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갯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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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메꽃. ⓒ 고봉선

2014년 4월 16일. 안오름에 갔다가 내려오던 그 길 그 순간은, 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날마다 보는 풀꽃들이지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휴대전화의 갤러리 화면을 넘기다 무심코 인터넷에 접속했다. 인터넷이 술렁였다. 바다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세월호와 함께 다급한 목소리의 현장중계. 덜컥, 무슨 일이랴 싶었지만 모두 구조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구조된 사람도, 시체로 돌아온 사람도, 유가족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해 여름, 곽지 바닷가를 찾았다. 어쩌면, 그곳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녀의 근무처로 갔다. 빼어난 미모를 지닌 그녀. 하지만 외모와 달리 그녀는 무척이나 걸걸한 성격의 소유자다. 웃음소리 한방에 그녀가 가진 미모는 다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그녀.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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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메꽃. ⓒ 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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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메꽃. ⓒ 고봉선

그녀와 나 사이에 놓였던 것은 커피였는지 생수였는지 기억에 없다. 그저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무슨 이야기인가 오갔다는 사실만을 기억할 뿐이다. 물론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모른다.

그녀와 헤어지고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오는 길이다. 좌측에 펼쳐진 쪽빛 바다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그런데 가만, 우측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기분. 돌아다본 그곳엔 갯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차를 멈추고 갯메꽃과 마주 앉았다. 갯메꽃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착각일 뿐, 갯메꽃이 바라보는 곳은 내가 아니라 저 먼 바다였다.

비록 카메라가 고장인 휴대전화지만 셔터를 눌렀다. 마치 시력을 잃어가는 사람처럼 갯메꽃은 뿌옇다. 메가폰을 들고 목이 터지라 외치는 사람처럼, 그 흐릿한 모습으로 바다를 향해 있었다. 무엇인가, 예리한 기운이 콧등을 치고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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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메꽃. ⓒ 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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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메꽃. ⓒ 고봉선

동경의 대상이나 다름없었을 제주로 향하던 단원고 수학여행단. 삶의 현장인 화물차를 배에 실었다가 고스란히 잃어버린 사람들.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배에 탔던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은 대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모든 삶을 잃어버린 경제적 파탄으로, 악몽과 함께 우울증으로 혹은 알코올에 의지하며.

누가 꽃 같은 저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갔을까. 누가 그 부모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고 있을까. 누가 살아남은 자들을 괴롭히고 있을까. 누가 이들을 지켜보는 가슴을 안타깝게 하고 있을까.

문득, 설탕통에 기어든 개미떼가 떠올랐다. 자칫 뚜껑을 잘못 닫은 설탕통엔 그야말로 개미가 떼로 기어든다. 그런데 가만 보면, 설탕통에 기어든 개미들은 대부분 통 속에서 죽었다. 단맛을 좋아한 그 대가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월호의 희생자들은 단맛을 좇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학습의 한 과정으로 수학여행에 나선 길이었다. 삶의 현장에서 부지런히 뛰던 사람들이었다. 부정부패란 단맛을 가득 담아 놓은 세월호. 그렇게 살이 오른 부정부패는 애꿎은 목숨을 가둬놓고 목숨을 앗아갔다.

목이 쉬어라, 바다 향해 외치듯 보이는 갯메꽃. 그 앞에서 나는 들었다, 음식이 아니라 돈으로 배를 불리고, 부를수록 더 배가 아파지는 이 땅의 부정부패가 저 고귀한 목숨을 앗아갔다는 소리를.

고인의 명복과 함께 아직도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유족의 아픔이 하루빨리 치유되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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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메꽃. ⓒ 고봉선
갯메꽃

설탕물 좋아하다 당뇨에 걸린 세상
귀하고도 귀한 목숨 설탕통에 가뒀네
발 동동 저 바다 향해 손나발을 하는 꽃.

처방전도 소용없는 세포들이 분열하여
쳐나간 새끼 따라 제주로 오던 꽃들
축축해, 손바닥 안에 분노만이 맴도네.

짓눌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였네
맹골수도(孟骨水道) 관을 따라 꺼윽꺽 숨넘어갈 때
입을 꾹 다물던 꽃들 파도 향해 피었다.

이제라도 필요한 건 오로지 다이어트
너도나도 당분 섭취 피둥피둥 살 오른
이 땅의 부패 앞에서 목이 쉬는 갯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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