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 (36) 부부의 자존감 방정식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누가 집안을 지옥으로 만드나

집에 가는 것이 싫다는 아이,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기숙사가 딸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아이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집이라는 공간은 휴식이 되어야만 합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서 재충전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을 나서는 발걸음보다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이 지옥이 되는 과정은 하루 이틀 동안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남녀가 결혼할 때는 보통 자존감의 정도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허니문 기간 동안에는 가정에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낮은 자존감도 잠복해 있지요.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뜻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장과정에서 그대로 지니고 있는 습관들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만약 결혼한 부부가 인간은 누구나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상대방으로 인해 그렇게 크게 상처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자존감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존감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한눈에 알 수 있지만, 애매한 경우도 많습니다.

남편의 자존감을 측정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시켜보면 됩니다. 예컨대 설거지를 할 때는 그릇을 씻는 것뿐 아니라 싱크대에 그릇을 불안하지 않게 쌓는 것, 물기를 제거하는 것, 수챗구멍에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 등입니다. 설거지는 종합예술 같습니다. 양자물리학자 닐스 보어도 설거지의 원리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죠.

거친 논리를 가지고 자연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모습을 설거지에 비유해서 “우리는 이렇게 더러운 설거지물과 더러운 냅킨을 가지고도 접시와 컵을 깨끗이 씻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죠. (『부분과 전체』) 자. 설거지가 어떻게 자존감 도구로 활용되는지 눈치 채셨나요? 설거지를 배움으로 생각한다면 새로운 사실을 알고 기술을 익힐 때마다 즐거울 것입니다. 자존감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설거지를 집안일이라고 생각하고 노동으로 생각한다면 그리 즐겁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아내가 물기 제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잔소리로 들으면서 쉽게 짜증을 낼 수도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싫은 소리를 듣거나 지적하는 말을 들으면 견딜 수 없어합니다. 먼 친척이나 직장 동료에게 듣는 조언은 달게 듣지만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듣는 충고와 조언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자존감이 위험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wedding-997634_960_720.jpg
▲ ⓒPIXABAY

부부 자존감과의 오래된 투쟁

저는 부부의 자존감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살펴봤습니다. 자존감은 대를 이은 문제이기도 하고, 유년 시절의 문제이기도 하고, 결혼 후에 생긴 문제이기도 합니다. 워낙 복잡한 경로를 통해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시원하게 밝혀낼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겪는 고통은 큽니다. 자존감이 낮으면 방어적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은 대화를 할 때 항상 긴장상태가 됩니다. 소통의 효율성이 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스트레스에 매달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칩니다.

자존감 하락은 일시적으로 생기기도 합니다. 저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평균치에서 약간 밑도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느낄 때 스트레스가 증가하죠. 새벽까지 방 정리를 하다가 쪽잠을 잤는데 아침에 정리해야 할 것들이 산적했습니다. 아이들은 일찍 일어났지만 한 시간 동안 저희들끼리 장난치며 허비해 버렸습니다. 한 시간 동안 제가 느낀 스트레스는 평소의 몇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참다못해 아이들을 불러놓고 훈계를 하고 아침밥을 먹이지 않고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제가 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명백하게 아이들에게 전가된 것이죠. 만약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상대의 자존감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자존감은 한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서로의 자존감을 관리해 주어야 합니다.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의 자존감이 떨어지면 가족 간의 소통이 마비될 위험이 있죠. 때로는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들은 기다리다 지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정량이 없습니다. 충분히 부어야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배우자의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한다면 자존감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는 번거롭더라도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공자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열등감과 좌절감에 시달렸죠. 자존감에 위기가 닥칠 때면 공자는 한 계단 한 계단 묵묵히 밟아서 올라갔습니다.

공자가 한 번은 고약한 함정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기원전 483년 여름 노나라 소공의 부인 맹자(孟子)가 세상을 떴습니다. 하지만 노나라는 부고를 내지 못했습니다. 노소공이 동성인 희(姬) 씨 여인을 부인으로 맞았기 때문입니다. 진(陣)나라의 사패(司敗 : 오늘날 법무부 장관)가 공자에게 소공이 예를 아는지 물었습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사구(司寇 : 역시 오늘날의 법무부 장관)라는 벼슬을 했으니 외교적인 상대자였죠. 의도가 분명한 질문이었지만 공자는 “우리 임금은 예를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진사패는 이 말을 문제 삼아 공자가 예를 어기고 자기 임금을 편든다고 비난했습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공자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만약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려주는구나.”
- 「술이」 편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을 교훈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쓰라린 경험을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만 있다면 누구든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메시지에 귀를 열어놓을 한 줄기 여유를 찾지 못한다면 거꾸로 엄청난 세상의 중력을 감당해야 합니다. 배움이 사라진 삶은 지옥과 같습니다. 공자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배움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까닭입니다.

173994_198143_0911.jpg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