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기획] ② 성격 엄연히 달라, 센터조차 "4.3치유기관 아니"...독립 조직 절실

제주4.3이 올해로 68주년을 맞았다. 2000년 1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되고, 2003년 10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면서 4.3의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정부는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정했지만, 아직도 유족들은 4.3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지금도, 일부 보수세력의 4.3흔들기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제주4.3 68주기를 맞아 다섯 차례에 걸친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뼛속까지 남은 4.3의 상처 ‘68년의 트라우마’
②진척 없는 제주트라우마센터 ‘광주의 교훈’
③야심차게 시작한 4.3평화인권교육 ‘이제는 내실’
④끝없는 4.3흔들기 ‘화해와 상생’ 에 찬물
⑤제주평화공원 3단계 사업 ‘4.3초심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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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는 지난 3월3일 5.18기념문화센터 소회의실에서 5.18기념사업 마스터플랜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를 열었다. 주제는 ‘시민과 함께하는 5.18, 세계와 연대하는 광주공동체’였다.

연구진은 광주 서구 화정동 9만4095㎡ 규모 옛 국군광주병원 부지를 국가폭력 치유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독립'된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시작을 기대하게 하는 자리였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2012년 10월 전국 최초로 보건복지부의 정신보건시범사업에 선정돼 광주광역정신건강센터, 광주자살예방센터와 함께 문을 열었다.

광주시는 3개 조직을 광주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관장하도록 했다. 이후 2년만인 2014년 성격이 비슷한 광주자살예방센터를 광주광역정신건강센터로 통합시켰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5.18관련자와 고문생존자 등의 치유사업을 맡았다. 반면 광역정신건강센터는 정신질환자와 자살시도자 등을 위한 지원 등 정신보건 사업을 수행중이다.

두 기관간 사업 대상과 성격, 업무, 전문인력 등에 차이가 발생하자, 광주트라우마센터를 독립적인 상설기구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기 시작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정신건강법과 정신건강 증진 조례에 근거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왔다. 연간 예산은 9억원 가량이다. 2012년 시작된 시범운영은 올해 종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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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중단에 맞춰 내부에서는 기구 독립과 상설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반면 예산확보와 조직의 독립성 등의 문제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강문민서 광주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은 “현재 조직구조에서는 공문서 하나 센터이름으로 발송하지 못하는 처지”라며 “시범사업이 이뤄졌지만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센터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그는 “정신건강증진센터와 트라우마센터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며 “제주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내 4.3트라우마 관련 팀을 구성한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제주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는 2015년 1월 제주대병원 사거리 동쪽 건물에 문을 열었다. 제주도는 센터 수탁기관으로 제주대병원을 지정하고 지난해 7억6888만원을 지원했다.

건물은 연면적 410㎡ 규모에 사무실과 상담실, 교육실, 당직실 등을 갖췄다. 인력은 센터장과 정신보건전문요원 4명, 간호사 2명, 사회복지사 5명 등 14명이다.

광주의 사례를 보듯, 정신건강증진센터와 트라우마센터는 차이가 있다. 제주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는 정신보건법 13조에 근거해 24시간 자살예방과 위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4.3치유는 외부의 요청이 있을 때 진행하는 과업일 뿐 자체 운영내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조차 자신들은 4.3치유 전문 기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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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는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정신보건법에 따라 전국에 똑같이 세워지는 기관”이라며 “도정이 이를 4.3트라우마센터로 포장하려한다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제주4.3의 경우 피해자가 광주5.18 항쟁보다 월등히 많다”며 “국가 공권력으로 인해 피해를 본 도민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 더 늦기 전에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4.3유족회도 줄곧 4.3트라우마센터 설립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정치권이 4.3트라우마 치유사업의 근거를 둔 ‘4.3사건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정부는 매번 난색을 표했다.

광주의 경우도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와 달리 법적 근거가 없어 트라우마센터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4.3트라우마센터 설립 근거를 4.3특별법에 두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문민서 광주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은 “트라우마센터는 운영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전문가들이 투입돼야 한다”며 “4.3트라우마센터의 고민도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치유로는 부족하다.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공동체적 치유가 병행돼야 한다”며 “피해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깊은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4.3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도정과 정치권 모두 나서야 한다”며 “더 늦기 전에 4.3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돼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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