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 (37) <최종회> 어부가 연재를 마칩니다.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1년 동안 고마웠습니다

2015년 3월 9일부터 시작한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노래’(이하 ‘어부가’)를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과 소중한 지면을 허락해준 <제주의소리> 편집국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공자가 조국 노나라를 떠날 적에 ‘더디고 더디다, 내 떠나는 발걸음이여’(<맹자>, 진심 하편)라고 되뇌었듯이, 연재를 끝마치려니 글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본 회에서는 어떻게 ‘어부가’를 쓰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드리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것 중 하나는 젊은 나이(39)에 어떻게 <논어>, <맹자> 같은 동양고전을 읽고 한문을 읽느냐입니다. 동양고전과는 묘한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한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기형도, 김수영 시인 때문입니다.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는 시집들은 대부분 한자 병기나 한글전용이 안 되었고, 한자만 표기돼 있었기 때문에 여름방학 두 달 동안 문교부 고시 1600자에 매달려 한자를 공부했습니다.

1600자가 저를 끌어당긴 걸까요? 국문학과 선배의 손에 이끌려 한학자 선생님(소농(素農) 오문복 선생님)께 <맹자>, <대학>, <중용>, <고문진보>를 배웠고, 사마천 <사기>,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을 윤독하면서 한문의 맛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 10여년 제주를 떠나 있으면서도 틈틈이 한문과 동양고전을 손에 떼지 않았고, 특히 <논어>는 MP3로 녹음하면서 들을 정도로 애독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논어>의 휴머니즘에서 육아와 가족생활에 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글 몇 개를 모 매체에 게재하던 중 한 출판사로부터 출판 계약 제안을 받았고, 원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주의소리>에 칼럼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출판 작업은 원활하지 못했고,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고향 제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니, ‘어부가’는 저를 고향으로 데려다준 ‘고마운’(?) 글입니다. 칼럼을 계속 쓸 수 있었던 까닭은 공부방을 하면서 제주의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몇몇 가족들과 논어 윤독회를 진행하면서 글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어부가’를 통해서 제주에 돌아올 수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았고, 제주 생활이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글을 쓰면서 생각도 많이 정리돼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아동문학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시를 썼다가 소설을 썼는데, 나중에는 아고라 토론글, 블로그 포스팅, 기사작성 등 저잣거리에서 할 만한 격한 글들을 쓰다가 아이 아빠가 된 후로는 그림책에 흠뻑 빠지며 아동문학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었으면 하는 그림책’(이하 ‘어부책’) 칼럼은 그림책 읽기의 하나입니다. 이와 같은 조합은 ‘어부가’ 이후에 펼쳐질 글의 성격을 암시합니다. ‘어부가’에서 주고 싶었던 것은 고전과 어린이, 그리고 가족이었습니다. 주제 하나하나가 모두 역동적입니다. ‘어부가’라는 그릇은 역동적인 주제들을 엮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좀 더 환상적이고 과감하고, 어린이의 마음에 가까운 문학적 형식으로 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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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도 미치지 못한 ‘어리석음’

‘어부가’에서 전하는 공자의 마지막 메시지는 ‘어리석음’입니다. <논어>에는 공자가 자공의 ‘머리 좋음’과 ‘말 잘함’을 지속적으로 억누르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눌언민행(訥言敏行 : 말은 어눌하게 하되 실천은 재빠르게 한다)’라는 대목도, ‘요산요수(樂山樂水 : 어진 이는 산처럼 듬직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처럼 역동적이다)’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공에게 직접 말했던 “군자는 말에 앞서 먼저 행동하고, 후에 자신이 행동한 바를 말해야 한다.”(先行其言, 而後從之)(「위정」 편)도 말을 억누르는 행동의 우직함을 뜻하죠. 공자의 이와 같은 정신을 상징하는 모델은 ‘영무자(甯武子)’입니다. 영무자는 위나라 대부이며 이름은 유입니다. 「위령공(衛靈公)」이라는 편명에도 있듯 위(衛)나라는 공자의 조국 노(魯)나라처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위태로웠습니다. 북쪽의 진(晉)나라와 남쪽의 초(楚)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그 사이에 있었으니 보통 지혜로는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조정에는 진나라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정파와 초나라 편을 들어야 한다는 정파가 극심한 대결정치를 펼치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죠. 그나마 문공(文公) 때는 현명하게 나라를 잘 운영해 위태로운 지경은 피했지만, 성공(成公) 때는 나라를 잃게 되었습니다. 영무자는 유성룡이 선조를 모시고 피난길을 올랐던 것처럼 성공을 모시고 갖은 고생을 다 했습니다. 공자가 영무자의 지혜를 칭찬했지만, 영무자의 어리석음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영무자의 지혜란 앞선 임금 문공이 도가 있으니(정치를 잘 하니) 영무자가 할 일이 없음을 깨닫고 정치 일선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입니다. 영무자의 어리석음은 똑똑한 자들이라면 마다하기 마련인 성공과의 망명길을 기꺼이 수행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공자 역시 노나라 소공(昭公)이 실정(失政)으로 망명길에 올랐을 때 수행했었죠.

공자는 말 잘 하고 똑똑한 사람을 싫어했습니다. 자로, 자공, 재여가 공자에게 자주 혼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는 이들이 스승에게 혼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제가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면 무척 야단을 많이 맞았겠구나. 아이를 키우면서 ‘어리석음’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부모가 아이 앞에서 똑똑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보다, 아이처럼 어리석어지는 모습이 더 낫지 않나 싶어요. 아이들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부모를 생각하고 가족과 친구를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에게조차도 계산을 하지 않나 생각할수록 부끄럽습니다.

아이에게 말로 한 번 말했다면 몸으로 한 번 말하자 하면서도 자꾸 아이에게 말을 하려고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입을 보는 게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부모의 행동거지를 보면서 배우는데 말이죠. 그 동안 똑똑한 아빠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은 어리석은 아버지, 말보다는 실천으로 이야기하는 아버지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마칩니다. 좋은 그릇에 글이 채워지면 다시 노크하겠습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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