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업이 한창이다. 전국적인 현상으로, 제주도 예외 없이 들썩인다. 마을만들기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지만 그 생김새는 물론 관점 역시 다르다. 지난해 1년간 제주시에서 마을만들기워킹그룹이라는 자문조직이 활동했다. 마을활동가, 마을사업, 복지, 아동, 청소년, 공공디자인, 언론, 문화, 푸드, 전시, 휴양체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주의 마을을 이해하고 사업의 방향을 제시했다. 제주의 마을만들기라는 공통된 주제를 놓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느꼈던 경험들과 한계, 그리고 제주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워킹그룹 위원 12명이 자신의 분야에서 바라본 마을만들기에 대해 12회에 걸쳐 소개한다. 마을만들기가 내실있게 추진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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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제주어노래부르기 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탄 아이들.

[마을만들기 릴레이 기고] ⑧ 박미란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장

1999년 제주에 이주해, 누군가 말하기를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 낀 ‘뻘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벌써 17년째.

“게난 누게라?” 어느 날인가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더니 그분께서 내게 건넨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 무조건 웃음으로 화답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욕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왠지 투박하고 거친 듯 한 말투에 마음이 쪼그라들었던 시절. 하지만 외양만 거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웃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제주 사람들은 다소 배타적이고 투박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리고 아프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으며 살다보니 마음 여는 일이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런 제주의 환경과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여쭙고, 부탁하면서 지역사회를 아이들과 누비다 보니 제주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작은 공부방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어느 추운 겨울날 양말도 신지 않고 동네를 헤매고 다니던 상진이와 지영이를 공터에서 만났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도 집에 가지 않는 두 남매의 이야기가 내 인생 가운데로 들어왔다. 그 만남으로 교회 안에서 공부방을 시작했다. 2004년 지역아동센터가 법제화가 됨에 따라 그 작은 공부방이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가 되었다.

‘한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 ‘개인’에서 ‘마을’로 함께 키우기로 마음먹은 이래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는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배움을 희망하며 아이들과 함께 걸어왔다. 단지 우리 지역 내 아동청소년들의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애주기별 욕구충족과 지속성장을 꿈꾸면서 말이다. 아이들과 어른, 청년과 노인, 여성과 남성, 지역주민과 이주민 모두가 함께 논의하고, 만들어내고, 참여하는 가운데 모든 주민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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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해녀박물관 야외에서 열린 구좌유스오케스트라 창단 공연.
마을 아이들의 성장이 곧 우리 마을의 미래이며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동분서주하게 된 지 12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지난해 마을 만들기 워킹그룹 위원 활동은 특별했다. 한때 이주민이었으면서 이제는 제주사람이 된 시선으로 제주의 구석구석 사람살이를 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을에 인정이 넘치는 사람살이를 꿈꾸고, 우리 마을의 의제를 함께 고민하고,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좋은 마을 공동체는 마을 구성원 누구 하나 소외된 이가 없어야 한다. 남녀노소, 가진 자 못가진 자 너나할 것 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가능해야 한다. 마을 공동체 안에는 어디든 ‘사회적 약자’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도 지역사회에서 사람살이를 할 수 있도록 거들어 주고, 주선해주고 도와주는 등 함께 하려는 생각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본연의 삶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그 당사자와 삶의 생태를 잘 이해하고 살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수눌음’ 문화를 새롭게 부활해야 하며, 존중하고 수용하며 창조하는 공동체의 회복이 급선무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기 좋은 마을, 함께 꿈꿀 수 있는 마을이 좋은 마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2013년에 창단한 구좌어린이합창단을 시작으로 구좌유스오케스트라 그리고  구좌어린이기자단 등으로 다양한 문화와 마을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써내려 왔다.
 
지난 2015년 여름, 해녀박물관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있는 한 여름밤의 힐링음악회’는 마을의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즐기고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였다. 아이들이 음악회를 열어 마을 주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야말로 한 여름밤의 마을축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의 아동‧청소년들을 모아 기자단을 구성, 마을의 일을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일을 했다. 어린이기자단은 환경캠페인, 아동옹호활동, 신문 만들기, 영상뉴스 제작, 그동안의 활동들을 모아 책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아이들도 마을의 주체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이끌어 냈다. 이 활동은 평대 마을신문을 만드는 데 동기부여가 되었다. 마을 어른들이 모여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마을 알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곱닥한 구좌마을 이야기를 예쁜 사진첩으로 만들어 지역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는 등 일련의 성과를 냈다. 

 다름이 아름다움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선 학교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는 일에 우선 마음을 두고, 함께 하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서로 다르지만 우리 아이들을 넉넉히 기다려 주고 손잡는 일에 함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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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란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장. 제주시 마을만들기워킹그룹 위원.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고유한 색깔과 빛을 가졌다. 이렇게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가진 별과 같은 아이들 모두가 빛나고 존중 받아야하는 것이다.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민들레꽃은 민들레꽃으로, 냉이꽃은 냉이꽃으로, 서로의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인정할 때 들과 산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듯 마을 공동체 또한 서로의 다름에 축복하고, 자기다움에 감사하며, 서로의 아름다움이 빛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할 때 제주공동체는 아름다운 꽃밭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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