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 옹기쟁이 제주도예원

대정읍 무릉농공단지에는 지독한 고집쟁이가 있다.  오늘도 그는 손 끝에 박힌 흙을 털어내며 악수를 청한다. 흙 묻은 손이 정겨워서 한참을 잡고 있다.

25년 동안 제주전통옹기를 만들려는 노력이 그의 손과 흙을 어느덧 하나의 색깔로 입혀놓았다. 제주도예원의 앞마당에는 그의 노력과 아픔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터지고 뭉그러진 옹기들이 어느 전장터에 전사자의 비석들처럼 누워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와 어지럽고 산만하다고 말한다고 털어놓는다. 그 아픔들을 감추지 않고 이렇게 늘어놓은 이 사람은 어디로 이처럼 발자국을 누르며 가고 있는 것일까?

그의 도예원입구에는 이제 '제주도예원'이라는 간판대신에 '석요(石窯)'라는 두 글자가 새겨있다. 그의 옹기를 탄생시키는 돌가마의 다른 이름이다.

왜 하필 한자이름을 썼을까? 우리나라사람들보다는 일본인들이 제주옹기의 가치를 알아 자주 찾는다는 그의 설명이 그 이유를 추측하게 해준다. 제주전통의 돌가마에서 어느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오직 옛 제주의 옹기장이들이 만들었던 흙의 생명력을 담아냈던 제주옹기가 왜 하필 우리나라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을까?

▲ 제주도예노랑굴.
제주전통의 돌가마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자연의 옹기를  1200도의 높은 열로 자연유약으로 채색된  건강한 그릇을 만든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제주에서 쓰고 있는 항아리는 겉표면은 불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무늬가 그리고 안쪽은 밝은 주황색의 색깔을 띠는 옹기를 볼 수 있다.

그 건강한 옹기가 어느새 점차 사라지고 화학유약으로 검고 두껍게 칠해진 값싼 옹기가 어느새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그릇들과 요즘은 그 플라스틱에 황토를 넣고 맥반석을 넣고 또 무슨 좋은 성분을 넣었다는, 그런 그릇들에 밀려 이제는 박물관의 한 켠이나, 호사스러운 집의 장식품으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제주의 돌가마를 만들 돌 하나 하나를 고르려고 온 들을 헤메고, 땔 깜을 위해 그리고 제주산야의 흙을 구하기 위해 그는 거의 일년의 거의 모든 시간을 여기에 쏟아 붓는다. 정작 옹기를 빗고, 굽는 것은 찰나의 일일 뿐이다. 굳이 고집스럽게 꼭 그래야만 하는가 물어 보려고 해도 그의 눈빛 앞에선 그 어리석은 질문이 사라져버린다.  제주옹기에 담긴 맑은 빗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답은 충분하다.

이제 이 고집스런 사람의 고집에 동조해줄 사람들도 나타날 때도 됐는데, 여전히 그의 눈빛은 퀭한 이글거림이고,  돌가마의 불은 여전히 그의 피와 땀과 눈물을 먹고 사른다.  떠나는 시간, 다시 한번 그의 손을 잡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거우다'"는 공허하게 들리는 인사로 무거운 내 마음만 추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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