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국민이 한 장의 투표지로만 보이는 정치인들의 이기적 사고방식

동네 슈퍼의 현직 의원

벌써 3월이다. 총선이 코앞으로 닥쳤다. 제법 세찬 눈발까지 날리는 초봄의 때 아닌 반짝 추위, 그럼에도 도로변에 버티고 서서 무심하게 오가는 자동차들에 답례 없는 공손한 인사를 드리는 예비후보자들의 인위적인 우직함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또 가족까지 동원하며 동네 슈퍼 입구까지 치고 들어와 친히 명함을 돌리는 현역 의원의 이례적 극성도 바야흐로 본격적인 총선시즌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물론 진심이 의심스럽지만 임기 중엔 그렇게도 콧대를 높게 세우던 국회의원 나리마저 낮은 곳으로 임하게 만드는 선거의 마법이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동안 항간의 이슈는 단연 ‘필리버스터’였다. 필리버스터? 정치에 무지한 필자는 물론이고 제법 “안다”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낯익은 용어는 아니었다. 백과사전은 “의회 안에서의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로서 무제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제도권 언론의 대다수를 이루는 보수 언론들의 보도는 물론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논지는 역시나다. 야당의원들이 비상식적으로 장황한 연설을 통해 의사진행을 방해함으로써 악의적인 발목잡기를 한다는 식이다. 우리 언론들이 도둑질 한 사람보다 도둑질 당한 사람에게 비난을 퍼부어 대는 일은 이젠 그리 놀랍지도 않다. 

막가파식 여론조사의 함정
 
이에 따라 필리버스터에 대한 여론도 반대가 우세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제도권 언론들의 동영상과 텍스트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위한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독점하고 있는 마당에 여론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른 사안들도 마찬가지지만, 여론조사에 앞서 굳이 필리버스터까지 벌이게 된 경위와 진상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는 여론조사는 마치 방정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방정식의 답을 물어 다수결로 정답을 결정하는 막가파식 인해전술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론들의 보도태도와는 달리 필리버스터 현장의 분위기와 국민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야당의원들의 기록적인 장시간 발언들이 큰 화제가 됐다. 국민들의 반응도 대단했다. 지난 주말 국회 방청석은 수십 년 만에 필리버스터가 벌어지는 희귀한 역사적 현장을 직접 참관하려는 국민들로 모처럼 인산인해를 이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이른바 SNS에서는 ‘국민 필리버스터’ 운동을 추진하는 움직임까지 보일 정도였다. ‘관제’ 언론들의 다분히 의도적인 외면과 편파적 보도를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간첩신고 전성시대

필리버스터가 국민들에게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테러방지법에 대한 불신이 컸을 것이다. 세부 규정들을 제대로 숙독한 사람이라면 이 법의 제정이 단순한 법의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의 뿌리마저 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즉 테러방지라는 명목으로 크게 강화되는 국가의 감시 기능과 권한은 언제든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양날의 칼’로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을 보면 수상한 사람만 봐도 간첩으로 의심해서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하던 수십 년 전 군사독재 시절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이 법이 딱 그 꼴이다. 외국인만이 아니라 내국인들도 테러범일지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국정원의 집요한 추적과 조사를 받을 수도 있는 시대가 다시 열리는 기분인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법원의 영장 없이도 국정원은 의심자에 대한 사생활 정보 및 금융정보 취득이 가능하고 감청과 추적, 그리고 조사까지 할 수 있는 독소조항들에 있다. 그 옛날 간첩 의심자에 대한 판단이 신고자의 시각에 달렸듯, 이제 테러범 의심자에 대한 판단은 국정원의 마음에 달리게 된다고나 할까.

이젠 ‘반테러’ 이데올로기?

그러기에 일각에서는 테러방지법이 가장 완벽한 ‘판옵티콘’으로서 빅브라더의 감시체제를 위한 결정적 퍼즐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생각해보라. 정부가 국민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보다 내 자신이 정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심각하지 않을까. 즉 정부의 규율과 지시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내재화됨으로써 국민들에 대한 은밀한 통제 기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알아서 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수십 년 간 써먹었던 반공주의가 약발이 다하니 이제 반테러주의로 우려먹으려는 책략이라는 삐딱한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는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들고 민주적 절차까지 무시하며 국민의 절대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테러방지법을 무리하게 강행할 필요가 있을까. 야당 정치인들의 지적처럼 우리나라가 그동안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들을 치르면서도 전혀 테러가 없었던 점을 곱씹어 봐야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테러방지를 위한 사회시스템이 이미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통틀어도 주민번호에다 지문채취, 그리고 철통같은 출입국 관리에 국가보안법과 형법까지 우리나라만큼 완벽하게 테러방지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드물 것이다. 더욱이 국가테러대책회의를 가동할 수 있는 규정이 이미 존재한다. 그럼에도 심각한 국론분열을 무릅쓰고 또 다른 특별한 테러방지법을 굳이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독단적 중단 결정

그렇잖아도 국정원은 테러방지법이 없는 가운데서도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하고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정치와 선거에 불법개입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팽배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일부 국민들이 국내문제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권한을 강화하는 새로운 테러방지법을 국정원이 본격적으로 국내문제에 개입하는 이른바 ‘헬 게이트’를 여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호들갑만은 아닐 것이다. 멀쩡한 상황을 비상사태라고 우겨대며 새 법을 성급하게 밀어붙이기보다 국정원이 그동안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철저한 반성과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국민들의 충분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명분과 정당성을 판단하기에 앞서 야당의원들의 온몸을 던지는 연설은 국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오랜만에 후련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의원다운 의원이다. 그동안 최고권력에 의해 거세당한 듯 무력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그간의 실망감과 절망감이 깨끗이 씻겨 내리는 느낌이었다. 정부와 여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야말로 정말로 할 일을 하는 국회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그럼에도 이 필리버스터가 갑자기 중단됐다. 야당 지도부의 전격 결정에 의해. 이에 대한 야당 대표의 변은 어이없게도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였다.

170967_194452_1951.jpg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잿밥에만 눈독 들이는 정치

순간 이 야당 대표의 모습에 앞서 얘기한 동네 슈퍼 입구의 그 현직의원의 속보이는 모습이 겹치며 어떤 섬광 같은 생각이 필자의 뇌리를 스쳐갔다. “이들의 눈에는 국민이 한 장의 투표지로만 보이는 것일까”라는. 국민을 물(物)로 보는 한, 선거만 끝나면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가 국민들에게 군림하는 후진적 정치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필리버스터야말로 진정한 선진정치로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