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르포] 5월 5일, 평택 대추리 - 평화와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 오후 2시, 본 대오를 들여보내기 위해 경찰과 대치중

#  토벌대를 피해 큰넓궤로 숨어들어가는 양민들

 어젯 밤이었다.
 
 어린아이를 업고 있던 아주머니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우리 일행을
 이끌어주었다.

 58년 전 큰넓궤, 목시물굴로 숨어들어가는 양민들처럼.

 5월 5일, 어린이날 밤 대추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우리들은 군경토벌대를 피해 이곳저곳에
숨어있었다.

# 2006년 5월 4일, 근조 대한민국
 

▲ 대추리로 들어가면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지난 목요일, 우리는 광주 5.18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충격적인 유혈진압사태를 보았다.
 하루 종일, 견딜 수 없는 분노와 사무치는 슬픔으로 나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저녁에는 "유혈진압 규탄, 국방장관 퇴진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밤은 짧았다.
 새벽에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노무현 정권의 민간인에 대한 폭력이 극한 달한 지금, 그저 변방에 머물수 만은 없었다.
 "세계 평화의 섬"의 주민으로서, 국가폭력에 압살당하는 나의 친구들과 동지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 평화의 땅, 대추리를 지키러 가다

▲ 주민의 화단이 경찰에 짓밟혔다

 카메라를 챙기고 첫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공항에서 평택으로 바로 가는 버스를 탔지만, 연휴로 인해 고속도로를 막혀있었다.

 평택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찰수송버스는 사이렌을 울리면 갓길로 주행하고 있었다.
 저들 보다 빨리 가야 했다.

 12시. 평택터미널에 도착하여, 미군기지 k-6가 있는 안정리로 향했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이하 범대위)는 지난 목요일 낮, 긴급지침을 내려
 5일 오후 2시, 대추분교에서 "제2의 광주학살 평택 유혈 사태에 대한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그러나 대추리로 가는 모든 길은 막혀있었다.

 원정삼거리 앞.

 저멀리서 걸어오는 한 학생을 만났다. 어제 토끼몰이식 유혈진압때 맞서싸우던 학생이었다.

 머리에는 흰 붕대를 감고있었다. 그에게 어제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 오전 9시 경, 경찰들이 계속 밀고들어와서 맞서다가, 남은 사람들을 대추분교 2층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다가 경찰에 치고들어오다가 잡혔는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국가인권위 관계자가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는 치료를 받자마자 다시 빠져나온 후, 저녁 촛불행사에 참여하고 각자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범국민대회에 결합하기위해 동지를 기다린다고 했다.
 나도 그와 함께 가기로 했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에게 미리 사고온

김밥 한 줄을 내밀었다.  물과 함께.

# 경찰진압에 맞서, 철조망을 뚫다.

▲ 논둑을 따라 걷는 경찰과 저멀리 시위대

 그의 동료들을 만나 함께 이동했다. 2시 본정리 농협이었다. 2시 즈음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30분 정도 지났는데, 100여명이 채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경찰병력은

몇 중대씩 본정리로 들어오면서
대추리로 가는 길목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지도부로 보이는 사람이 이동을 하라고 했다. 본정리 입구에서 들어오는

대회 참가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는 것이다.

 농협 앞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일어나, 1km 떨어진 본정리 입구로 달려갔다.

 경찰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뒤에서 치고 달려오니 경찰들도 놀래서 옆으로 빠져주었다.

그러는 사이 집회 참가자들은 꾸준히 들어왔다.

 대학생들, 노동자들, 민주노동당원들, 그리고 평화를 실천하는 양심적 시민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들어오자 다시 본정리 농협앞으로 달려갔다.

▲ 경찰이 어린아이를 안고있는 아저씨를 밀어서 항의하고 있다
 

사수대가 경찰병력을 막아선 틈을 타서 본 대오는 길을 돌아 대추리 쪽 들녂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경찰과 몸싸움도 벌이면서, 그들은 달렸다.

 논 둑에는 군인들이 철조망을 치고 지키고 있었다. 철조망을 넘지 못하여 도두2리 쪽으로 내달렸다.

 저멀리 맨 앞에 있던 대오가 철조망을 뚫고 대추리로 진격하는 것이 보였다.

 경찰들은 대오 뒷부분에 있던 집회 참가자들을 각개 고립시키고 있었다.

#생명과 평화의 땅, 대추리를 탈환하다

 

▲ 철조망 앞에서 군인들

내달린지 2시간 만에, 본정리를 지나 도두2리에 도착했다. 경로당앞에서는 할머니들께서

 수고하신다면서 물을 건내주고있었다.
 꿀맛같은 시원한 물 한 사발..

