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업이 한창이다. 전국적인 현상으로, 제주도 예외 없이 들썩인다. 마을만들기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지만 그 생김새는 물론 관점 역시 다르다. 지난해 1년간 제주시에서 마을만들기워킹그룹이라는 자문조직이 활동했다. 마을활동가, 마을사업, 복지, 아동, 청소년, 공공디자인, 언론, 문화, 푸드, 전시, 휴양체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주의 마을을 이해하고 사업의 방향을 제시했다. 제주의 마을만들기라는 공통된 주제를 놓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느꼈던 경험들과 한계, 그리고 제주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워킹그룹 위원 12명이 자신의 분야에서 바라본 마을만들기에 대해 12회에 걸쳐 소개한다. 마을만들기가 내실있게 추진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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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만들기 릴레이 기고] ⑦ 함주현 영화감독

제주 이주민으로 제주도에 발을 들인게 2011년. 5년이 되어 간다.  그 때 동네 삼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직 젊은데 무사 여기 완?’과 ‘앞으로 뭐 해먹고 살꺼?’ 였다. 아마도 오일장에서 산 알록달록한 색상의 바지를 입고 머리는 길러 묶고 다녔으며 검정고무신으로 스타일을 완성했으니 마을주민들이 정상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제주가 주는 낭만을 만끽하며 살던 어느 날 제주 인구가 곧 60만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제주인구가 60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대체 어떤 사람들이 제주에 온다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 유형은 크게 사업과 직장으로 인한 반강제적 전입자들과 개인의 의사결정에 따른 자발적 이주민들로 나뉘었다. 자발적 이주민들은 이른바 문화이민자로 불리며 제주마을 곳곳에서 마을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최근 3년간 제주로 건너온 이주민은 연평균 1만 여명으로 엄청난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제주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주만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들이 유지되고 있었지만 공동체문화들은 점점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귀농귀촌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3040을 중심으로 단순히 거주만이 목적이 아닌 아이들의 교육, 협동사업, 마을체험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면서 재능 기부 뿐 아니라 ‘문화로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는 있으나 갑작스런 마을의 변화에 지역민들은 시큰둥한 눈치다. 지역민과 이주민 간의 교류 또는 소통이 없으니 서로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제주시 구좌읍에서 실시하는 마을순회영화관은 되새김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좌마을주민들이 기획한 이 사업은 영화상영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을 마련해주는데 축하공연을 통해서 이주민들은 자신의 문화예술적 재능을 나누고, 지역민들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형태다. 주민이 주도하고 관이 협조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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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원희룡 도정은 2016년 문화예술분야 예산으로 1065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는 제주의 문화가치를 키워 문화예술의 섬 제주를 만드는 것이 지향점이지만 새로운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같이 문화예술단체나 기업을 배불려주는 예산 몰아주기 식은 이제 그만 해야 할 때가 됐다. 제주행정의 가장 기초단체인 마을과 그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도정이 내세우는 문화예술정책을 체감하지 못하는데 문화예술예산만 늘렸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거다.

지역의 문화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단기간 예산을 투입한다고 형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대한민국은 벌써 세계적인 문화강국이 되어 있을 것이며, 나라의 국정기조가 문화융성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문화예술을 만들고,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예술가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떤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하자. 자신의 작품을 근사하게 전시를 했는데 누구도 이 작품을 보러오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현상은 대한민국에서도 또 제주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제주의 크고 작은 축제, 행사, 페스티벌을 많이 다녀봤지만 대부분 문화예술창작자와 기획자들, 관계자들이 축제를 찾은 관객의 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는 문화예술생산자와 문화예술소비자의 비율이 맞지 않아 생기는 사회현상이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 즉 생산자가 있다면 반드시 작품을 보는 소비자가 있어야 지속가능한 문화예술구조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제주도정의 적극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금상첨화다.

제주도의 문화예술구조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민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어야 하며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문화예술에 기반한 교육이 학과수업과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교육은 바로 예술적 취미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곧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문화예술 생산자와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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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주현 영화감독. 제주시 마을만들기 워킹그룹 워원.
결국 제주의 문화예술구조가 만들어지려면 가장 작은 기초단위인 마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마을주민 스스로가 예술가가 되어서 작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순환과정을 이뤄야한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생산자와 문화예술소비자 그리고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 이 구조가 바로 제주도가 문화예술의 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엔 사람과 마을이 있으며 문화예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 역시 마을을 바탕으로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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