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귀포시가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조직위의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 요청을 거부했다. 영화제가 ‘정치성을 띠고 있고 편향성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곧바로 문화예술계와 지역사회의 반발이 일었다. 상영할 작품이 위법적 사유가 없는데다 당국이 일방적으로 문화예술적 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이다. <제주의소리>는 무릇 예술의전당이라면 '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예술공간'이 돼야 하고, 당국도 이러한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지역 문화예술계의 릴레이 기고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강정영화제 릴레이 기고] (4) 강정영화제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 불허를 비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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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DMZ국제다큐영화제에 다녀왔다. DMZ로 상징되는 평화, 소통, 생명의 비전과 함께 2009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7회째 이어오고 있는 이 영화제는 작년에 분단 70년을 맞아 “디엠지를 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분단70년 특별프로그램을 진행해, <북녘에서 온 노래>, <남북미생>, <안나, 평양에서 주체를 배우다> 등 북한에서 촬영‧제작한 작품들을 상영했다. 영화제조직위원회는 “파편화되고 내면화된 분단을 일상으로 사는 지금, 역사의 서사 속에서 개인의 삶은 어떤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지 묻고, 분단의 상징인 DMZ 너머로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항상 주지하자”는 분단70년 특별프로그램의 취지를 밝혔다.

또한 영화제의 「아트 앤 다큐」섹션에서는 ‘분쟁과 프로파간다’라는 콘셉트로 이데올로기로써의 이미지를 다룬 정치적 영화들을 선보이며 “이미지 역사에서 프로파간다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니콜라이 차우체스쿠 자서전>, <세계의 이미지와 전쟁의 각인> 등의 영화가 이에 해당됐다.

이 외에도 <검열된 목소리>, <러시안 딱따구리>, <삐라>, <이라크 영년>, <카미카제 특공대원의 증언> 등 역사와 시대에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어 다분히 ‘정치적인 성향’이라고 볼 수 있는 많은 수의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파주와 그 인근을 중심으로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위와 같은 영화들이 하루에 스물다섯 편 이상씩 상영되었고, 한편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 한 손엔 프로그램 표와 한 손엔 견과류를 한 움큼 쥐고 영화관을 오르내리는 동안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평소에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것이 과연 어떤 국가의 국민인지, 어떤 터전의 시민인지, 그 속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때때로 어둠 속에 던져진 질문처럼 아무런 형체가 보이지 않는 듯 느껴지곤 했던 내게, 영화들은 그런 종류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으로 스크린을 환하게 밝히며 나의 마음속에도 일종의 빛을 던져주었다. 영화들은 현실 비판적이고, 정치적이었으며, 진보적이고, 개혁적이었다. 그것이 좋았다. 아니, 좋고 싫음의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것이 옳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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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마을에서는 십여 년에 걸친 오랜 투쟁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6년 2월에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명칭 아래 강정해군기지가 준공되어, 길고 지난한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반대해온 마을 주민들 및 뜻을 함께 한 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언제나 시야를 뿌옇게 흐리며 공사장 입구에 흩날리던 시멘트 먼지들이 모두 가라앉은 대신, 화석처럼 굳어진 참담함이 잔잔한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시야를 가리게 되었다. 이제는 해군기지 입구에 서서 무엇을 기도하며 미사를 드려야 하는지, 축하 팡파르가 울리던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빛을 잃지 않은 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정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동안 싸워왔던 것이 단지 눈앞의 거대하고 흉측스러운 콘크리트 설치물만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정해군기지 준공식이 열리던 날 강정마을회는 강정을 ‘생명평화문화마을’로 선포하는 선포식을 갖고, “강정은 생명과 평화의 문화가 넘실거리는 마을,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인류의 고향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라 선언했다.

이에 이어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될 예정인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생명평화문화마을’로서의 강정마을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였다.

영화제 공식홈페이지에 게재된 조직위원회의 인사말에서도 “해군기지의 확장을 막고, 전쟁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뜻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영화제의 개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수렴되었다”고 설립동기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번 강정국제평화영화제에서는 지난 투쟁의 성과물로서 평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미래 세대를 교육할 체험의 장이 되고자 한다는 목적 아래, 평화, 환경, 인권, 여성, 생명, 노동, 농업, 이주민, 성소수자 문제에 관한 진전된 고민을 담은 국내외 34편의 다양한 작품들을 초대했다.

