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28)

오름이나 양지바른 무덤가 아니면 들판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 중에서 은은한 보랏빛을 간직하고 봄을 맞이하는 꽃이 있습니다. 무심결에 성큼성큼 걷다보면 작디작은 꽃들을 밟기도 하기 때문에 발걸음이 조심스럽기도 한 계절입니다.

그러나 믿습니다.
그 작은 꽃들이 비록 밟힐지라도 다시 일어서고, 밟힘으로 인해 더욱 더 강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비록 밟혀 그들의 꽃잎이 일그러지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들의 꽃들이 예뻐서 들꽃들에게 눈맞춤을 한 이후 어린시절 만났던 그 꽃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만날 때 마다 "야, 너 몇년 만이냐! 지금껏 너를 잊고 살았는데 너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있었구나!"간탄을 합니다. 그리고 그 꽃을 보는 순간 유년의 시절, 그 꽃과 관련된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하죠.

구술봉이.
마치 작디작은 구슬을 하나 올려 놓으면 좋을 것만 같은 모양새입니다. 작디작은 모습을 보면 유년의 시절 양지바른 곳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어린시절 많이 하던 놀이 중에는 구슬치기와 딱지치기가 있었습니다. 딱지치기의 경우는 손수 종이를 접어 만든 딱지도 있고, 구멍가게에서 산 동그란 딱지도 있었습니다. 특히 작은 고사리 손에 쏙 들어오는 딱지는 주로 여름에 나무그늘을 찾아 옹기종기 모여서 별과 숫자를 비교해 가면서 놀았는데 구슬치기는 주로 겨울철에 하는 놀이였습니다.

차가운 유리구슬이나 사기구슬은 사실 여름철에 놀기 좋고, 딱지놀이는 옹기종기 모여서 해야 하니 겨울철에 하기 좋은 놀이였을 터인데 계절이 바뀐 듯해서 늘 궁금했습니다.
구슬치기를 하다보면 손이 다 터지고 동상까지 걸려서 고생을 하기도 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놀이에도 계절이 있어서 구술치기는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딱지치기는 이른 봄에서 여름철에 주로 했습니다. 추워서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더워서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말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의 전래놀이가 기본적으로 주는 묘미를 봅니다. 단순히 즐거움 이상의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주에는 꿩이 많아서 꿩메밀국수나 꿩만두 등 꿩요리가 유명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꿩의 사냥철은 겨울이 제격이요, 벌레들이 많은 봄과 여름, 가을에는 꿩사냥을 하지도 않지만 그때잡은 것들은 맛도 없답니다.
육지에서는 참새가 그랬습니다.

텃새 참새는 겨울철에 주로 사냥을 해서 연탄불에 소금을 솔솔 뿌려가며 구워먹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삼태기를 이용해서 잡거나 새그물을 이용해서 잡기도 했지만 Y자형으로 된 나무를 이용해 새총을 만들어 잡기도 했는데 그때 총알로 유용하게 사용되던 것이 바로 이 구슬이었습니다. 물론 작은 돌멩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동그란 구슬에 비하면 돌멩이는 총알로 사용하기에는 별로였답니다.

그러나 새총을 이용해서 새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난무했지만 새총으로 새를 잡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딱 한번 우연히 참새 한 마리를 새총으로 맞춰 잡은 적이 있습니다. 연탄불에 참새를 구구워먹는데 정말 너무 맛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습니다.

"야야, 어쩌다 잡힌거니까 매일 새총들고 참새 잡는다고 다니면 안된다."

그런데 그 뒤로 한 동안 새총으로 참새를 잡는다고 구슬을 챙겨들고 다녔답니다. 한 마리도 잡질 못했지만 말입니다.

   
구술봉이를 보니 이런저런 유년의 시절, 개구쟁이 시절이 떠오릅니다. 양지바른 동산에 앉아 지천에 깔린 구술봉이를 따서 꽃목걸이도 만들고, 소꿉놀이도 하던 아련한 유년의 기억들까지 마음 깊은 곳에서 따스하게 올라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이 구술봉이에 대한 추억들이 어떻게 남게 될까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그 예쁜 꽃들이 지천인데도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조차도 없는 아이들을 보면 교육이 제대로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 아닌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들판으로 나가 우리 들꽃들에게 눈맞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참 좋은 교육일텐데 말입니다.

요즘 오름을 오르며 그 시선을 땅으로 주면 수많은 꽃들이 앙증스럽게 피어나고 있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제주의 꽃들과 눈을 맞춰보시는 시간, 행복한 시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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