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귀포시가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조직위의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 요청을 거부했다. 영화제가 ‘정치성을 띠고 있고 편향성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곧바로 문화예술계와 지역사회의 반발이 일었다. 상영할 작품이 위법적 사유가 없는데다 당국이 일방적으로 문화예술적 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이다. <제주의소리>는 무릇 예술의전당이라면 '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예술공간'이 돼야 하고, 당국도 이러한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지역 문화예술계의 릴레이 기고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강정영화제 릴레이 기고] (2)  평화영화제서 로맨틱 코미디만 상영하랴? / 현택훈

이일하 감독의 영화 ‘울보 권투부’는 재일 조선인학교 권투부 이야기를 다루었다. 권투선수가 울보라는 것이 어색하다. 울보가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김철민 감독의 영화 ‘불안한 외출’은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생활을 하고 출소했지만 가족에게 편지를 쓴 내용 때문에 다시 감옥에 가게 되는 이야기의 영화이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두 딸과의 소박한 일상을 꿈꾸는 가장의 이야기이다.

마카미 치에 감독의 영화 ‘우리 승리하리라’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오키나와의 평화를 염원하는 영화이다.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환경이다. 오키나와를 통해 제주의 평화를 살피는 것은 이 시대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모두 ‘평화’이다. 평화 영화제이니 상영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평화 영화제인데 연쇄살인범에 관한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만을 상영할 수는 없지 않은가. 평화롭지 못한 상황의 문제를 살피고, 어떻게 평화를 구현할지 모색하는 것이 평화 영화제 아닌가. 

이번 서귀포예술의전당의 ‘강정 평화 영화제’에 대한 대관 불허 결정은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카메라를 걷어찬 것이다. 평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정치 편향적이라고 하는 것이 정치 편향적인 잣대이다.

지금 서귀포예술의전당은 보이지 않는 총을 영화인들에게 겨눈 것이다. 평화 축제의 장에 권력이라는 총을 겨누고 있다. 양은권 관장은 이번 불허 방침이 윗선의 지시인지 아니면 이른바 알아서 긴 조치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서귀포예술의전당은 시민회관으로서의 기능을 해야 한다. 지역 주민의 예술 향유의 기회를 박탈하고 어떻게 시민의 혈세를 받을 수 있는가. 문화의 다양성이 첫 번째 가치로 존중받는 시대에 자신의 사상과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는 일은 문화 공연 시설 기관장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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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택훈 시인.

제주도에는 아쉽게도 예술영화전용상영관이 없다. 독립영화가 설자리가 없다. 몇 년 전에는 제주영화문화센터 설립 전에 이와 비슷하게 도민의 정서에 반하는 영화는 상영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그후 제주영화문화센터는 여러 좋은 프로그램도 있지만 흥행 대작 위주로 상영을 하는 것에 치중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귀포성당에서 개막작으로 상영하는 김동빈 감독의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국가가 아이들을 수장 시키고 이제 평화마저 침몰시키려 하는가. / 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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