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비등점에 이른 정치혐오증, 그래도 한 표의 표심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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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의 모습. ⓒ 오마이뉴스

사감(私感)과 사욕(私慾)의 공천

추악한 역사는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것인가. 아무리 “남 얘기하기 쉽다”고 하지만,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여야의 공천 행태는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에 비춰 봐도 너무나 비상식적이었다. “요즘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일은 본디 ‘얼굴이 두꺼운’ 우리 정치판의 지도자들에겐 더 이상 수치스런 일도 아니었다. 정치의 문외한으로서 감히 이번 공천을 요약하자면, 여당은 ‘사감(私感)’의 공천을, 야당은 ‘사욕(私慾)’의 공천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여당 공천의 화두는 ‘찍어내기’였다. 최고 권력의 마음에서 벗어난 현역의원들을 추려내기 위해 이른바 ‘친박 감별사’가 등장했다. 적어도 여당에 있어서는 모든 권력이 국민이 아닌 최고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엄연한 현실에서 공천후보들 대부분이 앞 다퉈 화려한 화술을 앞세워 최고 권력에 대한 충성심을 주장했다. 친박 감별사의 임무는 단지 후보들의 ‘입에 침 바른’ 언변만으로 그들의 진심을 가려내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친박 감별사는 병아리 감별사가 울고 갈 정도로 ‘병아리들’을 척척 감별해 냈다. 후보들 중에서 친박과 비박을 가려냈고, 친박들 중에서 진박과 ‘그냥 친박’을 구별했다.

‘술 푼’ 해프닝

여당의 공천결과는 대체로 예상대로였다. 친박들은 대부분 공천을 받았고 진짜 비박들은 거의가 공천탈락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면 대구의 한 음식점에서 진박모임을 갖고 ‘진짜 충성심’을 감격스런 인증사진으로 박은 ‘진짜진짜’ 진박 핵심 후보들은 당연히 공천을 받지 않았을까. 그들의 지극정성으로 보면 최고권력의 마음만은 굴뚝같았겠지만,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그동안 최고 권력의 입맛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공천 가도에 급반전이 일어났다. 공천에 불만을 가진 여당대표가 ‘옥새’를 들고 튀어버리는 기상천외한 몽니를 부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중 몇 명은 결국 무소속이라도 출마도 못해보고 “닭 쫓다가 지붕만 쳐다봐야 하는” 억울한 병아리들의 ‘술 푼‘ 해프닝으로 남게 됐다. 이것을 그나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야당 공천도 막장인 것은 여당에 못지않았다. 여당이 ‘찍어내기’였다면 야당은 ‘자기찍기’였다. 내부 분열 국면을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분으로 긴급으로 구성된 이른바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하지만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의 중심인물들에게 당의 위기는 공천배정에서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공당의 공천 책임을 맡기는 것은 그야말로 “고양이들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은 당의 정체성을 지켜왔던 인물들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수첩’ 속 인사들을 속속 집어넣음으로써 자신들의 잇속을 철저히 챙겼다. 

초빙군주의 셀프공천

그 중에서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한 초빙군주의 이른바 ‘셀프 공천’은 정말 가관이었다. 지역구로는 한 번도 당선되지 못하고 비례대표 의원으로만 4선의 전력을 지녔다는 이 ‘땜빵’ 야당 대표에겐 권력은 역시 국민이 아니라 ‘벼랑 끝 전술’에서 나왔다. 그가 국민을 털끝 만큼도 의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대략 얼마 전 자당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일방적으로 중단시킴으로써 국민들의 열광적인 성원에 찬물을 끼얹을 때부터 진작 알아봤어야 했다. 한참 전에 정계에서 은퇴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에 네 번의 국회의원으로도 여전히 배고픈 그의 철없는 노욕을 순진한 국민들은 몰라도 정말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중앙위에서 그의 분수모르는 전횡에 태클도 걸었지만, 총선이라는 중대사를 목전에 두고 중책을 맡은 그가 삐쳐서 집에 들어 앉아 ‘뭉’을 쓰는 데야 무슨 수가 있으랴. 결국 모두가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을 수술을 맡은 집도의(執刀醫)라고 스스로 비유했던 그가 정말로 이 정당의 고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능한 의사라고 모두가 믿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가 “선 무당 사람 잡는” 서투른 솜씨로 제멋대로 갈라놓은 채 방치한 환자의 배가 더 걱정이 된 것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의사가 치료가 끝났는데도 계속해서 환자집안에 눌러앉아 주인노릇을 하겠다는 게 어디 상식적인 일일까.

