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 제주에서 길을 묻다] ② 플로리다 오렌지 명성은 한파와의 투쟁의 결과

귤나무는 온도에 무척 예민한 식물이다. 제주에서는 중국 절강성 온주(溫州)가 원산지인 귤 중에서도 조생종으로 특화된 품종을 일반적으로 재배한다. 온주밀감은 연평균 기온이 15도 이상이고, 겨울철에도 최저기온이 영하 5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어야 재배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외국에서 재배되는 오렌지나무의 기후조건도 제주의 귤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로 영하 2도 아래로 내려가면 열매가 동상을 입게 되고, 그런 기후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나무가 죽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영하 9도 아래로 내려가면 농장이 황폐화되는 사태까지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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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덮힌 감귤나무. 제주의 감귤나무는 추위에 취약하다. 영하가 되면 열매가 냉해 피해를 입거나, 나무가 죽는 일도 발생한다. /사진 제공=장태욱 ⓒ 제주의소리

귤나무, 추위에는 무척 민감하다

지난 1월에 제주에 몰아닥친 한파는 귤나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가져왔고, 농민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공포를 남겼다. 제주에 감귤 산업이 정착한지 50년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은 생전에 이런 한파는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오렌지 생산 규모로는 미국 내 최대를 자랑하는 미국 플로리다 주(Florida 州)가 경험했던 한파 피해를 뒤돌아보면 한파가 감귤 산업에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플로리다는 대륙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과 강한 난류의 영향을 받는 다는 점에서 제주도와 환경적 유사성이 있다. 플로리다에서 과거 강한 한파로 피해를 입었던 농장지대는 북위 30도 근처에 있는 지역들로, 북위 33도를 조금 넘는 서귀포 보다는 더 온난한 지역들이다.

지난 19세기 이후, 플로리다는 총 다섯 차례의 치명적인 한파(impact freeze)를 경험했다. 첫 번째 한파는 1835년으로 기록됐는데, 당시는 오렌지 재배가 본격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경제적인 피해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894년에서 1895년으로 이어지는 겨울과, 1962년 12월에 닥친 한파로 플로리다는 오렌지 농업이 거의 황폐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1985년과 1989년에 한파가 다시 오렌지 농가를 강타하였는데 짧은 간격을 두고 당한 피해라 재해 복구 중이던 농민들에게 큰 절망을 안겨줬다.

플로리다가 당한 총 다섯 차례의 치명적 한파 중에서도 특히 1894년에서 1895년으로 이어지는 한파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추위는 1984년 성탄절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12월 27일에 찾아왔다. 찬 공기가 플로리다 상공을 뒤덮더니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12월 29일에는 플로리다 전역에 얼음이 얼고, 볼루시아(Volusia) 등 오렌지 농장이 자리 잡던 지역의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갔다. 열매는 나무에서 얼어버렸고, 어린 나무들이 뿌리 채 죽어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농민들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큰 나무들이 잎의 대부분을 떨어뜨렸지만 아직 죽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파가 지나가자 이듬 해 초에는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고, 잎을 떨어뜨려 앙상해진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날 기미가 보였다. 그런데 한파는 5주 만에 다시 찾아왔다. 1895년 2월 7일이 되자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8일, 9일, 10일이 되면서 영하 9도까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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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말 폭설로 피해를 입은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 한 농가의 복구 작업을 돕고 있는 군 장병들. ⓒ 제주의소리DB

플로리다 오렌지 산업을 황폐화시킨 한파

추위의 영향으로 나무의 수액이 얼고, 큰 나무들도 뿌리 채 죽어 버렸다. 플로리다 북부에서 재배되는 오렌지 나무 중 160만 그루 이상이 죽었고, 새인트 존스 강(St. Johns River)에서 볼루시아(Volusia)에 이르는 광대한 오렌지 농장이 모두 황폐화되었다. 1894년 볼루시아에 자리 잡았던 1만1580개의 오렌지 농장은 1900년까지 모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오렌지 농장이 황폐화되자 토지의 가격은 급격히 하락했다. 한파가 닥치기 전에 1에이커(4047㎡로 대략 1200평)당 1000달러(지금 화폐가치로는 우리 돈 약 3000만원)에 이르던 농장의 가격이, 이후에는 1에이커에 10달러로 추락했다.

농민들은 한파 걱정이 없는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 중에는 플로리다에서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이주한 이들도 있고, 캘리포니아에서 새롭게 정착한 이들도 있다. 또, 미국보다 더 따뜻하고 저렴한 땅을 찾아 쿠바나 자메이카 등지로 이주한 이들도 있다.

플로리다 농업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플로리다는 53만1500에이커(약 6억4000만 평)에서 6950만 그루의 오렌지 나무를 재배하고 있는데, 지역 오렌지 산업은 간접적인 것까지 감안하면 우리 돈으로 연간 10조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현재 플로리다는 미국 내 오렌지 생산의 60%를 담당하며 브라질을 제외하고 세계 어떤 단일국가보다도 많은 양의 오렌지를 생산하지만, 플로리다가 오렌지로 오늘날의 명성을 얻기 까지 지난 100여 년은 추위와 투쟁하던 역사라고 이를 만하다.

귤 농장이 밀집한 서귀포는 제주도내에서도 겨울철 온도가 가장 높아 국내에서도 가장 따스한 지역이다. 그런 따스한 기후로 인해, 열대야자수 가로수가 관광객들에게 이국적인 정취를 전한다. 해방이후 감귤산업이 서귀포를 중심으로 확산된 것도 이런 기후의 영향이었다.

아열대 서귀포도 안심 못하는데...  

하지만 지난 1월 제주에 불어 닥친 한파는 ‘가장 온화한 서귀포’라는 인식과 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파가 가장 기승을 부린 24일에 기록된 최저기온은 성산이 영하 6.9도로 가장 낮고 서귀포 영하 6.3도, 고산 영하 6.1도, 제주시 영하 5.2도 순이었다. 이날 서귀포가 기록한 영하 6.3도는 제주시보다도 낮은 것으로 서귀포가 기록한 것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최저였다고 한다.

기상 전문가들은 지난 한파의 원인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반도에서 겨울은 짧아졌지만 한파는 더 강력해지는 '온난화의 역설'이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언론은 종종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귤 재배 지역이 점점 북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자연재해는 우리가 예기하지 못할 때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온난화의 영향이 역설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은 자연재해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장태욱 시민기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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