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밖에 내지도 못했던 제주4.3이 국가추념일이 되고, 어느덧 70주기를 바라보고 있다. 자유롭게 4.3을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예술가들의 역할은 실로 컸다. 온갖 탄압과 손가락질, ‘빨갱이’라는 붉은 낙인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 하나로 붓과 펜,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4.3은 양지로 나왔지만, 4.3예술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있다. 시대의 변화 앞에 아픈 역사인 4.3이 과연 어떻게 기억되고 전승돼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제주의소리>는 4.3 68주기를 맞아 4.3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예술가들과 지난한 4.3예술운동, 4.3예술의 현주소, 그리고 4.3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4.3과 예술] 각 분야 외연 확장 '눈에띄네'...도외 예술가 참여도 활발
① '강요된 침묵' 깨뜨린 4.3예술
② 70주기 앞둔 4.3예술, 현주소는?
③ 4.3예술, 어디로 가야 하나?

현대 예술은 전통적인 틀에 얽매이기 보다는 장르를 넘나들며 진화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레고(LEGO)가 인권운동 예술가의 작품 도구로 쓰이고, 기발한 문구로 채워진 시(詩)가 SNS를 타고 젊은이들의 환영을 받는 시대다. 변모하는 예술은 세상을 새롭게 비춰주고 있다.

제주4.3을 알리는 ‘4.3예술’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과거 4.3예술이 쉬쉬해온 아픈 역사를 온전히 드러내는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사뭇 다른 모습과 성격을 띠고 있다.

가장 많은 변화를 실감하는 분야는 미술을 꼽을 수 있다. 

탐라미술인협회가 1994년 시작한 4.3미술제는 올해로 23회째를 맞았다. 일종의 회원전시였던 미술제는 2014년, 21회 행사부터 비회원들도 참여할 수 있게 문호를 개방했다. 예술 감독을 초빙해 전시의 밑그림을 그리고 도외 작가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나현, 올해 후보인 믹스라이스(Mixrice, 조지은·양철모) 등 주목받는 작가들이 꾸준히 참여할 만큼, 4.3미술제의 외연은 넓어졌다. 현대적인 예술감각으로 4.3을 다양하게 표현한 작품들은 도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을 뿐만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4.3은 예술가로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문학은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하는 4.3평화문학상이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중요한 통로가 맡고 있다. 2012년 제정된 4.3평화문학상은 시와 소설 각 1편을 선정한다. 

제1회 당선작은 현택훈의 시 <곤을동>·구소은의 소설 <검은 모래>, 2회는 박은영의 <북촌리의 봄>·양영수의 <불타는 섬>, 3회는 최은묵의 <무명천 할머니>·장강명의 <댓글부대>, 4회는 김산의 <로프>, 정범종의 <청학(靑鶴)>이다.

4.3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 당선작들의 경향은,  4.3을 다루지 않지만 문학상이 정하는 주제(평화와 인권, 진실과 화해, 민주주의 발전)에 부합하는 범위로 확장됐다.

여기에 ‘기억투쟁’, ‘전승’에 초점을 맞춰 4.3을 모르는 사람들과 청소년, 청년들을 위한 문학 작품도 꾸준히 나왔다.

2014년 3월 허영선 작가가 쓴 <제주4.3을 묻는 너에게>는 증언록, 기록사진, 시, 그림 등을 망라한 일종의 4.3연대기다. 저자 스스로가 밝힌 ‘4.3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입문서’라는 설명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대중성과 깊이 모두를 잡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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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선 작가의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현택훈·신여랑·오경임 작가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4.3은 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젊은 문인 3명(현택훈, 신여랑, 오경임)이 합심해서 지난해 3월 펴낸 청소년소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4.3은 왜?>는 책 제목처럼, 현재 10~20대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이 제주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들려준다. 책이 완성되기까지 3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될 만큼, 예술로 4.3을 기억해야 한다는 젊은 작가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4.3음악은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시작한 제주민예총의 4.3음악회가 주목할 만 하다.

2014년 4.3평화음악회에는 3호선버터플라이, 백현진, 가리온, 요조 등 인디 뮤지션을 초청해 옛 4.3노래를 각자의 색깔대로 선보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사우스카니발, 묘한, 김정균, 뚜럼브라더스 등 제주 뮤지션을 중심으로 한 2015년에는 뮤지션들이 직접 창작곡을 만들거나 기존 4.3관련 음악을 편곡해서 발표했다. 

앞서 윤도현밴드, 양희은 등 유명 음악인을 초청한 적은 있었지만, 대중음악과 4.3을 적극적으로 이으려는 시도는 최근 몇 년 사이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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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4.3평화음악회에서 공연하는 사우스카니발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영화의 경우,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가 작품성과 흥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4.3과 대중을 연결시켜준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지슬>은 4.3을 처음 다룬 장편 극영화로 알려진 고(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2005)에 이어 모처럼 등장한 4.3극영화로, 전국 관객 14만 4700명을 동원해 전 국민에게 4.3을 알린 대표 예술 작품이 됐다.

영화는 김금숙 작가의 각색이 더해져 그림책으로 제작됐고 구좌읍 용눈이오름,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조천읍 선흘리 반못굴 같은 영화 촬영 장소는 투어 코스로도 사랑 받고 있다. <지슬>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된 셈이다.

1987년 창립해 제주 4.3마당극의 역사를 써내려간 ‘놀이패 한라산’은 4.3당시 군사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재구성한 <사월굿 법비(法匪)>를 지난해 12월 공연했고, 1992년부터 4.3민요운동에 매진한 ‘민요패 소리왓’은 2008년 올린 4.3소리굿 <한아름 들꽃으로 살아>를 지난해 4월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다시 공연하는 등 두 단체 모두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밖에도 믹스라이스,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 등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국내외 예술가들이 4.3을 소재로 선택해 세상에 4.3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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