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정치판이 못마땅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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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한 표’의 준엄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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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공허한 울림만 가득

참 이상한 선거판입니다. 공천과정에서부터 볼썽사납더니만, 선거운동과정에서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무리 치열한 선거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양심이 만나는 영역일진대, 이래도 되는 것인지, 정말 보기가 민망합니다. 최소한 염치마저 없습니다. 역시 정치에서의 양심은 관념적 사치입니다.

누군가는 선거를 ‘축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축제라면 필시 ‘다 함께 살자’는 놀이일 텐데, 요즘 선거판을 보고 있노라면, 축제의 정신은 고사하고, 웬걸 모두가 ‘너 죽고 나 살자’는 판 입니다. 여기저기서 ‘유권자 여러분!’을 목청껏 부르짖지만, ‘임자를 찾지 못한 공허한 울림’만이 사방에 가득합니다. 언론마저 ‘여론조사’가 선거보도의 전부인 양, ‘경마저널리즘’의 천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하는 소리지만, 선거가 자꾸만 좋지 않은 쪽으로 진화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정치행태도 ‘정치인들의 정치’에서 ‘사회의 정치’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내용도 ‘권력의 정치’에서 ‘형성의 정치’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건 ‘자기 창조적인 정치’를 의미합니다. 거기선 어설픈 ‘정치논리’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겠다”는,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을 늘어놓아보았자 오히려 구차스럽기만 합니다.

새로운 비전은 고사하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선거판에선 언제나 새로운 정치비전이 제시돼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정의돼야 할 것인지, 정치권은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비전은 고사하고, 모두가 정치공세뿐입니다. 우리고장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웅대한 정치철학쯤은 애시당초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고만고만한 공약으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치를 너무 냉소에 붙이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권자의 손을 잡고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에선 도대체가 ‘진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는 양심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유달리 목청을 돋운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거리엔 요란한 소리로 넘쳐납니다. 길 위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한들 그게 어디 달리 보이겠습니까? 입으로는 ‘우리’를 외치면서도 빨파초 옷 색깔로 ‘너와 나’를 가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눈엔 이미 주민은 ‘우리’가 아닌, 그저 ‘한 표’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정치상황이 못마땅하여 혹 기권을 생각하는 유권자가 있음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생각도 그것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건 분명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기권도 적극적인 정치의사 표현의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정치상황이 못마땅하기 때문에 더욱 투표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 ‘한 표’의 준엄함을…. 그리하여 오만한 정치를 심판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살고자 합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주인으로서 ‘사람답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도 자유인의 존재를 가리켜 ‘자기 자신을 위해 있음’으로 규정합니다. 자유스럽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주인으로서 자기를 위해 살며, 자기 아닌 그 어떤 사람에게도 예속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의미에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법과 질서를 스스로 형성하고 다스릴 수 있을 때, 나는 사회 속에 나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들 자신이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자기 창조의 정치’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피로써 지키고자 하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우리가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우리에게 정치적인 권리가 골고루 나뉘는 것만을 통해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건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우리가 참된 의미에서 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정치적 권리를 주체적으로 행사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생각의 힘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참된 의미에서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진부합니다. 필경 제 환상일 터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좌절과 절망이 그 얼마인데, 아직도 깨지 못하고, 꿈속을 헤매고 있는, 제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환상은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한에서만 지속된다던가? 그래서 내친김에 이야기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우리들의 의지와 책임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라는 것을…. 그 흐름을 우리의 ‘한 표’가 좌우한다는 것을….

완전한 주인으로 등장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그 선택은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한 지역의 대표로 중앙정치에 나서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역의식’만큼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역의식은 ‘제주’라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 저절로 형성된 사고방식입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의 판단기준이 모두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인물 됨됨이가 형성되는데 있어 역사와 전통이 갖는 선험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역시 사람의 자기형성은 역사적으로 이뤄집니다. 그게 바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의 가능성’입니다. 자기가 대표하고 있는 지역을 ‘나’와 같이 ‘우리’로 인식한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지역의식’을 상정하지 않는 ‘지역의 대표’는 무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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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홍 언론인.
13일이 투표일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이 순간, 이 사회와, 이 나라의 완전한 주인으로 등장한 셈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책임이 따릅니다. 오늘의 정치상황이 못마땅하더라도, 투표를 잘 해야 합니다. 주권을 행사할 때는 소홀히 했다가 나중에 가서 정치를 탓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는 참된 의미에서 이 세상이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 강정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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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2016-04-11 10:58:49
기고자 옆에 붙은 <언론인>이라는 타이틀은 편집 과정에서 제주소리에서 붙인 건지요?
언론인이라고 하는 하는 것은 구체적인 직업이 아니라 직업군을 일컫는 건데 본인 스스로 자기 이름에 이를 붙인다는 건 좀 이상하지요...그리고 지금은 은퇴하신 분 같은데 궂이 붙이자면 전 언론인이라고 하시든지...아니면 전 전 신문기자..이 정도가 좋을 듯합니다.
21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