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C 대학생아카데미] 승효상 “서양 건축양식 받아들인 한국, 다른 건축에 눈 떠야”


현대인의 삶에서 ‘건축’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눈을 감고 다시 일어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사실상 건축물과 함께 한다. 작게는 한 개인에서 넓게는 한 도시, 사회까지 영향을 주는 건축. 누구보다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인문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건축을, 단순히 부동산이나 재산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며 이해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주최하고 제주대학교와 <제주의소리>가 공동주관하는 'JDC 대학생아카데미' 2016학년도 1학기 여섯 번째 강연이 14일 오후 2시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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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JDC대학생아카데미 강사로 나선 승효상 이로재 대표. ⓒ제주의소리

이날은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강사로 나섰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손꼽히는 승효상은, 국내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수근 아래서 15년간 건축을 배우며 실력을 쌓았다. 현재는 자신의 회사 ‘이로재(履露齋)’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장충동 ‘웰콤시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자택 ‘수졸당’,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등 그가 남긴 건축물은 단순한 건축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받는다.

승효상은 건축이 인문학이라고 단언했다. “건축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를 설계하는 것이다. 건축 설계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아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며 이런 점에서 건축은 인문학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건축은 시대와 문화를 대변한다. 의식주, 사고(思考)가 다른 서양과 동양은 건축 역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운데 중심에 힘이 집중되면서 주변부가 감싸는 서양식 건축은, 일개 건축과 더 넓은 도시건축에 까지 영향을 준다. 14~16세기 르네상스 시절이 대표적이다. 

중앙집권적인 건축 양식은 20세기 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접어들면서 보다 심화된다. 도시를 용도에 맞게 구분하는, 일명 ‘마스터플랜(Master Plan)’ 방식으로 변모한다.

도시를 도심·부도심·변두리로 구분하고, 성격에 맞게 다른 모습으로 건축물을 짓는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1955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시에 지어진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다. 프루이트 아이고는 대단위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 단지가 집단으로 형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합리성에 근거해 도시재건의 한 유형으로 선택된 마스터플랜은, 당시 “미래세대 주거의 완성”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그러나 실패라는 사실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프루이트 아이고는 목적별로 공간을 구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종, 소득에 따라 사는 곳을 갈라놨다. 건축이 차별의 상징이 된 것이다. 결국 이곳은 17년 만에 범죄집단의 소굴로 변해버렸고, 정부는 주택 단지를 폭파하는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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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건축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승효상 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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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도면을 직접 보여주며 강의하는 승효상 대표. ⓒ제주의소리

땅 위에 전혀 다른 성격의 건축을 인위적으로 입히는 이 같은 건축 양식은, 서양에서는 더 이상 찾지 않는 옛것이 돼 버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들어온 이후 여전히 살아 남아있다.

무수한 아파트와 단독주택으로 뒤덮인 도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원래 이 땅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승효상은 “마스터플랜 은 미국 같은 넓은 평지가 많은 지역에서 시도된 것이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지인 지역”이라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아파트, 단독주택, 국적불명의 건축물이 타협할 수 없는 전선(戰線)처럼 서있다. 갈등과 분쟁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무수한 갈등과 대립이 많은 이유에는 잘못 조성한 도시계획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연에 맞게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살았던 옛 사람들의 방식을 최대한 이어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종묘에서 있는 ‘월대’처럼 비움의 공간이야 말로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한 건축 미학이라는 것이다.

2009년 제주도 경관 관리계획 수립 연구에 참여했고, 대정 추사관을 설계하며, 4.3평화공원 조성 공모에도 신청하는 등 제주와 각별한 인연을 간직한 승효상은, 제주의 도로와 도시계획이 제주를 망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제주는 평면이 아니다. 한라산부터 해안까지 수직으로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5.16도로, 섬 중간을 자르는 도로들이 제주를 사실상 찢어버렸다”면서 “이렇게 도로를 만들면 안된다. 제주는 아스팔트에 떠있는 섬이 될 것이다. 생태계가 위 아래로 움직일 수 있게 도시 계획을 만들어야 제주도가 산다”고 신신 당부했다.

무엇보다 ‘관광’(觀光)이라는 단어에 '빛을 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제주관광 역시 제주가 가진 내면적인 역사와 상처까지 바라보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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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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