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춘 칼럼] 한라산이 제주, 서울 변두리를 흉내낼 텐가 

한라산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웅장한가. 천년을 내려오며 남축(南軸)의 진산이라. … 남쪽에 있어서는 두류산이 유명하고 북쪽에 있어서는 장백산이 유명하다. 금강산과 묘향산이 있으나 기이하고 빼어남을 독차지하지는 못하리라. 예부터 영주라고 불리는 이곳은 신선의 집이라. 영험한 신령이 엄연히 수호하니 속인들은 감히 엿보지 못하리라.

조선시대 제주 목사(牧使)로 왔던 청음 김상헌의 <남사록>에 있는 장관편(壯觀篇)이다. 지금 말하면 한양에서 제주 도지사로 온 양반이 한라산의 아름답고 신령스러움에 반해 쓴 시다. 한양의 번화로움에 빗대지 않고 한적한 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도시의 세속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신성하고 신령스러움을 발견하고 찬미했다. 아주 멋진 경치라고 여겨 ‘장관(壯觀)’이라 제목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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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2년 조선 숙종 당시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 목사가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제주 순력 전반을 기록으로 남긴 '탐라순력도' 화첩 중 제주조점 부분. 제주읍성 성정군의 군사훈련 등을 점검하는 그림이다. 현재 원도심에 속하는 관덕정이 있는 제주읍성 남쪽으로 웅장한 한라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는 한라산이 있어 칭송의 대상이었고, 한라산 자락이 바로 제주였다. 한라산의 웅장함과 그 자락에 낮게 펼쳐진 마을이 아직 아름답다. 낮은 쪽 마을이 높고 뾰족하게 집을 지어 한라산을 침범하면 제주도의 경관은 깨지고 만다. 한라산의 신성함도 사라지고 만다. 50층이 넘는 건물을 지어 제주의 랜드 마크로 삼겠다는 사업주의 뜻을 허락한 어리석은 전임 도지사의 행보를 보면 예와 지금이 어찌 이리도 다른가. 작금 도지사는 제주도의 가장 낮은 자락인 구도심에 20-30층이 넘는 건물을 허용할 뜻을 넌지시 내비췄다. 어디에서건 한라산이 말끔히 보이는 정책을 폈던 제주도가 이젠 서울의 3류 변두리를 흉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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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춘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구도심을 살리겠다는 심산임은 알 수 있겠다. 그런 정책이 서울의 변두리에서 늘 있었던 정책이니 제주에 가져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제주는 제주다. 웅장하고 신성한 한라산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주의 경관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 서울 북촌과 전주 기와집 골을 떠올려 보자. 오래 묵혀 두었더니 전통마을로 되살아났다. 제주 무근성도 지금은 쇠락한 모습이지만 조금 더 지나면 있는 그대로가 제주의 정취를 보여줄 날이 올 것이다. 제주의 낮고 평등한 습속에 어울리는 마을 만들기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한적한 산은 한적한 대로 즐기고, 영험한 산에서는 한번쯤 고개를 숙여 보아도 좋겠다. /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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