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밖에 내지도 못했던 제주4.3이 국가추념일이 되고, 어느덧 70주기를 바라보고 있다. 자유롭게 4.3을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예술가들의 역할은 실로 컸다. 온갖 탄압과 손가락질, ‘빨갱이’라는 붉은 낙인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 하나로 붓과 펜,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4.3은 양지로 나왔지만, 4.3예술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있다. 시대의 변화 앞에 아픈 역사인 4.3이 과연 어떻게 기억되고 전승돼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제주의소리>는 4.3 68주기를 맞아 4.3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예술가들과 지난한 4.3예술운동, 4.3예술의 현주소, 그리고 4.3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 등을 네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4.3과 예술] 대중속으로 더 들어가되 역사성·정체성 잃지 말아야
① '강요된 침묵' 깨뜨린 4.3예술
② 70주기 앞둔 4.3예술, 현주소는?
③ 4.3예술, 어디로 가야 하나? (1)
④ 4.3예술, 어디로 가야 하나? (2)

군사정권 시절, 기억해서는 안되는 역사로 강요됐던 제주4.3을 음지에서 양지로 꺼낸 것은 예술이었다. 시간이 지나 4월 3일이 국가추념일이 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예술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것은 바로 ‘4.3의 기억과 전승’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예술이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4.3을 흔드는 세력이 있기에, 4.3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단순한 전승을 넘어서는 ‘기억 투쟁’의 핵심이다.

권위와 형식을 탈피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지나, 정보가 온라인과 모바일을 타고 홍수처럼 쏟아지는 지금, 제주4.3의 70주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4.3예술의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많은 예술인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역사성을 잃지 않고 보다 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4.3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가르치면 단순한 역사공부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서적인 울림,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4.3에 대한 기억을 전승시키는 길”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곧, 시대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앞선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장르 구분 없이 모든 4.3예술은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과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 힘을 빼는 ‘엇박자스러운’ 상황은 개선돼야 할 요소로 남아 있다.

# 4.3미술제, 이제는 더 넓은 공간으로 가야

탐라미술인협회의 4.3미술제는 도외 작가 참여를 3년째 끌어내면서 변화를 모색했지만, 전시 장소에 있어서는 아직도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4.3미술제 장소는 제주시민회관 인근 세종의원 지하 갤러리, 문예회관, 4.3평화공원에서 열리다 2014년(21회)부터 제주도립미술관 상설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작가들도 꾸준히 참여할 만큼 역량 있는 작가를 섭외하고 있지만, 정작 그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만한 공간은 아직까지 숙제로 남아있다. 

도립미술관 2층 상설전시장에 국한된 전시를 전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탐라미술인협회가 꾸준히 제기했지만, 도립미술관은 아직까지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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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김수범 탐라미술인협회장은 “공간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미술 전시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공간이 더 확보되면 벽에 거는 평면의 한계를 넘어 작가들의 폭 넓은 작품 세계를 선보일 수 있고, 나아가 교육프로그램까지 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4.3미술제는 23년이란 역사 뿐만 아니라 제주의 가장 중요한 역사인 4.3을 미술로 알려온 행사다. 4.3미술제가 외연의 폭을 넓히며 더욱 발전하려는 시점에서, 제주도립미술관이 자타공인 제주 대표 미술관이라면 행사가 커갈 수 있게 뒷받침하는 조력자 역할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 

더욱이 미술관의 숙원이었던 학예팀장도 올해 생기면서 학예조직의 틀이 잡혀가는 만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4.3미술제를 소화하는데 미술관 자체의 역량이 문제없을 것이란 판단은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김 회장은 “내후년이면 4.3도 70주기가 되고 4.3미술제 역시 깊이와 크기를 키울 때가 됐다고 본다”면서 내년부터 4.3미술제가 도립미술관 전관에서 열리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진정한 4.3미술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미술제를 국제비엔날레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 4.3문학상, 시야 넓히되 본질 충실해야

