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영등할망이 찾아오는 제주의 음력 2월
3월 5일은 비 날씨였다. 방송에서는 엄청난 비가 쏟아질 것을 예보했고, 산행이나 올레길을 걸어보려던 사람들은 일찌감치 계획을 바꾸었으나 이날 들불축제에 가려던 사람들은 불꽃 놓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제주신화연구소는 저녁 6시의 총회를 앞두고 있었다. 멀리 새별오름에서 축제의 불이 붙고 우리 신화연구소도 많은 회원이 참여하여 총회가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올해는 비옷 입은 할망이 왐싱가?” 밤이 깊을수록 비는 더 요란했다. 우린 비 날씨에도 많은 회원이 비옷 입고 비 사이로 모여와 총회를 마치며 생각해 보았다.
제주의 음력 2월, 영등할망이 찾아오는 영등 2월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음력 2월을 서북계절풍을 몰고 오는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오시는 달’, ‘영등이 드는 달’이라 한다. 이 영등달에 부는 바람을 ‘영등바람’이라 하고, 바로 이 영등바람을 맞이하여 마을의 신당에서 벌이는 굿을 영등굿이라 한다. 영등달에 부는 영등바람, 바로 그 영등바람을 몰고 제주를 찾아온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바람의 축제가 영등굿이다.
영등굿을 할 때는 ‘영등할망’이라 부르는 바람의 신이 시베리아에서 근원해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있는 맵고 질긴 서북계절풍을 몰고 제주 섬에 와서 동백꽃 복숭아꽃을 피워 봄기운을 돋우고, 제주 사람들의 생활에 변화를 일으키고 간다. 그렇게 하면 제주 땅에 새봄이 찾아오는데 이러한 현상을 사람들은 꽃샘추위라고도 하고, “영등할망이 왔다.”, “영등할망이 바람을 몰고 찾아와 땅과 바다에 씨를 뿌리고 간다.”고 한다.
제주의 봄은 영등이월을 혹한, 꽃샘추위를 보내야 온다. 봄이 오기 전에 불어오는 서북계절풍과 함께 찾아오는 무서운 추위를 제주 사람들은 왜 ‘영등할망’이 단단히 옷을 입고 제주를 찾아온다고 했을까? 정말 재밌는 생각이다.
그리고 봄이 오면 영등할망은 유채꽃, 복숭아꽃, 왕벚꽃 등 백화만발한 들판의 꽃구경을 끝내고나서 떠나기 전에 넓은 들판에는 꽃과 곡식의 씨를 뿌려 주고, 갯가 연변(沿邊)에는 우무, 전각, 편포, 소라, 전복, 미역 등을 많이 자라게 하는 해초 씨를 뿌리고 영등할망이 제주를 떠나야 비로소 봄이 찾아온다고 했을까. 얼마나 아름다운 상상력이냐.
이와 같이 신화에 의하면, 이 신이 돌아가는 시기는 영등송별요에 보면, “각리각리 마을 마을마다 씨를 뿌려 두고 산 구경 물 구경 해 가지고, 소섬(牛島) ‘질진깍’으로 송별요해서 평안바당으로, 강남천자국으로 지 놓아 갑니다”하는 걸로 보아 영등 2월 보름날 우도 면으로 해서 제주 섬을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대륙의 문화가 불어오는 바람 길을 따라 유입된 경로와 함께, 남쪽에서 움트는 봄 이야기와 농경문화 즉, 땅과 바다에 씨를 뿌리고 한 해의 농사를 풍요롭게 하는 풍농굿과 세시풍속을 전해주는 영등신의 본풀이(神話)를 구성하고 있다.
영등신의 옷차림으로 일기를 점치는 속신(俗信)이 있다. 이 시기에 비가 내리면, “영등신이 우장(雨裝)을 쓰고 왔으니 비가 내리는 거지” 하며, 날씨가 따뜻하면, “아이고, 헛 영등이 왔구나” 한다. 헛 영등이 온다는 말은 진짜 영등은 바람의 신이기 때문에 독한 바람을 몰고 오는데, 헛 영등은 허술한 차림으로 오기 때문에 날씨가 따뜻하여 바람에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등 할망은 대감, 좌수, 별감, 호장 등 부하 식솔들을 거느리고 남쪽 나라의 산 구경, 물 구경, 꽃구경을 하기 위하여 완전한 준비를 하고 올 때도 있고, 이따금 딸이나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도 있다. 할망이 딸을 동반하고 올 때는 어머니와 딸은 사이가 좋아서 따뜻한 날씨가 계속된다 하며, 며느리를 동반하고 올 때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갈등이 많아서 날씨도 변덕스럽고 궂은 날씨가 계속된다고 한다.
