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놀이책 Q&A’로 책과 함께 즐겁게 노는 법을, ‘어부가’로 <논어>에 담긴 가족 생활의 지혜를 전하고 있는 오승주 작가가 이번에는 ‘그림책’을 펼쳐보입니다. ‘어린이와 부모를 이어주는 그림책(일명 어부책)’입니다. 그림책만큼 아이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하고 소통한 매체는 없을 것입니다. 재밌는 그림책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유년기 경험, 다양한 아이들과 가족을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어부책’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승주의 어·부·책] (3) 이젠 안녕

8994077170_f.jpg

마거릿 와일드 (글) | 프레야 블랙우드 (그림) | 천미나 (옮긴이) | 책과콩나무 | 2010-11-10 | 원제 Harry and Hopper (2009년)

아이를 키우거나 가르치는 일을 할 때에 있어서 ‘시간’은 무척 중요한 개념입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정적인 시간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면밀히 관찰하고 가다듬어야 합니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애완견의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한 어린이의 감정흐름을 세심하게 그려낸 <이젠 안녕>(책과콩나무)는 아이가 슬픈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애완견 호퍼의 죽음을 전할 때, 호퍼를 땅에 묻어줄 때, 아이가 호퍼와 뒹굴던 침대에서 자기를 원하지 않았을 때 아빠의 태도는 아름답습니다.

호퍼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다는 점이 성숙한 부모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학교에 가기 싫으면 오늘은 집에서 쉬어도 괜찮아.”라고 제안했을 때 주인공 해리는 가족의 배려를 통해 감정의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했기 때문에 일상을 바꾸지 않습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삶 안에서 늘상 있는 일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애완동물은 병아리였습니다. 이름은 꼬꼬였죠. 어머니는 병아리를 키워서 제게 삶아 주시려고 했습니다. 작은 마당에 울타리를 쳐놓고 다리는 줄로 묶었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처음 보는 대상과 친해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저는 꼬꼬를 오랫동안 바라만 보았습니다. 먹을 것을 줘보기도 하고 마당에서 뭐를 그리 쪼아대는지 한참을 보기도 했습니다. 강아지라면 함께 산책도 했을 텐데 다 큰 병아리였기에 그저 바라만 보았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죠.

꼬꼬와는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서 보니 꼬꼬의 다리만 줄에 달랑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땅에는 꼬꼬의 피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울타리는 너무 엉성했습니다. 범인은 옆집 개였습니다. 개가 다가왔을 때 꼬꼬는 다리를 붙잡고 있는 줄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저는 꼬꼬가 되어 상상했습니다. 며칠 동안 침울했습니다. 지금도 이 사건을 사로잡는 강력한 장면은 어머니가 옆집 개집 앞에서 욕을 하면서 돌멩이를 던지는 모습입니다. 어머니는 내가 화가 났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때 저는 슬펐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보여준 모습이 2차 충격이 되어 다시는 애완동물을 기르지 못했을 수도 있죠. 애완동물을 한번도 키워보지 못한 사람은 그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옆집 개 주인 아주머니는 미안했는지 꼬꼬보다 토실한 병아리를 선물해주셨지만 내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거절하셨죠.

<이젠 안녕>에 대해서 ‘시간’에 집중해서 말씀드렸는데, ‘환상’이라는 요소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시간과 환상이 적절히 섞인 채로 아이는 기운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10번 이상 살펴보면서 인물과 그림, 사건 전개 요소요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한다면 아이에게 찾아오는 부정적인 시간을 어떻게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는지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172966_197036_0138.jpg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