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현직 역사교사 이영권이 쓴 '제주역사기행'

제주의 역사를 말하라면 흔히들 '변방의 역사'라 말한다.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변방의 우짖는 새'도 제주의 역사는 중앙정부의 핍박과 수탈로 점철된 역사였음을 이야기 한다.

고난 받는 역사, 자랑하고 싶지 않은(?) 역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주에 대한 역사책은 흔하지 않다. 더구나 전문 역사서적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책은 더욱 그렇다.

외지인은 물론 제주의 역사에 대해 나름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도민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조카들과 함께 도내 역사유적지를 찾았을 때 조카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채 안내판만 읽어주는 것으로 도리를 다했다고 위안하는 필자도 그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현직 역사교사가 그리 간단치 않은 역사이야기 책을 펴냈다.

제주공업고등학교 이영권 교사가 펴낸 '제주역사기행(한겨레신문사 발행)'은 제주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눈을 띄게 해 준다.

제목에서 말해주는 것처럼 '제주역사기행'은 책상머리에 앉아 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가 제주도 전역을 돌면서 직접 체험한 역사의 현장을 기행문 형식으로 써 내려갔다.

'제주역사기행'은 '선사시대 제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서부터 '탄생설화', '삼별초와 몽골제국', '제주에 온 유배인', '추사 김정희', '이재수의 난', '제주의 항일운동', '일제가 남긴 군사유적', '현대사의 비극 제주4.3' 등 모두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감이 빠른 독자들은 제목에서 이 책이 '역사기행문'이면서도 그리 간단치 않은 책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저자인 이영권 선생은 이 책에서 제주의 역사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왔던 역사가 중앙정부, 권력가의 시각에서 쓰여져 온 역사였다면 이영권 선생은 변방의 시각, 제주도민의 시각에서 본 민중의 역사를 말한다. 중앙정부의 눈에서 본다면 '삐딱한 역사'로나 이해될 수 있는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제주의 역사는) 중앙의 역사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고려시대 삼별초만 해도 그래요. 국가주의적 가치관으로 보면 분명 삼별초는 영웅적 항쟁입니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의 처지에선 삼별초가 재앙이었다는 말입니다. 제주 사람들에겐 고려도 몽골도 모두 똑같은 외세에 불과했던 것이죠"

이영권 교사는 계속 말한다. "조선의 유교문화도 제주도에서는 뒤집어 보아야 합니다. 제주의 무속신앙은 조선 양반의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통렬하게 비웃어버립니다. 제주에 온 지방관들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제주는 그저 좌천의 자리였을 뿐입니다. 현대사의 4.3항쟁도 역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전교조 제주지부 소속이기도 했던 이영권 교사는 지난 2001년 매우 위험한(?) 시도를 했다.

정부에 의한 제주4.3의 진실이 채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는 동료 역사교사들과 함께 제주4.3에 대한 '공동수업자료집'을 만들었다.

도교육청에서 난리가 난 것은 당연했다. 이 교사가 만든 교육자료집은 '볼온' 서적으로 낙인 찍혔고 수업은 해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3년이 흐른 2004년 4월 도교육청은 '4.3교육자료집'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 4.3의 도화선인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인 관덕정 광장에 대한 부분.
4.3에 대한 이영권 선생의 관심은 전문가 수준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쉽게 놓치기 쉬운 역사의 현장을 소개한다. 4.3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1절 기념식이 열렸던 제주북교와 발포사건이 발생한 관덕정, 4.3발발직후인 4월28일 김익렬 9연대장과 무장대 총책인 김달삼간의 평화협상을 깬 '오라리 방화사건'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 제주충혼묘지 입구에 있는 박진경 추도비에 얽힌 내력도 그는 빠뜨리지 않고 실었다. 박진경 중령은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며 강경진압을 부추긴 장본인이었다.

강경토벌을 주장한 그는 결국 부하인 문상길 중위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의 묘비에는 '제주도공비 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守道爲民)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시다 불행하게도 장렬하게 산화하시다'로 적혀 있어 제주도민의 학살을 미화하고 있다는 역사왜곡의 현장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음을 그는 고발하고 있다.

'순이삼촌'의 저자이자 한국민예진흥원장인 현기영 선생은 '제주역사기행'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사의 감춰진 비경인 제주섬의 옛 자취를 찾는 탐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로의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지만 제주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보태져서 더욱 의미롭다. 기존 학계의 오류들과 향토사 특유의 과장과 미화를 옳게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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