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장을 지켜야하는 이유] (2) 영화감독 부지영 "철거가 답? 의지가 있다면"

옛 현대극장(제주극장) 매입 문제가 쉬이 해결되지 않을 조짐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지어진 이곳은 문화환경이 척박했던 제주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제주 근현대사가 스며든 의미 있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보존이냐, 철거냐 운명의 기로에 놓인 옛 현대극장을 두고 제주 출신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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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지영 영화감독.
지난 2012년에 개봉해서 꽤 인기를 얻은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단 2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사라진 가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40년 가까이 국민적 스타였다는 영화 같은 스토리였다. 

오랜 시간 가수의 정체는 모르고 앨범만 떠돌아다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어느 평범한 팬이 인터넷에 사이트를 만들어 그의 현재를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온갖 소문들 끝에 결국 그를 찾게 되는데, 그는 (미국에서)앨범이 망한 후,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고 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거나 선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묵묵히 성자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콘서트를 하는 장면이다. 발 디딜  틈 없이 모여든 그의 팬들은 뒤늦게 그들 앞에 선 정신적 지주이자 영웅에게 아낌없는 환호와 사랑을 보낸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말한다. “살아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지어진 지 70년이 넘은 제주 현대극장 사진을 보며 나는 난데없이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영화를 떠 올렸다. 지금은 공간으로써 자기 역할만 묵묵히 해내고 있는 이 건물, 어쩌면 이러다 쓰러질지도 모르는 이 건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줘야 하지 않을까, 라고 갈급하게 중얼거려 본다. 

해방 후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이념의 열기로 점유하고자 했던 청년들의 뜨거운 숨결과 눈빛이 가 닿았을 어느 모퉁이, 생전 처음 보는 무성영화에 두리번거리며 올려다봤을 낡은 벽,  만화영화 주제곡을 따라 부르던 코흘리개들의 새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 천장... 그 공기, 그 소리, 그 냄새... 잠시 눈을 감고 그 공간 한 가운데 서 있는 상상을 해 본다. 가슴이 떨려온다.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기록으로만 박제화 시킨다면 그곳은 곧 철거될지도 모르는 그저 낡은 건물일 뿐일 테다. 팔리길 기다리는 당구재료들이 낯설게 쌓여 있고 박스, 포장지, 비닐, 각종 지류들을 취급하는 평범한 도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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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현대극장 건물. <제주의소리>
<서칭 포 슈가맨>의 슈가맨, 로드리게츠는 그의 팬에 의해 기어이 발견되고 가수로서 무대로 소환되어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그는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갈 멋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건물의 ‘생명’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 그것을 지키고 복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되살려지고 연장된다. 70여 년 간 그곳, 현대극장 건물을 관통했던 기쁨과 슬픔, 열정과 분노, 한숨과 환희들을 공간과 함께 기억하고 기록할 때 우리는 그것에 진정한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건물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무슨 필요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도대체 이 고장에서 이렇게 유서 깊은 건물을 철거하는 건 또 무슨 필요냐고. 유서나 역사 같은 건 개나 줘 버리고 번쩍이는 새 건물 올리는 것이 최고인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부러워하는 환경의 제주도. 이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수십 층의 빌딩과 그 안의 쇼핑몰, 날로 새로 지어지는 첨단의 건물들 때문이 아닐 것이다. 제주도라서, 제주도여서 존재했던 역사와 기억들이 섬 곳곳에 살아있고 그것이 천혜의 자연과 더불어 어울리는 풍경, 그런 모습의 제주도에 반하고 사랑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안전을 위해서도 철거가 답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유럽의 고대, 중세 건축물들은 어찌 그리도 오래 서 있는 것이냐고. 심지어 기원전의 건물들이 21세기의 우리들과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일이 아니다. 의지가 있다면 방법은 자연히 나오는 법이다.

지금도 현대극장에서 목청껏 외쳐 부르던 <로보트 태권브이> 주제곡이 귀에 선하다. 어린 나는 키가 작아 무릎을 꿇고 의자에 앉아 박수를 치며 목이 쉬어라 불러댔다. 우리들에게 그 공간은 신전이었다. 만화영화로 하나가 되는 컬트적 공간. 그런 역사와 기억들이 현대극장의 자부심으로 소환되는 언젠가, 그 공간 안에 두 눈을 감고 서 있으면 들릴까?

“살아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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