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20대 총선결과에도 여전히 민심과 따로 노는 정치인들

빨강과 파랑의 동상이몽

4월 13일 드디어 총선 투표함의 뚜껑이 열렸다. 순간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꿈을 꾸던 정치인들의 얼굴에는 각양각색의 표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선거상황 중계판을 온통 빨강으로 물들이는 ‘적화’의 야욕을 숨기지 않았고 그 실현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여당 중진들의 얼굴은 새파란 안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패자가 있으면 승자도 있는 법. 얼굴의 적화를 달성한 것은 ‘초록은 동색’인 두 야당 지도부였다. 파랗고 푸르게 물들어가는 TV 화면을 보는 그들의 얼굴은 기쁨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당의 참패였고 야당의 압승이었다. 그 동안의 각종 여론조사들이 완전히 빗나갔기에 승패의 기쁨과 충격은 더욱 크기만 했다. 누구보다도 ‘멘붕’이 된 분은 아마도 총선이 임박해 ‘민생투어’라는 속 보이는 구실로 ‘진박’ 후보들의 선거구를 샅샅이 누비고 다녔던 대통령이 아니었을까. 그분은 투표일 당일에도 유난히 빨간 옷을 입고 투표소에 나타나 다른 모든 색깔의 옷을 압도했지만 승리 예감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총선결과에 대한 ‘파란 기와집’의 완전한 ‘멘탈 붕괴’는 TV 화면이 아니라 며칠간의 ‘실어증’에 가까운 이례적 무반응에서 어렴풋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관제 삼사(三司)?

여론조사가 오류투성이라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 것도 큰 충격이었다. 단지 총선예상이 틀렸다는 것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이 정부가 그처럼 엉성한 여론조사의 결과만으로 누가 봐도 잘못된 정책들을 얼마나 무모하게 밀어붙였던가. 그간의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결과와의 말도 안 되는 불일치에 비추어 추론해 보면, 이른바 ‘메이저’ 여론조사기관들은 자의든, 타의든 왜곡된 여론을 양산하는 ‘여론조작’ 기관의 역할을 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것과 함께 최근 어버이연합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관제데모 조직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궁지에 몰린 상황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결국은 그동안 국민들의 밑바닥 민심과 유리된 여론을 잘못된 여론조사가 바람 잡고, 어버이연합이 시위 피켓 들고 거리로 나서면, 종편방송이 “종일 편파방송“으로 나팔을 불어댄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 정부의 정치수준은 삼사(三司)의 언로(言路) 제도로 백성들의 정확한 민심을 듣고자 했던 조선왕조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결과 정치, 경제, 사회, 국방, 외교 등 국정의 어느 곳 하나 물이 새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오죽해야 지지여부를 막론하고 총선참패로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레임덕을 오히려 반기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을까.

반성 없는 내일은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총선 후에도 여전히 못된 과거의 습성을 버리지 않는 정부의 태도다. 과거의 반성 없이 내일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주지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정부는 잘못된 과거를 되돌아보고 개선할 의사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대통령은 며칠 전 국내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20대 총선 결과가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운영 탓이라는 한 언론인의 지적에 “양당 체제의 국회를 심판한 것”이라는 논리로 책임을 피해 나갔다. 최고권력자의 의지 하나만으로 친일과 독재의 가문의 역사를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 역사의 뒤안으로 보낼 수 있었듯이, 현 정부에 대한 훗날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처럼 달리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닐까.

총선결과에 반성하지 않는 정부도 문제지만, 분수 넘치는 의석수를 얻는 바람에 주제넘게 오만해진 야당들의 자세도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이번 선거결과는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야당들을 선택한 게 그들이 특별히 마음에 들어서 만은 아니라 반사이익이 크게 좌우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정당의 간판으로 나선 정치인들의 우쭐함은 그야말로 “착각도 유분수”다.

‘추호’의 함정

제 1야당의 임시대표만 봐도 그렇다. 물론 그에게 공과가 있겠지만, 그의 ‘셀프공천’과 ‘정실공천’은 그의 당이 호남에서의 몰락뿐만 아니라 전국 비례대표 선거에 패배를 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사심 없는 시스템공천을 하고 비례공천 파동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그의 당이 과반의석은 확보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렇지만 그 분만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과(過)는 모두 남 못난 탓이요, 공(功)은 모두 제 잘난 탓이다. 그분의 끝없는 노욕은 집에서 하릴없이 지내고 있었을 신세에 분에 넘치는 국회의원으로 모셔 와서 온갖 특권을 누리는 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여전히 배고프기만 하다.

총선 때는 자신의 명예를 비례대표 2번에서 찾았던 그 분. 총선이 끝나자 그 분은 선거승리를 모두 자신의 공으로 돌리며 야당대표직을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은 것일까. 자신을 정식당대표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내심 흡족함을 보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결과보다 절차가 더 중요한 법이다. 민주정당이라면 당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민주적 절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 터, 엄연한 당헌과 당규를 제쳐두고 당대표조차 후보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거쳐 선출할 능력과 의사가 없는 정당이 어떻게 국정을 논하고 차기정부를 꿈꿀 자격이 있단 말일까. 이 국보위 출신 임시직 대표와 그를 정식대표로 추대하려는 정치인들도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았던 7, 80 년대의 후진적 정치의식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부조리한 호남 표심

자신을 정식대표로 합의 추대하는 움직임이 벽에 부딪치자, 그는 “대표직에 추호도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한 발 물러서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그가 추호도 관심이 없다고 공언하던 비례대표에 자신을 셀프공천한 것을 보면 그가 실제로 야당대표직에서 순순히 물러설 것으로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그는 “호남의 민심이 돌아오지 않으면 당은 계속 비상상황”이라고 언급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대위 체제로 끌고 갈 작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설은 그가 대표로 있는 한 당의 비상상황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한일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막말로 당의 지지율이 크게 까먹고 있는 것처럼 그 자신이 곧 비상상황의 주원인이 돼버렸다.

제 2야당도 마찬가지다. 총선 후 그 당의 정치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당선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당과의 ‘뒷거래‘식 야합이 ’새 정치‘라도 되는 듯 지지자들의 표심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덕분에 세월호 특별법 연장안을 비롯해 민생을 위한 각종 개혁 법안들이 국회주도하에 다뤄질 가능성은 요원하기만 하다. 오히려 이 당은 국회의장직을 미끼로 연정을 운운하며 정부와 여당에 일방적인 구애를 하는 인상이다. 그동안 민주화의 성지로 일컬어왔던 호남의 ’묻지 마‘ 투표가 가져온 부조리한 결과다.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176193_200995_1803.jpg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선거만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숨겨뒀던 사욕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드러내는 우리의 정치인들. 그들에게 밑바닥 민심을 살피는 것은 오직 선거용에 불과한 것일까. 지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념식에 대통령은 물론 주요 정당의 대표들치고 정의당 대표를 제외하면 공식신분으로 참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들의 생명을 돌보고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국정이 어디 있을까. 누구를 위한 정치이고 무엇을 위한 경제인가. 어느 정치평론가는 그들의 공식 추모식 불참이 “철저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라고 꼬집었다. 우리 정치인들에 대한 그의 반문이 외침으로 들려온다. “이럴 거면 정치는 해서 뭐합니까?”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