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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녀 시인 <베롱한 싀상> 출간..."첫 제주어 4.3 시집"


제주어보존회 회원이자 창조문예 회원으로서 제주어 시 작품을 꾸준히 펴낸 황금녀 시인이 제주4.3을 소재로 한 신간을 냈다. 자신이 9살 때 겪은 4.3을 오로지 제주어로 풀어낸 <베롱한 싀상>이다.

시인은 어릴적 4.3에 대한 기억과 침묵으로 보내야했던 긴 세월을, 책 속에서 제주어 시로 썼다. 4.3 회오리에 휩쓸려 희생된 가족과 이웃보다는,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한과 그리움에 대해 풀어간다. 

4.3 당시의 공포에 가득 찬 기억을 풀기도 하고, 떠난 이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별가를 부르듯, 유언하듯,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들을 조용조용 읊는다.  작가는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처참하고 억울한 4·3사건을 향해 상생과 화해가 묻어있는 마음을 길어 올린다. 

시를 제주어로 쓴 데에는, 소멸 위기 언어로 등록된 제주어를 보존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담겨있다. 낯선 제주어 단어들을 몇 번씩 곱씹어보면 9살 어린 아이가 품어온 아픔이 진하게 뭍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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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녀 시인의 <증손녀의 비념>. 그직 아시날: 그 그저께, 보시: 보시기, 굴축: 빠지거나 줄어든 상태, 웃드르: 중산간 마을, 벨 하영: 별 많이, 적돋다: 군것들이 더덕더덕 생긴 것, 굽뎅이: 밑둥치, 부럭시: 부피, 훍은: 굵은, 가온딘: 가운데는, 멍쿠젱이: 옹이궹이, 문뚱엔: 문 앞엔, 몰마농꼿: 토종 수선화.  ⓒ제주의소리

제주어는 제주인의 삶을 저장하고 제주문화를 전승하는 매개체이다. 제주어로 전하는 4·3사건은 제주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을 오롯이 담고 있다. 시집과 마주하면 제주어와 생활문화 등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가족이 반갑게 만나는 따뜻한 느낌의 책 표지는, 작가가 이룰 수 없는 바람을 직접 그린 것이라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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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녀 시인. ⓒ제주의소리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출생인 황 시인은 1960년 MBC 창사기념 문예공모 수기에 당선됐고, 2004년에는 제2회 기독여성 문예공모 시 부문 대상, 2001년 창조문예 신인상, 올해 2월 종려나무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주님 뵈올 날 늴모리 동동>, <복에 겨워>, 동시집 <고른베기>, 제주어동시집 <착한둥이>을 펴냈다. 

도서출판 각, 126쪽,  1만2000원

문의: 도서출판 각(064-725-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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