▲ 도두2리 경로당 앞에서 참가자에게 물을 주는 할머니
 

 

5시 반, 드디어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병력을 따돌리고, 철조망을 뚫어 대추리에 탈환했다.

속속들이 뒷부분에 있던 사람들도 대추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 날, 대추분교가 철거되었기 때문에, 범국민대회는 대추리 평화공원에서 열기로 했다.

 

▲ 부서진 대추분교에 평택지킴이들이 '평화'깃발을 세웠다
 

▲ 파헤쳐진 대추분교 운동장

대추분교로 가보았다. 운동장은 굴삭기로 파헤쳐져 있었다. 은행나무, 백합나무 등 학교 주변에

 심어진 아름드리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있었다.

그리고 학교는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선 "평화" 깃발.

 참담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학교를 둘러본 뒤, 평화공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녁 6시 "제2의 광주학살, 평택 유혈 사태에 대한 규탄 및 평화와 생명의 땅,

 대추리 사수 범국민대회"를 시작했다.
 

▲ 범국민대회

 

전국에서 달려온 2,000 명이 노동자, 학생, 양심적 시민들이 함께 했다.

민중연대, 통일연대, 전국연합 등 각 민중단체 대표들이 투쟁발언을 하였다.

구호를 외쳤다. " 민주주의 압살하는 강제퇴거 중단하라!"

 범대위 상임대표이자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 인 김용한 대표도
"노무현 정권의 폭력진압은 전두환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미친 짓이다"라며
 "유혈진압을 잘했다면서 성명을 발표하는 보수정당들을 선거에서 응징하자"고 말했다.

집회는 짧게 끝났다.
 "한반도 전쟁기지, 평택미군기지확장 결사반대한다"를 끝구호로 30분 동안 진행된

범국민 대회를 마쳤다.

# 612 일차 촛불행사, 군-민은 충돌했다.

▲ 평화의 촛불을 들었다
 

 

집회를 마치고, 노동자들은 대추리를 빠져나갔으며, 학생들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위를 벌였다. 논으로 진격했다.
 들판 곳곳에는 이동화장실이 있었고, 논둑을 따라 철조망을 이중으로 쳐져있었다.
그리고 새까만 전투경찰이 보였다. 시위대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집회를 마치고 도두2리 쪽으로 되돌아가는 학생들은 경찰들이 막아섰다.

 군 헬기가 먼지를 일으키며 뜨고 내렸다. 7시. 대추리는 고립되었다.

각개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도 다시 '황새울평화공원'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고립된 대추리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각 지역 참가자들의 발언이 있었고,

현 상황을 공유했다.

짧은 결의대회를 마치고, 드디어 612일차 촛불행사를 시작했다.
 유혈진압 이후로 2번째 열리는 촛불행사이다.

문정현 신부님들 지도부가 모두 잡혀간 상황에서

대추분교 5회 졸업생이라고 밝힌 주민(44세)이 사회를 보았다.

 오늘까지 514명이 연행되었고, 12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  오전에 마을로 들어오던 곤봉든 특공대와 주민들의 충돌이 있었다.

그들이 마을로 진입하던 중, 여군 1명이 여성주민을 폭행했다.
 그리고 공병대가 대추분교에 군 트럭을 가져왔다. 

국방부가 말하는 군-민 충돌은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또한 군인이 설치한 철조망도 주민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다.

농사를 짓지위해서는 철망을 걷어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철망을 걷어냈다. 그러나 더 많은 철망을 걷어내야 한다. "

이어서 긴급하게 들어온 소식이 있엇다.

# 전원 검거령, 토벌이 시작되다

"영농단에 있었던 10 여명이 연행되었다. 경찰서가 아닌 52사단으로"

드디어 노무현 정권이 5.18을 본격적으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상무대 영창으로 끌고 간 것 처럼...

8시 45분, 사회자는 "전원 검거령이 내려졌다. 비폭력을 맞설것이다"라는 마지막 멘트를 하며

 촛불집회를 마무리 했다.

▲ 촛불행사를 마치고 주민들이 지어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손수 만들어주신 저녁식사를 했다. 반찬도 2가지나 있는 만찬이었다.
학생들도 촛불행사를 마치고, 나름대로의 결의대회를 한후 식사를 했다.

9시 20분. 마을 입구, 학교쪽에서 미리 빠져나가던 사람들이 연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밥을 먹던 학생들은, 숟가락을 팽개치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기했다. 9시 40분. 학교쪽으로 달려가던 학생들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전원 마을회관 앞으로 집결이었다.

 경찰들이 무자비로 밀고 들어왔다. 슬슬 뒤로 빠졌다.

