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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라기 지로상 수상작 <조선과 일본에서 살다> 번역 출간


제주4.3에 휘말려 일본에서 평생을 살아온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의 신간 <조선과 일본에서 살다>(도서출판 돌베개)가 최근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됐다. 지난해 일본에서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상을 받으며 문학성을 인정받은 김시종의 책에는 혼란스런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개인의 삶과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조선과 일본에서 살다>는 시인이 8.15와 4.3을 중심으로 평생의 이야기를 풀어낸 일종의 자전집이다. 긴 세월 가슴에만 묻어둔 채 세상에 내놓지 않았던 기억들을 편집자의 오랜 설득 끝에 이와나미 월간지 <도서>(圖書)에 3년간(2011년 6월~2014년 9월) 연재, 가필을 더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 특유의 문체가 드러나는 생생한 문장들은 그 당시와 현재 사이에 놓인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역사적 시간들을 증언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42회 오사라기 지로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일본 현지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오사라기 지로상은 아사히신문사가 제정한 문학상으로 탁월한 산문작품을 가려 수상한다. 오에 겐자부로와 시바 료타로,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도 수상했다. 특히 김석범은 제주 4.3을 그려낸 대하소설 <화산도>로 1984년에 제11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화산도>는 지난해 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권이 번역 출간됐다.

<조선과 일본에서 살다>를 통해 비춰지는 김시종의 삶은 심적, 물적 고통과 혼란이 내내 뒤섞여 있다.

식민지의 황국소년으로 맞이했던 해방, 남북분단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과 갈등 속에서 투신한 남로당 활동, 제주4.3의 전개와 참혹했던 학살의 광풍, 그 끝에 감행해야 했던 일본 밀항,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삶까지... 현대사의 쓰라림이 여전히 생생한 한 평생을, 신중하고도 힘 있는 고유의 문체로 술회했다.

시인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4·3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에게조차 숨김없이 털어놓지 못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남로당 당원으로서 참가했다는 이야기가 엄연한 인민봉기였던 4.3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이를 공산폭동이라 강변한 미군정과 군사정권의 논리에 동원될 것을 염려한 탓이다. 또 한편으로는 불법 입국했다는 자백인 셈이 되는 증언을 함으로써 남한 군사정권으로 강제송환당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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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저자는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1954년에 이르러서야 청년기의 분기점을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만큼 지난 세월 깊은 두려움과 후회를 안고, 그 부채를 갚기 위한 여러 활동에 힘써온 그는 자신을 “4.3사건의 빚을 앞으로도 계속 짊어지고 살아야 할 사람”이라고 책 속에서 말한다. 

출판사는 “<조선과 일본에서 살다>는 무엇보다도 그간 저자가 오랫동안 속으로만 삼켜온 제주 4.3에 대한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4.3을 전후로 한 김시종의 생생한 증언과 마주하면, 이데올로기와 맹목적인 신념의 충돌이 개개인의 삶을 얼마나 크게 뒤흔들었는지 느끼게 해준다.

번역자 윤여일 씨는 현재 제주대학교 SSK 전임연구원으로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사상의 원점>, <사상의 번역>,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등을 썼으며,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1·2),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 등을 번역했다.

도서출판 돌베개, 316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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