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③ 《미국만들기》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지음, 임옥희 옮김(동문선, 2003년) / 이유선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 

▲ 《미국만들기》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지음, 임옥희 옮김(동문선, 2003년) ⓒ제주의소리

해가 바뀐 지 꽤 되었지만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희망은커녕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헬조선’과 관련된 블랙유머가 유행이고, 주가는 폭락하고, 고용은 더 불안해 지고, 대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다. 주변의 그 누구도 올해가 지난해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지 않는다.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유럽의 몇 나라들이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기도 예상보다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가 경제 불황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전쟁과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우리만 지옥에 사는 것은 아니라고 자위해 본들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하면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을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될까?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이런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자칫 잘못하며 ‘꼰대’ 아니면 ‘종북’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흙수저’와 같은 단어를 유행어로 만들면서 자조적인 농담을 즐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인빈곤률이나 자살률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이면에는 경제적인 양극화의 문제가 놓여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고용 없는 성장이 가능한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성세대는 취직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질타한다. 아버지의 세대보다 몇 배 나은 스펙을 쌓기 위해 고생한 젊은이들이 그런 말을 하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스스로를 의식이 좀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부류의 ‘꼰대’들은 젊은이들에게 현 상황에 대해 왜 분노하지 않느냐고 질책한다. 그들은 데모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자신들의 젊은 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이 그런 식으로 살았다가는 바늘구멍과도 같은 취업의 기회마저 닫혀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모든 문제를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갈등들, 예컨대, 세대갈등, 지역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여성문제, 이주 노동자의 문제 등이 경제적 재분배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수의 부자들이 재화를 독차지하는 동안 빈곤의 늪에 빠진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죽거나 얼마 되지 않는 밥그릇을 두고 서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서는 어린 독재자가 핵무기를 가지고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으니, 우리의 삶이 불안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경제적 빈곤, 다양한 사회적 갈등, 대내외적 위협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희망을 운위하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 없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희망적인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사실 이 물음은 포스트-자본주의를 고민하는 사회철학자들의 공통적인 물음이다. 많은 학자들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기본소득제와 같은 정책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고, 소규모의 지역적 연합에 기초한 대안 공동체나 국가 단위를 뛰어 넘는 탈 국가적인 공동체에 대한 모색도 이루어지고 있다. 월가의 해체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인 샌더스가 미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무한 경쟁에 기초한 능력주의 사회, 승자독식의 정글과 같은 사회가 지속되어서는 미래가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민주주의 공동체란 그 구성원 모두가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갈등을 대화로 풀어가면서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이다.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정파는 당장의 삶이 고단하더라도 서로 대화하고 돕는 과정에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주의자들은 현 상황이 늘 최상의 상황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정책 대안을 제시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일은 진보적인 좌파들의 임무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좌파는 늘 희망의 정파이다. 

20세기 초에 미국의 사상적인 국부나 마찬가지였던 존 듀이는 미국을 민주적인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간주했다. 그런 듀이를 계승하고 있는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미국만들기』라는 제목의 정치 에세이집을 통해 오늘날 미국의 상황에서 좌파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서술했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로티의 주장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애국심이 우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의 캠퍼스는 베트남전을 치르는 동안 반전, 반제국주의 구호에 의해 점령당했다. 미국의 강단 좌파들은 미국을 악의 축으로 간주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기류가 존재한다. 애국주의 좌파가 필요하다는 로티의 주장은 민주적인 정책 대안을 실현하는 데 여전히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며 아직은 초국가적인 단계의 대안을 모색할 때는 아니라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둘째, 소위 구좌파라고 일컬어지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좌파는 이론적인 파산을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오늘날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를 이론적 순수성의 영역에 가두고 현실적인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셋째, 대학의 주류가 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문화적 좌파는 문화 영역의 차별뿐 아니라 경제민주화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로티는 구좌파와 문화적 좌파가 서로 연대하여 경제적인 양극화를 없애고, 문화적인 영역의 차별을 극복할 대안을 마련할 때 사회적인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로티의 제안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단어가 합리적인 대화를 가로막고, 다양한 사회적인 모순들이 그 경제적인 원인을 감추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로티의 주장은 귀담아들을 만한 데가 있다.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면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어가는 일은 양립 가능할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진다면 세대 갈등이나 지역 갈등은 풀기 쉬운 문제가 될 것이다. 재벌의 탐욕과 북한의 독재를 동시에 비판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할 희망의 정파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희망찬 새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민주주의이며 상상력이 뛰어난 희망의 정파가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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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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