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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51) 설유화(雪柳花) / 김동욱

봄을 시새움하듯
한파가 몰아치더니
화원에 설유화가
활짝 피었네

긍휼히 여기시었나
반짝이는 면류관
은빛 날개를 달고
누리를 찾아온
천상의 어머니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는
소복 입은 잔잔한 손떨림으로
정화수 떠놓고 기원하시던
억세고 순박한 질경이 같은 사랑이었지

그런 사랑이
봄 화원을 그득 매우고 있네


김동욱 : 『문학21』로 등단. 시집으로 『아담의 원죄』가 있음. 

설유화(雪柳花)를 모르고 지금껏 시라는 걸 써왔습니다.
사전을 열어보니 ‘가는잎조팝니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휘휘 늘어진 장미 줄기에 순백의 작은 꽃들이 마치 면류관처럼 박혀 있는 형상입니다.
꽃샘추위 지나 4월 즈음에서 꽃망울을 터뜨린다 하니 아직은 이른 때인 것 같습니다.
이 봄에 꼭 한 번 만나봐야겠습니다.

설유화를 보면서 천상의 어머니를 떠올렸다면
유년 시절 우리네 어머니는 억세고 순박한 질경이 같은 사랑이었지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짓밟혀도 결코 푸르른 생명력을 놓친 적 없는 그런 어머니였지요.
동 트기 전 잔잔한 손떨림으로 정화수 떠 놓고 하염없이 기원하던 크나 큰 사랑이었지요.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동욱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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