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 제주에서 길을 묻다] ① 귤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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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산 제주감귤은 연일 이어진 가을비와 한파·폭설로 치명타를 입었다. 땅에 떨어진 감귤들이 농민들의 안타까움을 그대로 나타낸다. /사진 제공=장태욱 ⓒ제주의소리

해마다 그랬지만 특히 지난해에는 귤 농사로 풍요로운 소득을 올리게 되길 기대했다. 수확 직전 까지도 행정당국에서는 2015년산 귤이 당도가 예전에 비해 높고 수확량은 평년보다 줄어들어 가격이 높게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기상이변이 우리 앞에 복병으로 도사리고 있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큰 태풍이 우리나라를 지나지 않은 게 첫 번째 악재였다. 단감, 사과 등 경쟁과일이 모두 풍년이 들어 헐값에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귤 가격이 예상보다 낮은 상태로 출발했다.

그리고 귤을 본격적으로 수확하는 11월에 접어들자 가을 강수량으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연일 비가 내리는데, 기상청에서는 이를 강한 엘리뇨의 영향이라고 했다. 신선해야 할 귤이 나무에서 썩어갔고, 잠시 날씨가 좋으면 물러진 귤들이 대도시로 무더기 출하되었다. 대도시 공판장에서 귤은 그야말로 쓰레기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수확이 늦어지고 해를 넘기자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한파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수확의 손길이 닿지 않던 귤은 가지에 매달린 채 동상에 걸렸고, 지금은 나무마저 노랗게 죽어가는 재앙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애써 농사를 지었는데 손에 돈 한 푼 쥐어보지 못한데다 나무까지 뿌리 째 죽게 되었으니, 농민들이 느끼는 참담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농사를 그만둬야겠다는 푸념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지난 70년대 이후 제주 경제를 떠받치며 한 때는 대학나무라는 영예를 얻었던 귤 농업이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위기의 원인이 비단 앞서 언급한 기상이변에만 있지 않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몇 해 전부터 제주도 토지는 중국 투기자본의 표적이 되었다. 중국의 큰 손들이 제주 중산간의 마을목장을 수십만 평 단위로 매입하면서, 제주에 부동산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내국인들의 제주이민 열풍이 더해지면서, 대지와 과수원을 중심으로 지가가 폭등했다. 거기에 정부가 지난해 ‘신공항 예정지’를 발표한 것은 제주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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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산 제주감귤은 연일 이어진 가을비와 한파·폭설로 치명타를 입었다. 땅에 떨어진 감귤들이 농민들의 안타까움을 그대로 나타낸다. /사진 제공=장태욱 ⓒ제주의소리

제주도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일이 경제적으로는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과수원 3.3㎡(한 평)에 4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귤나무 한 그루가 차지하는 토지가격이 평균 100만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그 나무를 일 년 동안 비료와 농약을 치며 정성을 쏟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순 수익이란 3만원을 넘기 어려운 현실이다. 나무 한 그루 심을 땅을 마련하기 위해 그 나무에서 생긴 소득을 30년 이상 고스란히 적립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농민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게다가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상대국이 계속 증가하면서, 외국산 농산물 수입은 종류와 규모에서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시장개방으로 인해 농민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건 이제 사회적으로 식상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귀농해서 농사를 본업으로 삼은 지 6년째다. 농산물 가격이야 늘 들쑥날쑥하지만, 그래도 농약대금 비료대금 갚아가며 빠듯하게나마 생활을 유지했다. 그런데 이젠 귤 농사가 사면초가에 놓였다는 위기감을 감출 수 없다. 조금 있으면 일본의 경우처럼 농촌에 고령에 이른 농부들만 남아서 소규모로 농사를 짓고, 주인을 잃고 방치된 채 서서히 고사되는 귤나무들이 도처에서 발견될 것만 같다.

귤 수확이 끝나고 2월 한 달 동안 책도 읽고 고민도 한 끝에, 감귤에 대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무슨 신세한탄 같은 걸 하고자 함도 아니고, 농가의 이익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글을 쓰고자함도 아니다. 그렇다고 감귤 재배에 필요한 전문 기술을 전하는 글을 쓰고자 함도 아니다.

감귤나무가 해양과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고, 그러다가 한 지역에 정착해서 찬란한 영광을 누리던 과정에서 빚어진 수많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고대 인도와 중국에 자생하던 귤이 한국과 일본, 유럽과 아메리카 등지로 확산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고 싶고, 베르샤유 궁전을 400년 넘게 화려하게 장식해서 ‘대원수’라는 호칭을 받았던 오렌지나무에 관한 이야기, 제주 4.3사건 당시 화염에 상처를 당하고도 여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귤나무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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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랗게 물든 감귤밭 뒤로 한라산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 제공=장태욱 ⓒ제주의소리

또, 괴혈병으로 죽어가는 선원들을 살리기 위해 오렌지로 임상실험을 했던 의사의 인내와 노력도 전하고 싶고, 동서고금의 시인묵객들이 귤나무 꽃과 열매를 찬미하던 많은 작품들도 들여다보고 싶다.

또 근대 이후 감귤이 제주 땅에서 풍요의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눈물과 땀을 흘렸던 어른들의 애환도 돌이켜보고자 한다. 귤 재배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일본에 건너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고 기술 하나라도 더 익히기 위해 노력했던 선배들의 눈물어린 경험담은 물론이고, 육지의 시골에서 일거리를 찾아 제주로 들어와 귤 농장에서 척박한 땅을 일궜던 이주민들의 애환도 전하고 싶다.

시민기자로 간간이 글을 쓰면서 터득한 노하우는, 비록 졸필이라도 남이 쓰지 않는 소재를 찾으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귤나무에 얽힌  스토리들이 아직도 국내 혹은 제주에서 글쓰기 소재로서 크게 인정받지 못한 사실이 다소 안타깝지만, 그래도 내게 좋은 기회가 와서 한편으로는 반갑다. / 장태욱 시민기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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