영등이 온다는 것은 제주 2월의 세시풍속이다. 영등이 들면 하는 굿 의례인 영등굿은 새봄을 맞이하여 들과 바다에 씨를 뿌리는 모의적인 파종(播種) 의례로 <요왕맞이>와 <씨드림>이 중요한 제차(祭次)를 이룬다. <요왕맞이>는 바다밭을 갈고 닦아 나가는 ‘길닦기(질치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맞이굿이며, <씨드림>은 맞이굿의 질치기에 입각하여 잘 닦인 바다밭에 해초의 씨를 뿌리는 굿놀이다. <씨드림>이 파종 의례로써 농경의 원리를 바다에 적용한 것이라면, 큰굿의 심방굿놀이 <세경놀이>의 씨를 뿌리고, 말을 몰며 밭을 밟는 모의적인 농경의례가 바다밭에 적용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약마희>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애월이나 귀덕 등지에서는 특히 떼배를 말 모양으로 만들어 타고 바다 밭에 씨를 뿌리며 <떼말놀이>를 한 것이라 생각한다. <약마희>는 바다 밭에 씨를 뿌리는 <씨드림>을 하여 밭에 씨를 뿌리고, 말을 몰며 밭을 밟는 <세경놀이>의 일부를 착용하여, 농경 방법을 바꾸어 바다 밭에 말 모양의 떼배를 타고 씨를 뿌리는 <떼말놀이>를 창안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애월 등지에서 하였던 <떼말놀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해녀들이 직접 바다에 나가 갯가 바위에 서서 씨를 뿌리기도 하고, 떼배를 타고 나가 깊은 ‘여’에 씨를 뿌렸던 <씨드림>이 변형이요, 그것을 놀이화한 것이다.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에서는 음력 2월 초하루 <영등환영제>와 2월 14일에 <영등송별제>를 하는 데, 이때 칠머리당 영등굿에서 <영감놀이>를 한다. 칠머리당 영등굿에서 하는 <영감놀이>는 단골들 중 배를 부리는 사람이 많아 선주(船主)들을 위한 ‘선왕고사(船王告祀)’가 나중에 <영등굿>에 끼여든 것으로 볼 수 있다. 풍어를 기원하는 굿의 ‘굿중 놀이’로 삽입된 것이다.
그리고 영등달에 택일하여 수협과 각 마을 어촌계가 공동으로 벌이는 <풍어제>를 할 때도 <영감놀이>를 한다. 영등 풍어제는 마을마다 정월 보름에 행하던 선왕굿(뱃고사)을 어촌계가 합동으로 벌이는 굿으로, 이 때 <용왕맞이>를 하고, 선신(船神)인 선왕을 위한 뱃고사로서 <영감놀이>를 한다. 그러므로 <영감놀이>는 선박을 관장하는 ‘선왕신’에게 기원하는 풍어굿이며, <씨드림>‧<요왕맞이> 등 해전경작의례(海田耕作儀禮)를 행한 후, 굿의 막판에서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음력 2월 초하루 영등의 드는 날 영등신이 들어오는 영등올레, 한림읍 귀덕리 복덕개에 만들어진 영등신화공원을 소개하고 싶다. 영등신은 영등할망을 이야기하지만 할망의 분신이거나 할망이 거느리고 있는 많은 바람의 신들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영등신 이야기를 통해 제주에 찾아오는 바람의 신 영등신들의 봄나들이, 제주의 봄을 가져다주는 바람과 꽃샘추위를, 영등할망과 할망을 따라온 온갖 바람들의 조화를 부리는 바람의 축제로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여기에 소개하는 영등신들은 한림읍 귀덕리 복덕개 포구, 영등신들이 맨 처음 제주에 들어오는 영등올레에 세워진 영등신들의 신상이다. 꽃샘추위와 함께 제주를 찾아오는 바람의 신들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