4.3평화재단이 주관하는 4.3평화문학상은 시, 소설을 합친 상금이 9000만원에 달할 만큼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방향 역시 4.3의 정신을 살린 평화와 인권, 진실과 화해, 민주주의 발전으로 폭을 넓혔다. 그러나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 도민들이나 문학애호가들에 계속 회자되며 가깝게 인식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4.3문학을 위한 자리임에도 점차 4.3의 색이 빠진 작품들로 채워진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여기에 4.3이란 주제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인 만큼, 작가들에게 높은 벽으로 다가온다는 고민 역시 스쳐 지나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의 치열한 고민이 일단 뒷받침돼야 4.3평화문학상이 4.3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의 산실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4.3문학 자체의 성장까지 도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경훈 작가는 “다양한 성격의 글로 독자들에게 4.3이란 체험을 공유하게 하는 방법은 긍정적으로 본다. 문제는 깊이다. 얄팍하게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사건의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큰 만큼 너무 가벼워서는 안된다”며 “보다 도발적으로 열정적으로 대드는 작품이 4.3평화문학상에서 등장하기를 바란다. 70주기를 앞두고 이제 굵직한 작품이 나올 때가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4.3평화문학상을 주관했던 제주도, 현재 맡고 있는 4.3평화재단이 수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확산에는 소홀하다는 지적도 타당성이 있다.

김동윤 교수는 “지금까지 4.3평화문학상을 보면 공모하고 수상하는 데만 집중할 뿐, 상을 주고 난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노력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제주도나 재단이 수상작 독후감대회나, 입상자 초청 강연 같은 자리를 꾸준히 열었어야 했다”며 “상을 주고 끝낼 것이 아니라 성과를 키우기 위한 실천이 뒷받침 돼야한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 4.3문학상의 범위를 시, 소설에 그치지 말고 영화 시나리오, 희곡까지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예술인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 색깔 잃은 4.3전야제, 변화 요구 직면

매해 4.3을 하루 앞둔 4월2일마다 열리던 4.3전야제는 2014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2008년 4.3평화재단 출범 이후 재단이 주최하고 제주민예총이 주관하는 틀에서, 주관사를 공모해 새로 선정한 것이다. 2014년은 4월 3일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면서 정부 기관(당시 안전행정부)이 처음으로 추념식을 주최한 해였다. 그렇다면 전야제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열리고 있을까? 

<꽃 피는 봄이 오면>, <물들어>, <You are my lady>, <꽃밭에서>, <낭만에 대하여>, <넬라 판타지아> 등.

이 곡들은 올해 열린 ‘제68주년 4.3희생자 추념일 전야제’에서 불린 노래 제목들이다. BMK, 정엽, 최백호 등 유명 가수들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잠들지 않는 남도>와 4.3평화재단이 공모·선정한 4.3의 노래 <빛이 되소서>도 포함됐지만, 전체 구성은 여느 일반 콘서트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전야제가 4.3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는 제주민예총이 <잠들지 않는 남도>의 주인공 안치환과 함께한 4.3음악회를 같은 날인 2일에 배치하면서 더욱 비교가 됐다.

제주민예총은 재단이 출범하기 전부터 자체적으로 전야제를 개최해 왔다. 2014년 이전만 해도 전야제는 풍물, 무용, 시 낭독 등 무대의 폭이 넓었다. 재일동포 가수, 일본인들로 구성된 4.3관련모임, 아마추어 시민 합창단 등 프로페셔널하지 않아도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요소도 갖췄다. 

재단이 털어낸 예전 전야제의 모습은 제주민예총의 4.3거리굿으로 옮겨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소설 <순이삼촌>과 화집 <동백꽃지다>를 문학, 무용, 음악, 퍼포먼스, 연기 등으로 재해석한 올해 4.3거리굿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4.3 당시 온 섬이 무덤이었던 것을 상징하는 한라산 모형 주위에 꽂힌 향.  2010년 문예회관 광장 4.3전야제.jpg
▲ 2010년 문예회관 광장에서 열린 4.3전야제 모습. 4.3 당시 온 섬이 무덤이었던 것을 상징하는 한라산 모형 주위에서 4.3유족들이 향을 꽂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중요한 점은 재단이 억대 예산을 들여 유명 가수의 무대로 채우는 행사에 만족하지 말고, 도민 공감대를 잃지 않으면서 기존 전야제와는 차별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다. 지역 예술계 일각에서는 전야제가 2014년 이전 본 모습으로 돌아가 공연 수준을 더 높이는데 재단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2014년 4.3평화재단이 전야제 주관사 공모를 진행하면서 내건 취지는 ‘4.3희생자 추념일에 범 도민이 참여하고, 전 국민이 공감하는 행사로 추진하기 위해서’다. 지금 전야제가 과연 도민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인지 재단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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