계륵의 절묘한 타이밍

결국 야당대표의 셀프공천 해프닝은 비상사태 수습을 위해 초빙된 당대표가 무리한 전횡을 휘두르다가 당의 지지율을 크게 까먹는 바람에 그 자신이 당의 비상사태의 주범이 돼버린 역설이었다. 먹기도 그냥 버리기도 아까운 것을 계륵(鷄肋)이라고 했던가. <삼국지(三國志)>의 간웅 조조는 결국 계륵을 버렸지만, 야당의 계륵은 절묘한 타이밍을 무기로 폐기의 위기에서 스스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국회를 ‘오수(午睡)’의 쉼터로나 삼는 인구가 한 명 더 늘어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그동안 중요 선거를 앞둘 때마다 “국민들에게 정치혐오증을 불어넣는 것이 보수언론들의 몫”이라는 비판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만큼은 분위기가 다르다. 양비론이 주 논리인 보수언론들의 요란한 이간질이 없어도 여야를 막론한 이 같은 추악한 공천행태는 투표소로 향하는 국민들의 발길을 돌리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투표권 행사에 불참한 적이 없는 필자조차도 이번만큼은 별로 투표할 의욕이 생기지 않으니 말이다. 여기에다 야당들의 사분오열은 차라리 지리멸렬의 자폭에 가깝다.

‘먹튀’ 의원들의 천국

덕분에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정당은 여당일 것이다. 이번 총선의 적극 투표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여당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가능한 180석을 넘어 개헌선인 200석 이상을 획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정도다. 이 예상치를 근거로 20대 국회의 모습을 그려보면 너무나 뻔하다. 국회가 행정부의 하청기관인 ‘통법부’라는 오명은 더욱 심도를 더해 갈 것이고, 스스로 거세 경쟁을 한 야당들은 자신들의 무성의를 불리한 의석수 타령이나 하며 민의에 눈을 감고 뒤돌아서서는 ‘먹튀’ 의원들의 낙원에서 자신들만의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실속을 챙기는데 안주할 것이다.

한 표의 표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권리요, 책임인 투표권 행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번 총선에 대해 정부는 “야당 심판”을, 야당은 “정부의 경제실패 심판”을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선거는 기본적으로 인물을 뽑기 위한 것이지, 인물을 떨어뜨리기 위한 행사는 아니다. 대의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의 원칙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지금, 인물을 선택하기에 앞서 단순히 지역적 이익보다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상을 곱씹어 보고 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기에 필자의 단견이지만, 인물의 개인적 유능함이나 왜곡된 애당심보다는 양심과 소신이 더 중요한 선택기준이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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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그래서 필자는 부글거리는 정치혐오감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투표권을 행사할 생각이다. 총선이 권력들의 사욕대로 끌려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만 없기에. 누가 말했듯이, “우리나라가 청년실업 사상최고, 소득 불평등 아시아 최고, 자살률 세계 최고 등 부끄러운 기록들을 기록해 나가는데 제 자식의 고통마저 느끼지 못하는” 콘크리트 인간이 될 수는 없지 않는가. 미약한 한 표의 표심을 그들이 우연으로나마 제대로 읽어줄 불가능에 가까운 희박한 가능성에 기댈 수밖에.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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