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석 칼럼] 4년전엔 다이너마이트, 지금은 '구상금 폭탄'..."정부·국회 나서야"

2012년 봄 다이너마이트로 구럼비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더니, 4년이 지난 지금 구상금 폭탄으로 가슴앓이 한다.

태어난 지 3만 살로 추정되는 구럼비 바위는 길이 1.2Km, 너비 250m에 이르는 하나로 된 거대한 너럭바위. 강정마을의 구심체였던 그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 이젠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무너진 마을공동체만 눈에 선하다.

9년의 반대 투쟁과정에 700명이 넘는 주민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연행됐다. 업무 및 공무집행 방해, 집시법위반, 재물손괴, 일반교통방해 등으로 처벌 받았다. 이들에게 부과된 벌금만도 392건, 3억8000만원에 이른다.

국방부는 철거 대집행 비용 8970만원을 강정마을회가 내야 한다며 독촉장을 보냈다. 이것도 모자라 아직 화가 안 풀렸는지 해군에게 돌격 앞으로! 

해군은 기지 공사 지연에 따른 손실에 대해 강정 마을과 주민, 반대운동에 나섰던 시민과 단체 등을 상대로 34억 5000만원의 구상금 청구 소송을 함으로써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대법원까지 이르는 여러 차례의 행정소송을 통해 기지건설의 합목적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해군 측으로서는 무서울 게 없는가 보다. 이런 소송의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 아마도 국방안보와 같은 국책사업에 반대하면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금전 배상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아닐까.

관(官)이 민(民)을 상대로 하는 이런 소송은 매우 희소하고 이례적이다. 그 사회적 파장이 크기 때문에 공권력을 행사하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과 주권을 일부 대행하는 정부가 소송으로 정면충돌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 분쟁, 2005년 새만금 방조제 건설반대 투쟁, 2008년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 등 대표적인 공공갈등 사례에서 보듯 사업주체인 정부가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그 책임을 반대 측에게 전가한 적이 있는가?  

밀양 송전탑 건설은 2007년 발표 후 첫 삽을 뜨기까지 5년, 새만금 개발사업은 1991년 11월 첫 공사 후 두 번의 중단을 거쳐 2006년 4월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완공하기까지 만 15년이 걸렸다. 하지만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했다는 뉴스는 없다.

이 세상에서 분노는 분노에 의해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분노를 버림으로써 풀린다. 이는 영원한 진리이다. 증오와 적대가 넘쳐나는데, 갈등을 풀어야 할 정치는 가사(假死)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2013년 제주특별자치도 사회협약위원회가 수형자들의 특별사면을 건의하였으나 메아리가 없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한 지난해 8.15특사 때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선량 모두 국회 개원 후 정부에 구상권 소송 철회를 건의하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다소 늦었지만 지난 18일 도의회가 재석 만장일치로 구상권 청구 철회 건의안을 의결했다. 원희룡 지사도 국무총리에게 구상권 철회를 건의했다고 한다. 이제야 제주정치가 숨 쉬는 것 같다.

공사 지연 사유로는 반대투쟁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 두서너 가지가 더 있다. 해군의 설계변경, 공유수면 매립 시 환경훼손 등으로 인한 공사 중단 등이 그것이다. 공사 지연으로 인한 지체상금을 오로지 반대 측, 특히 피해 당사자인 강정주민들에게 추궁하는 건 인의(仁義)에 어긋난다. 구상금 청구는 강정 주민들의 아물지 않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과묵하면서도 강한 결단력의 소유자였던 세종대왕은 세제개혁을 위해 14년이라는 세월과 막대한 재정지출을 감내하며 관료에서 시골의 촌부에 이르는 17만 명의 여론조사를 했다. 조선 초기의 국가재정개혁을 추진함에 있어서 세종대왕이 살얼음을 걷는 듯 신중함을 보인 것도 개혁에 따른 백성의 고통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종대왕의 관용과 통합의 리더십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서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이 포로가 된 십자군에게 보여준 관용과 화해의 리더십. 이것이 광휘로울 때 해군과 강정주민은 “평화를 같이 하는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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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석 <제주의소리> 상임대표.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스스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오늘의 참담한 현실을 가져다준 원인 제공자란 이유에서다.

구럼비의 절규를 그냥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나아갈 수 없고, 도민통합도 기대할 수 없다. 이를 풀어야 제2공항 건설에 따른 공공갈등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주의소리> 상임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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