그중에서도 개막작으로 선정된 <업사이드다운>을 비롯해, <레드마리아2>, <스와니-1989 아세아스와니 원정투쟁의 기록>, <카미카제 특공대원의 증언> 등은 앞서 말한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던 작품들로, 특히 <카미카제 특공대원의 증언>을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나로서는 이번 영화제가 유난히 더 반갑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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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국제평화영화제의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 여부를 놓고 한 달 동안 허가 결정을 미뤄오던 서귀포시가 결국 지난 4월 12일 공문을 통해 대관을 불허한다는 통보를 보내왔다. 공문에 의하면 “본 영화제 행사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행사의 구성과 내용 등에 대해 관련 규정에 의거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전체적으로 정치성을 띠고 있고 편향성 우려가 있어 공공시설인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관은 부적절한 것으로 결정하였다”는 것이 서귀포시의 입장이었다. 영화제 개막을 열흘 앞두고 벌어진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화제 측은 개막식 장소를 변경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어, 4월 23일 개막식은 서귀포성당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다시 결정되었다.

서귀포시는 공공성을 앞세우고, 이에 영화제 측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항변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서로가 자신의 ‘정치성을 배제한 순수한 의도’를 피력하는 것은 어쩌면 짐짓 능청스런 표정을 짓는 낯빛처럼 양측 모두에게 불필요한 일일 듯싶다. 서귀포시는 공공시설의 목적인 공공성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객관적인 기준으로 합당하게 판단한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정치성을 띠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며, 현 정권에 편향되어 있는 시각으로 판단한 결과로서 편향성을 우려했을 것이다.

영화제 측에서도 이번 영화제가 현실 문제를 비판하고, 정치적인 사유와 견해를 밝히고, 진보적 시각을 담은 것이 아닌, 예술과 문화만의 순수한 활동이라고 항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번에 상영될 대다수의 작품들이 사회적인 고민을 담고 있고,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며, 현 정권 아래 벌어지고 있는 시대의 아픔을 통감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는 문제작들이다. 

다시 말해 이번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서귀포시에서 내놓은 답변대로 ‘정치성을 띠고’ 있는 것이 맞다. 그게 아니라 단지 문화와 예술의 표현일 뿐이고, 표현의 자유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본질적인 해결을 어렵게 하는 일일 것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정치의 자유다. 결론을 말하자면 ‘정치성을 띤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잘못되었다. 우리는 정치의 자유가 있다. 우리는 정치성을 띨 자유가 있으며, 정치적인 행동을 할 자유가 있다.
 
‘정치’라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때, 우리는 부단히 정치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공동체를 향하는 노력이 공공성이라 말한다면 정치성과 공공성이 서로 대치되는 개념일 리 없다. 그러므로 ‘정치성을 띠고 있으므로 공공시설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공공이라는 말 아래 정치를 탈색한다면 그것은 저 DMZ 너머의 북한 사회와 닮은꼴일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성을 띠지 않으면 안 되는지 되물어야 한다. 정치성을 띠는 것이 공공성을 해치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상영될 예정인 <카미카제 특공대원의 증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카미카제 특공대원으로 활동했던 지금은 아흔이 넘은 고령의 주인공은 한 시대를 지나온 형형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푸른 청춘의 그 시절,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호명되어 천황폐하의 영광을 위해 승화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고 말했다. 느리고 힘겨운 말투로 띄엄띄엄 그 말을 할 때 노인의 까무룩한 눈에 그때의 영광이 되살아나는 듯한 빛이 아주 잠깐 켜졌다 사라졌던 그 장면이 나에게는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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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임정 소설가.
국가라는 하나의 개념이 개인의 실제적인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떤 정치적인 상황 아래서다. 그리고 개인이 국가로부터 비롯되는 정치적인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할 때 훗날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카미카제 특공대원 노인처럼 세계의 진실과는 전혀 다른 무명의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지는 일일 것이다.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통해 선보일 작품들이 지금의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떤 정치성을 띠며, 어떤 공공성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적어도 두세 편 이상의 영화를 관람해 보기를 이번 사태에 관여했던 서귀포시 관계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 홍임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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