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백매화
코앞에 설이고 보니, 치러야 할 일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며느리로서 죄의식이 앞선다.
얼마 전, 시모님께서 보내주신 매실차를 마시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들 녀석들이 차지하고 앉았던 컴퓨터. 실로 몇 년 만에 내게 왔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마시는 이 매실차는 시댁 마당에 열린 매실로 담근 것이다.
달랑 한 그루 있는 나무에 얼마나 달렸으랴만, 그래도 시모님께선 항상 우리 몫으로 2리터 남짓 보내오신다.
올 설에도 시댁 마당엔 매화가 피었을까?
컴퓨터를 아무리 뒤져봤지만 시댁에서 찍었던 매화꽃은 찾을 수 없었다.
2009년 도보여행 당시 찍었던 사진을 꺼내보았다.
같은 제주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뭍에 있는 것마냥 찾아뵙기 힘든 시댁.
이번 명절에도 매화꽃은 아들, 손자, 며느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해후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백매화
까치설날 서귀포에는 매화꽃도 귀향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복다복 모여서
새해엔 건강하세요, 덕담들이 오간다.
우리 설날 서귀포에는 매화꽃도 절을 한다
새해 첫날 이 아침 시댁 마당 한편에선
툭 터진 하얀 꽃들이 세뱃돈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