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태 전 아나운서 ‘자치인문학’ 강연 “제주는 기회의 땅...자긍심 가져라”

26일 오후 3시 국립제주박물관 강당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금세 자리가 가득 찼다. 오는 11월까지 제주시 곳곳의 읍·면사무소와 문화시설에서 열리는 ‘제주시 자치인문학 강좌’의 첫 번째 시간이다.

바리톤 최영국과 김남윤 제주시 자치행정과장의 성악 공연과 김화섭, 조현철의 색소폰 연주로 색다르게 문을 연 뒤 무대에 오른 이는 차인태 전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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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후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열린 '제주시 자치인문학 강좌'의 첫번째 강사로 나선 차인태 전 아나운서. ⓒ 제주의소리

차 전 아나운서는 1970~80년대 MBC의 간판 프로그램인 <장학퀴즈>와 <뉴스데스크>,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을 진행한 아나운서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1995~1998년 제주MBC 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제주, 제주정신, 제주인’을 주제로 강의를 펼쳤다. ‘제주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조냥 정신과 수눌음, 해녀, 가문잔치와 일포 등 제주 특유의 전통문화가 “서로를 끈끈하게 챙겨주는 제주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쟁이('트집'의 제주어)를 거는 것’보다 ‘서로 참고 보듬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통합’하는 게 21세기의 제주의 모습이 돼야한다”는 충고를 건넸다.

차 전 아나운서는 남북이 거꾸로 된 동북아 지도를 펼쳐보이며 제주가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는 휴전선으로 허리가 잘렸고 결국 섬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이 살 길은 제주가 전진 기지가 되는 데 있다”며 “제주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갈 수 있는 인구 100만~1000만명의 도시가 42곳이 된다. 입지적인 조건이 너무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다시는 서울에 ‘올라간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냥 서울에 ‘간다’고 표현해야 한다”고 자부심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이어 “제주는 글로벌 에코 아일랜드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며 “이젠 중국인에게 영주권 팔고, 집 파는 차원을 넘어서 제주의 21세기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가 21세기 제주의 정신으로 강조한 것은 의인 김만덕.

그는 “왜 강릉의 신사임당만이 우리 국민의 추앙을 받아야하냐”고 반문하며 “기념관을 지었다고 끝이 아니라 김만덕 할머니의 정신을 제주 어머니들이 더 간직하고 발전시켜주시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제주 정신이 김만덕 할머니를 통해서 더욱 크게 꽃필 수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제주 명예의 전당’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기념관을 넘어서 진정한 제주의 원로를 찾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중심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오늘날 제주가 있기까지 헌신적으로 희생하고 귀한 업적을 행한 이들을 찾아서 명예의 전당으로 모셔야 한다”며 “이를 통해 제주도민들의 정신적 지주를 찾고, 그들의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인의식과 자긍심을 갖기 바란다”며 “진정 탐라가 축복과 희망의 땅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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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후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열린 '제주시 자치인문학 강좌' 첫번째 시간. 차인태 전 아나운서가 연단에 섰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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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제주시 자치인문학 강좌에 앞서 김남윤 제주시 자치행정과장(왼쪽)과 바리톤 최영국이 무대에 섰다. ⓒ 제주의소리

강연을 들은 정경임(58.여)씨는 “제주가 변화하고 있으며, 더 이상 작은 섬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 이주 19년차인 김혜화(56.여)씨는 “내 자신이 ‘제주도민’이라는 생각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강의를 듣고난 뒤 ‘내가 제주도민이구나’하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며 “제주도민으로서의 자존감이 생겼다”고 뿌듯해 했다.

강연에 앞서 김병립 제주시장은 “물질만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자유와 진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며 “제주인의 시민의식, 주인의식을 찾기 위해 이번 인문학강좌를 추진하게 됐다. 삶의 지혜를 나누는 법과 배려를 이번 강좌를 통해서 얻어갔으면 한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강기춘 제주도평생교육원장은 “개인과 공동체의 공존,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공존은 곧 인문학적 가치에서 비롯된다”며 “이번에 제주시에서 인문학강좌를 개설한 것이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주시가 주관하는 자치인문학 강좌는 총 20강으로, 오는 11월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읍·면사무소와 국립제주박물관, 제주웰컴센터 등지에서 개최된다. 평소 만나기 힘든 각계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선다.

수강을 희망하는 시민은 강의 5일전까지 읍면동사무소나 제주시(064-728-8681, 8695)로 신청하면 된다.

제주시는 이밖에도 동서양 고전, 철학, 문학 등을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와 지혜를 찾는 ‘목요인문학’과 시민들이 원하는 인문학을 공모로 운영하는 ‘우리동네 인문학’을 진행한다.

제주시의 이 같은 ‘인문학 행보’는 제주시 곳곳에 만연한 불법·무질서 문제를 공유하고 시민들의 공동체 회복과 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차원이다. 단순한 홍보에서 벗어나 시민들 스스로 깊이있는 내면을 갖추게 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다.

강의 영상은 제주시 홈페이지 ‘다시보기’ 코너와 <제주의소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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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후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제주시 자치인문학 강좌'의 첫번째 강사로 나선 차인태 전 아나운서.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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