분야의 온건한 진보를 상징하게 되었다.

우리 정부수립 이후 주요 개혁정책은 토지개혁, 교육개혁, 의료보험, 국민연금제, 기초생활보장제, 무상복지, 재벌육성의 성장정책, 신자유주의와 규제철폐, 시장지배의 확대 등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현안인 규제개혁, 노동개혁, 금융개혁은 시장지배를 강화하고 성장을 높이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개혁 과정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미약한 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성장에 기여한 점은 인정되나 그 폐해도 만만치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이 성장프레임으로 지배력을 갖고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정부 개혁의 핵심은 기업의 노동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최근의 경제흐름은 노동의 감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비용의 감소는 소득 소비감소와 공급과잉을 유발하여 경제 활력을 감퇴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의 발생보다는 사라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개혁이 경제 활성화를 뒷받침할 수 없는 이유다.

일부 집단이 개혁 혜택을 독점한다면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 경쟁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개혁으로 발생하는 대량실직, 금수저·흙수저로 대변되는 양극화, 자살률 증가 등의 사회적 비용이 개혁의 이익을 상회할지도 모른다. 규제개혁이나 노동개혁은 대량해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오히려 인공지능의 자동화 시대에 기업의 비용절감을 위한 일자리 감축을 촉진할 수 있다. 현대 모든 기업은 사람 없는 완전 자동화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혁신 속도가 빨라지면서 공급과잉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위기와 개혁은 상시적이며 숙명적인 굴레다. 경제위기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개혁의 논리와 진단, 처방은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개혁의 영향은 명암이 분명하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세력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여 설득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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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개혁에 대중의 언어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적 언어유희로 대중의 약점을 공격하고, 개혁의 실체를 설득하지 못하면 빈말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정당들이 개혁의 원조를 자처하고, 정부는 국가경제가 금방 무너질 것처럼 협박한다면 국민들은 개혁혐오증에 빠지기 쉽다. 정부의 개혁 추진 방향이 위기를 강조하며 소통 없이 프레임을 만들고 이미지 창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또한 일부 언론은 개혁의 엔터테인먼트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소통 없는 개혁은 반개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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