경찰들은 농협창고 앞에 있었고, 우리들은 마을회관 앞에 있었고,  학생들은 평화공원에 있었다.
그때 경찰들이 달려왔다.

순식간에 상황판단을 하였다. 근처 민가로 숨었다. 몇몇은 화장실에 숨어있었고, 한 명은

 못들어와서 차바닥에 숨어있었다.

그 사이 경찰들은 새까맣게 밀고 들어왔다. 30여분 동안 수십명의 학생들이 연행되는 장면을

 문틈으로 살펴보았다.

잠시 소강상태.

주민의 안내로 집안으로 이동했다. 학생 2명이 거기에 숨어있었다.
숨을 고르고, 대책을 논의했다.

연행이 되면 기자라고 하지만, 오늘 찍은 사진들과 메모들이 그 들손에 넘겨져 역이용 당할 수

 도 있다.
일부기록은 삭제하고, 메모리카드를 빼내어 비닐에 감싸 몸에 숨겼다. 비상시에 파괴할 수 있도록.

그리고 30분 정도 있다가 노인정으로 이동했다.

몇몇의 학생들이 더 들어왔다.

현재 경찰이 가택수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노인정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판단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토벌대를 피해, 살기위해 도망치는 4.3 양민들은 바로 우리 자신 이었다.

그리고 안전한 민가로 피신했다. 학생들이 있었다. YTN을 보고 있었다.
오늘 집회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스스로 보수언론이라는 생각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보도였다.

일단 오늘의 이동은 여기서 멈추기로 하고, 쉬기로 했다.

 

# 비에 젖은 라일락 꽃향기를 맡으며, 대추리에서 탈출하다

자정이 지났다. 하루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먼지를 들이마시며 먼길을 달리느라 피곤함이

쏟아졌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은 감았지만, 귀는 열어두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자정뉴스에서는 100mm가 넘는 폭우가 올것이라 하였다.

새벽이 되자 몇몇 학생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새벽 4시. 지도부로 보이는 학생이 우리를 깨웠다.

" 택시를 타고 나가면, 검문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분산해서 나가기로 하자"

비옷을 챙겨입고, 우리일행은 걸어나가기로 했다.
노인정을 지나, 농협창고를 너머, 대추분교 입구로 갔다. 맞은편 미군기지 입구에서는 경찰이

비옷을 입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들녘에는 군인들이 서치라이트를 켜고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길가에는 그저께의 흔적이던 갈라진 대나무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경찰들이 먹다버린 도시락 쓰레기들.

내리 쪽을 걷고 있는데, 길가에 핀 보라색 라일락(수수꽃다리)이 비에 젖어 특유의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40분 정도 걸으니, 원정 3거리가 나왔다. 경찰들은 버스에서 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 옆을 유유히 걸어나왔다.

그리고 조금 더 걷다보니 뒤에서 오는 차량이 멈춰섰고, 우리를 평택역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들도 그저께 연행되었다가 몇시간 전에 풀려나서 차를 찾으로 온것이라 했다.

5시. 우리는 그렇게 평택역에 도착했다.

# 군인들에게 무장을 하라고? 보수언론을 규탄한다.

역사안에는 빠져나온 학생들이 첫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안에 설치된 tv 를 통해 어제의

]일에 대한 보도를 보았다.
왜곡과 과장된 보도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 보도 기자는 군인들이 맞는 장면을 되보여주면서,

 무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와 민주주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천 명의 시위대가 그 열배가 넘는 1만 여명의 군과 경찰 병력과 맞서싸웠다.
잘 훈련되고, 무장한 그들과 맞서싸워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맨 손으로 싸우는 시위대를 공격하는 무기를 들라는 선동적인 보도는 보수언론의 단골메뉴였다.

왜곡, 편파, 과장 보도 또한 그들 특유의 버릇이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들고 대추리로 간 것이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주류 언론에 무지몽매하게 당해서는 안된다.

군인에게 무장을 해야한다는 선동 보도를 한 kbs기자는 군인에 폭력을 당한 또 다른 언론사 기자를

취재하라는 요청을 거부하였다.
특공대는 그의 팔을 뒤로 꺽었고, 카메라를 논바닥에 내팽개쳤다.

또 한 명의 시위대는 경찰에 의해 집단구타를 당해, 현재 실명위기에 처해있다.

5.18 당시, 광주시민들이 왜 방송사를 불태웠는지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예정지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행정대집행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폭거이다.
또한 여기에 맞써 싸우는 양심적인 학생, 노동자, 시민들의 정당한 투쟁을 왜곡하는 보수언론들은
국민들의 의식을 20여년 전으로 후퇴시키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폭력적 유혈진압에 저항해야 한다.
지금 이 시기, 민중의 평화와 자치 민주주의가 학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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