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 제주에서 길을 묻다] ④ 괴혈병을 날려 보낸 거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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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향. /사진 제공=장태욱 ⓒ제주의소리
현대 의학계에서도 괴혈병 선원들을 대상으로 수행했던 린드의 실험은 매우 훌륭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는 괴혈병의 발병 원인이 선원들의 식사에 채소와 과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직감했고, 6가지 그룹에 대해 각기 변인처리를 달리해 그 결과를 비교함으로써 이를 증명해냈다.

하지만 영국해군이 린드의 제안을 공식으로 채택하기까지는 무려 42년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괴혈병이 창궐했던 당시 상황에서 정책적 판단이 장시간 지연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었다.

우선, 린드의 실험이 고작 12명의 선원을 대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학계가 전폭적으로 인정하기에는 실험 규모가 너무 작았다는 것이 한 원인이다. 게다가 당시 린드가 영국 의학계에 영향을 줄 만큼 명망 있는 학자가 아니었다는 점도 또 다른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린드 자신도 자신의 실험 결과에 대해 강력한 확신을 갖지 못한 점도 원인이다. 그는 훗날 영국 해군병원에 외과과장으로 근무할 때에도 감귤치료제를 괴혈병 환자에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괴혈병 임상실험이 인정받기 까지 42년

그런데 영국 의학계도 별 관심을 갖지 않았고 실험을 수행한 의사도 확신을 갖지 못해 자칫 폐기 처분될 뻔 했던 실험성과는, 영국 해군이 두 거장을 만나면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사이자 탐험가로 인정받는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그 중 한 사람이고, 영국 해군의 내과 책임자였던 길버트 블래인(Gilbert Blane)이 또 한 사람이다.

제임스 쿡 선장은 유럽인 중 오스트레일리아에 맨 처음 발을 디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1768년에는 인데버(Endeavou)호를 지휘하면서 함장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함장으로 처음 부임할 때부터 선원들의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쿡 선장이 린드의 실험 논문을 읽어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괴혈병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린드가 제안한 방식과 일치했다. 우선 배를 청결하게 유지했으며, 깨끗한 물을 충분히 실었다. 그리고 언제든 가능하면 신선한 식품을 구비했으며 특히, 양배추· 오렌지· 레몬 등 괴혈병 치료에 좋다는 식품을 선원들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관리했다.

1772년~1775년에 레졸루션(Resoution) 호를 타고 3년 17일 동안 11만 킬로미터를 항해하는 기록적인 장기항해에서도, 쿡 선장은 괴혈병에게 단 한 명의 선원도 내주지 않았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학사원의 정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거장인 길버트 블래인은 제임스 린드와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영국해군에 소속된 의사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린드의 논문을 읽고 감귤이 괴혈병 치료에 특별한 효능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1779년에 영국 해군함대에 내과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내과과장으로 임명되는 해에 인도로 가는 서포크(Suffolk)호에 승선해 약 160일 동안의 긴 항해에 동참했다. 서포크호는 인도로 가는 동안 중간 기착지 없이 항해를 이어갔기 때문에, 블레인은 이 기간을 이용해 괴혈병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해 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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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혈병을 극복한 두 거장

그는 항해 도중 날마다 전체 선원들에게 럼주· 물·설탕·레몬·쥬스 등을 혼합한 음료를 제공했는데, 초반에는 선원들 사이에 괴혈병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항해가 오래 진행되었을 때 몇몇 선원들에게서 미약하게나마 괴혈병 초기 증세들이 나타났다. 블레인은 괴혈병 증세를 보이는 선원들에게 오렌지 주스와 레몬주스를 추가로 제공했는데, 그 결과 환자들이 깨끗이 완치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1795년이 되어서야 영국 해군성은 괴혈병 예방을 목적으로 모든 해군 병사들에게 감귤주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린드가 사망한 이듬해이고, 논문을 발표한 지는 42년 만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나중에는 오렌지와 레몬 대신에 라임오렌지 주스를 제공했는데, 이는 당시 영국이 캐리비안 연안의 식민지를 통해 라임오렌지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국해군성의 결정은 효과를 발휘해 19세기에 들어서자 괴혈병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편, 영국해군 병사들이 육지에서 라임 주스를 마시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 미국해군 병사들은 영국 해군을 “라임주스쟁이(lime-juicers)”라고 놀리다가, 나중에는 줄여서 “라임쟁이(Limeys)”라 부르게 되었다. 이 애칭이 굳어져 “Limeys”는 영국해군 병사들은 물론이고 영국인 전체를 부르는 속어가 되었다. 

감귤의 성분이 괴혈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은 실험적으로 검증이 되었지만, 감귤의 어떤 성분이 그 역할을 하는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특히, 1930년대 초 많은 과학자들이 괴혈병을 치료하는 성분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는데, 1937년 노벨위원회는 헝가리인 알베르트 센트죄르지(Szent-Györgyi)에게 비타민C(아스코르빅 산 ascorbic acid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영어의 antiscorbutic, 항괴혈병 분자와 같다)를 분리 추출한 공로로 노벨 생화학·의학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월터 노먼 호워스(Walter Norman Haworth)에게는 비타민C의 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여했다. 비타민C의 발견은 1930년대 인류가 이뤄낸 최대의 업적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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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민C의 구조.

비타민C, 1930년대 최고의 발견

 오랜 연구 결과, 괴혈병은 비타민C(혹은 ascorbic acid)가 결핍되었을 때 나타나는 질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타민 C는 콜라겐의 합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인체 내에 비타민C가 부족해지면 콜라겐 합성이 불량해지고 결합 조직에 이상이 생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래 진행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출혈이 발생하며 잇몸과 근육이 약해지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과거 선원들이 괴혈병에 쉽게 노출되었던 원인은, 사람의 몸이 비타민C를 스스로 합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체내에 3개월 정도밖에 저장할 수 없는데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오랜 시간 항해를 계속하다보면 식단에 채소와 과일이 부족해지게 마련이었고, 결국은 체내 비타민C 결핍으로 이어져 괴혈병을 불러온 것이다. 18세기까지는 과학적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의사들과 선장은 신선한 감귤이 선원들의 목숨을 지키는 생명의 과실임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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