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 제주에서 길을 묻다] ③ 괴혈병과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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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혜향의 모습. /사진 제공=장태욱 ⓒ제주의소리

대학에서 항해학을 전공하고 20대를 바다에서 보냈다. 어릴 적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이 못돼서 국비로 숙식도 해결해주고 취업 걱정도 없다는 얘기를 듣고 결정한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젊은 나이에 또래의 친구들이 해보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것은 큰 위험과 고난이 따르는 일이다. 늘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생활은 적적하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바다 날씨는 늘 두렵다. 게다가 항해 중에 아파도 병원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간단한 비상약 처방을 받고 육지에 도착할 날만 기다려야 한다. 인공위성의 도움으로 정보 교류도 원활해지고 조선술의 발달로 배의 속도가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연 앞에 고립된 인간은 유약한 처지를 면할 수 없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에도 항해는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데, 근대 이전에 선원들이 겪었던 위험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막을 연 대항해 시대 이후, 18세기까지 원인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선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 있었다. 그 병에 걸리면 처음에는 극도로 예민해지고 온몸이 아프다가 허리 아래 부부에 자주색 반점이 돋고 잇몸이 허물어져 이가 뽑힌다. 그리다가 빈혈을 일으키고 심장이 쇠약해져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사람들은 이 병을 괴혈병(scurvy)라고 불렀다. 그리고 18세기에는 영국 해군이 괴혈병의 주요 타깃이 됐다.

영국해군 소속이었던 조지 앤슨(Jorge Anson) 장군이 세계 일주 도중에 겪은 사건은 당시 괴혈병이 얼마나 큰 위험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1740년 조지 앤슨 장군은 여섯 척의 배와 1955명의 승무원을 위임받고 영국의 포츠머츠(Portsmouth) 항을 출발해 세계 탐험을 떠났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태평양에서 스페인의 무역을 방해해 스페인의 경제를 무력화시킬 방안을 찾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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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20대에 바다 위에서 지내던 시절 모습. 선상생활은 여러 위험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사진 제공=장태욱 ⓒ제주의소리

앤슨의 탐험대가 출항해 7개월 만에 칠레의 남쪽 케이프 혼(Cape Horn)에 도착할 무렵,  괴혈병 증세를 보이는 선원들이 나타났다. 당시 앤슨과 동승했던 리처드 월터 목사는 회고록에서 “악성 궤양이 발생하고, 뼈가 썩었으며, 살을 온통 뒤덮은 균들은 치료제가 없는 듯하다”고 그 처절함을 묘사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이미 괴혈병이 탐험대 전체로 확산되어, 여섯 척의 배중에 두 척은 본국으로 회항했고 한 척은 난파했다. 결국 배 세 척이 탐험을 계속하게 되었는데, 탐험을 계속한 선원 961명 중에 626명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앤슨이 4년 동안의 긴 탐험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올 때는 오직 배 한 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는데, 최초에 출항한 1955명의 선원 중 1051명이 사망해 최악의 탐험으로 기록되었다.

영국 해군이 괴혈병으로 공포에 떨 때,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영국해군에 소속되었던 외과 의사 제임스 린드(James Lind, 1716-1794)는 감귤이 괴혈병을 치료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1747년 5월 20일, 영국해협(English Channel)을 항해 중이던 샐리스버리(Salisbury)호에 탑승했던 린드는 괴혈병을 앓고 있는 선원 12명을 대상으로 최초의 임상실험이라 불리는 과업을 수행했다.

그는 12명의 환자들을 두 명씩 6개의 조로 구분했다. 모든 조에는 똑같은 식사를 제공하면서도, 각 조별로 각기 다른 음식을 추가로 제공했다. 제1조에 사이다를, 제2조에 황산염 25방울을, 제3조에 식초 한 스푼을 제공했다. 그리고 제4조에는 바닷물을, 제5조에는 타르타르크림과 고추냉이 겨자씨를 포함한 혼합액을, 제6조에는 오렌지 두 개와 레몬 한 개를 제공하여 그 결과를 비교하였다.

관찰결과 오렌지와 레몬을 복용한 6조 환자들이 빠르게 회복하여 한 명은 6일 만에 근무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 그리고 사이다를 복용한 환자들도 느리게나마 회복했다. 

1753년에 린드는 그 실험결과를 기록한 논문 <괴혈병에 관한 보고서, A treatise of a scurvy>를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실험결과 오렌지와 레몬은 이 전염병의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며, 오렌지가 레몬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논문의 영향으로 린드는 포츠머츠에 있던 영국해군의 외과 과장이 됐다. 하지만 그 후에도 영국해군은 함정에 오렌지를 비치하라는 린드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괴혈병은 수 십 년 동안 끊임없이 발병했다. / 장태욱 시민기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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