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놀이책 Q&A’로 책과 함께 즐겁게 노는 법을, ‘어부가’로 <논어>에 담긴 가족 생활의 지혜를 전하고 있는 오승주 작가가 이번에는 ‘그림책’을 펼쳐보입니다. ‘어린이와 부모를 이어주는 그림책(일명 어부책)’입니다. 그림책만큼 아이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하고 소통한 매체는 없을 것입니다. 재밌는 그림책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유년기 경험, 다양한 아이들과 가족을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어부책’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승주의 어·부·책] (5) 특별칼럼-그림과 그림책으로 보는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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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주

배움에 대해서 생각하다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수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책 놀이하면서 친해졌고, 공부방 하면서 매일같이 보며 공부했던 경험을 토대로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종이 한 장에 그려서 선물을 해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년 동안 배우는 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한 장의 종이에 표로 정리해 드디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방 아이들에게 학년별로 1년 동안 배웠던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려온 그림을 보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자신이 1년 동안 배웠던 것을 표현한 아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몇 개의 주제만 단편적으로 그릴 뿐이었습니다. 배운 게 생각나지 않는지 캐물을수록 아이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특히 고학년 남자아이들은 우뇌 자극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대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도 있었고, 그림을 그리라는 데도 깨알같이 글씨를 쓰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제 6학년이 될 남학생은 “금요일마다 그리기를 한다면 나오지 않을 거예요.”라고 선포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 역시 여기에 대해서 할말이 없는 것이 1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배움’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많은 가정의 아이들이 비슷한 일을 겪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은 아이들만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6년 동안 배우는 모든 것들은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초등 교육 계획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석학들과 교육전문가들이 참여하지만 현장에서의 시행은 전적으로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입니다.

한 아이의 학부모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 교사로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제주의 소리 칼럼 어부가(“초등입학시즌, 부모가 알아야 할 것들”.2016.2.20.)에서 이미 초등학생들이 6년 동안 배우는 전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이 뼈대 위에 살과 숨결을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한 끝에 지금 보시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에는 각 학년을 대표하는 그림책의 이미지들이 삽입돼 있습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배우는 과정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포인트만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림책을 중심으로 6년의 이야기를 펼쳐보겠습니다.

그림책으로 보는 초등학교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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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프레드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7
레오 리오니 (지은이) | 최순희 (옮긴이) | 시공주니어 | 1999-11-15 | 원제 Frederic

1학년 교육의 핵심은 ‘시(詩)’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제 4학년이 되는 한 여학생을 알고 있습니다. 무척 쾌활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죠. 하지만 ‘시’에 대해서만큼은 거부감이 컸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네 식구가 운영하는 고기집에 갔다가 카운터에서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라는 시를 써서 주었습니다. 답하는 시를 써서 달라고 했죠. 언제 어느 순간에나 시가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일상을 시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인’이라는 이미지가 제대로 박혀야 합니다. <프레드릭>을 1학년 대표 그림책으로 선정한 까닭입니다.

2학년: 지각대장 존

비룡소의 그림동화 6 l 존 버닝햄 (지은이) | 박상희 (옮긴이) | 비룡소 | 1999-04-06 | 원제 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 The Boy Who Always Late

2학년은 시로 연 문으로 펼치는 다양한 문학과 표현의 향연입니다. 인형극과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며 경험 떠올리고 상대방을 헤아리며 말합니다. 상황에 맞는 말과 글로 표현하고 말의 재미도 느낄 때입니다. 이런 특징들을 잘 담고 있는 그림책은 <지각대장 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이 겪는 여러 가지 상황과 이를 부정하는 어른, 그리고 통쾌한 존의 반응들은 2학년의 정서를 잘 담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3학년: 종이 봉지 공주

비룡소의 그림동화 49 l 로버트 먼치 (지은이) | 마이클 마르첸코 (그림) | 김태희 (옮긴이) | 비룡소 | 1998-12-22 | 원제 The Paper Bag Princess

3학년은 ‘관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교우 관계’가 핵심입니다. 친구의 말한마디에 울고 웃고, 친구와 놀다가 수업 시간을 잊어버리기 일쑤일 정도로 3학년 아이들은 ‘친구 사귐’에 대해서 모든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종이 봉지 공주>는 빼앗긴 친구를 되찾기 위해서 목숨까지 겁니다. 하지만 왕자가 배은망덕한 행동을 해서 시원하게 보내버리죠. 제가 그린 그림은 원작과는 조금 다릅니다. 용이 왕자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며 종이 봉지 공주가 즐겁게 작별인사를 하는 통쾌한 장면으로 설정했습니다.

4학년: 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l 권정생 (글) |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04-01

4학년은 식물의 한 살이와 지진과 화산활동 등 땅(지표 활동)에 관한 걸 배웁니다. <강아지똥>을 대표 그림책으로 정한 까닭은 ‘땅’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해주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똥이 민들레와 사랑을 해서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아이들이 느끼기를 바랍니다. 여러 대상과 대화를 나누고 제안을 할 정도로 아이의 관계가 넓어진 상황입니다. 4학년은 교우 관계를 넘어서 어른과 대화를 할 수 있고, 기초적인 수준의 제안을 할 정도로 두뇌회전이 빠른 나이입니다.

5학년: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호랑이 15 l 조대인 (글) | 최숙희 (그림) | 보림 | 1997-06-26

5학년은 3권 분립과 민주주의, 전통의 계승과 발전을 배웁니다. 약자들이 자신의 힘을 합쳐 크고 무서운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인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는 5학년의 정서를 대표할 만한 그림책입니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는 전래동화 중에서도 매우 흥미진진하고 통쾌한 작품입니다. 그 동안 우리 역사에서 펼쳐졌던 약자들의 저항인 수많은 의병 활동과 독립운동의 정신도 담겨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현실에서 5학년 아이들이 이 작품을 느끼면서 의미를 되새기길 바랍니다.

6학년: 돼지책

웅진 세계그림책 1 l 앤서니 브라운 (지은이) | 허은미 (옮긴이) | 웅진주니어 | 2001-10-15 | 원제 Piggybook

6학년 때 배울 주제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인권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 <돼지책>을 대표 그림책으로 정한 까닭입니다. <돼지책>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엄마가 자동차를 수리하는 모습입니다. 이전까지 엄마는 남편과 두 아들의 꿈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희생했죠. 하지만 가족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엄마의 인권을 지켜준 덕분에 엄마는 다시금 꿈을 생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6학년은 본격적으로 진로교육이 적용되는데, 그 전제조건은 서로의 ‘인권’을 지켜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을 짓밟힌 사람은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우리 가족에 맞는 ‘올해의 그림책’을 정해보세요

제가 고른 여섯 권의 그림책 어떠셨나요? 그럴듯한가요? 이것은 제 개인적인 기준일 뿐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담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마다의 가정에 맞는 그림책, 아이의 시절에 맞는 그림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림책을 학년별로 묶으려고 하는 까닭은 ‘이야기’가 가진 힘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묶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각 학년마다 배우는 게 무척 많지만, 아이들은 정작 배운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물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자연발생적인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게 할 수는 없겠죠. 초등학생을 둔 가족들이 만약 그림책을 읽는다면 자연적인 아이는 인간적인 아이가 될 것입니다. 이 두 차이는 무척 큽니다. 지난 번에 소개한 6년 동안의 초등 과정을 다룬 칼럼과 이 칼럼을 읽고 가족이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골라보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고른 책과 엄마가 고른 책, 아빠가 고른 책이 모두 다르겠지만, 그 선택은 ‘정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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