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23)차사본 3-강림차사강림차사본풀이 上

1.jpg
▲ 차사본풀이를 노래하는 심방. ⓒ 문무병

첫 번째  이야기의 줄거리, 죽음으로 이끄는 악녀(惡神) 과양생이지집년의 송사

제주에서 완성된 우리 민족의 저승신화 <강림차사본풀이> 첫 번째 이야기는 악녀 ‘과양생이지집년’를 저승 가는 올레, 과양 땅에 사는 악녀[惡神]로 그리고 있다. 생사람을 죽게 하는 진짜 악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만약 여러분이 ‘과양생이지집년’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면, 우리의 저승신화 <강림차사본풀이>의 밑그림은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차사본풀이는 산 자가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란 악연(惡緣)의 시작이다. 결국 죽음이란 과양[壙陽] 사는 악녀 ‘과양생이지집년’이 파 놓은 덫에 걸려 그녀에게 죽임을 당하는 선량한 아이들 이야기다.

제주 동개남절에 가려면 반드시 ‘과양(壙陽)땅’을 지나가야 한다. 과양땅에는 악독한 ‘과양생이지집년’ 살았다. 과양생이지집년이 사는 현실의 공간은 제주시 탐라국 고양부 삼성시조의 발상지 모흥혈 남쪽(한라산 쪽) 1리에 있는 광양리(壙陽里)이다. 그런데 이곳이 <강림차사본풀이>라는 신화의 공간으로 변하면 이곳은 제주사람들의 상상하는 죽음에 이르는 땅으로 한라산(山) 동개남절(神界=저승)과 성안(人間界=이승)의 중간 지점 과양[壙陽]이며 이곳은 악녀[惡神] ‘과양생이지집년’을 만나 죽임을 당하는 ‘악연의 공간’ ‘죽음의 공간’이다.

‘과양생이’는 과양에서 생겨난(태어난) 과양생이 이며, ‘지집년’은 ‘여자’의 낮춤말로, 좋게 말해줄 수없는 악독한 계집년이니, ‘과양생이지집년’은 선량하지만 짧은 명을 타고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지독한 악녀다. 죽음에 이르는 저승 올레 광양(壙陽)에 사는 악녀 ‘과양생이지집년’과의 악연을 벗어나는 일, 이것이 차사본풀이의 첫 번째 이야기다. 그리고 악녀 과양생이지집년은 아이를 살리지 못하고 죽여 먹는 나쁜 어머니의 전형이다. 

‘과양생이지집년’이란 약녀를 ‘과양생의 처’라 풀이할 때, 광양에 사는 생원의 처, 과양 출신 남자의 부인이란 해석은 악독한 여신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에서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과양생이나 과양생이지집년은 제주형 악녀의 고유명사다.

본풀이에 의하면, 대사님은 과양 땅을 지날 때는 법당 공양이 허사가 될 우려가 있으니 과양생이지집년을 조심하라 일러준다. 그런데 과양 땅에 당도하니 이상하게 시장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길 건너에 기와집이 보였다. 이 집은 과양생이지집년 악녀의 집이었다. 과양생이지집년은 중 차림의 삼형제를 문전박대 하였다.

삼형제는 애원하였다. “우린 본래 중이 아닙니다. 원명이 짧다 하여 동개남절에 명과 복을 이어 오는 길에 시장기가 나서 들렀습니다.” 과양생이지집년은 개밥 주는 바가지에 식은 밥을 말아 주었다. 삼형제가 시장기를 멀리고 명주∙비단 아홉 자를 끊어 밥값으로 주니, 과양생이지집년은 눈이 휘둥그래 반기면서 사랑방으로 들어와 쉬었다 가라며 술상을 차려 주었다. 삼형제가 술에 취해 잠이 들자, 과양생이지집년은 삼 년 묵은 참기름을 청동화로에 놓고 끓여 왼쪽 귀로부터 오른쪽 귀로 부었다. 삼형제는 아버지 어머니도 불러보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과양생이지집년은 명주∙비단∙은그릇∙놋그릇을 모두 빼앗고 그날 밤 시체를 ‘주천강 연못’(신화에 나오는 연못)에 수장을 해 버렸다. 과양생이지집년은 주천강 연못에 빨래하러 가 보았다. 연못에는 꽃 세 송이가 떠 있었다. 세 송이를 꺾어 집으로 가져와 앞문, 뒷문과 대청 기둥에 걸었다. 앞문에 걸어 놓은 꽃은 과양생이지집년이 마당으로 나갈 때 머리를 매고, 뒷문에 걸어 놓은 꽃은 장독대에 나갈 때 머리를 매고, 대청 기둥에 걸어 놓은 꽃은 밥상을 받고 앉아 있을 때 머리를 매는 것이었다.

과양생이지집년은 화가 나서 꽃을 청동화로에 놓고 태워 버렸다. 꽃은 타서 삼색 구슬이 되었다. 과양생이지집년은 보물을 얻었다고 입에 물어 놀리다 그만 삼켜 버렸다. 구슬을 삼킨 후 태기가 있어 만삭이 되어 하루에 세 아이가 태어났다. 구슬을 삼키고 얻은 과양생이 아들들은 자라면서 머리가 영특했다. 열다섯 나는 해에 삼형제는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삼형제는 일만 관속 육방 하인을 거느리고 사또에게 인사하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과양생이지집년은 동헌 마당에 과거 기가 떠 있는 것을 보고 “저기 과거하고 오는 놈은 내 앞에서 모가지가 세 도막에 부러져 뒤여져라.”하고 저주를 하였다. 욕이 떨어지기 전에 아들 삼형제가 과거에 급제했다는 기별이 왔다. 급제한 아이들이 오자, 문전상(門祭床) 앞에 한 번, 두 번, 세 번 절을 하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삼형제는 한날한시에 태어나고 한날한시에 과거하고 한날한시에 죽어 버린 것이다.

짧은 목숨을 타고난 동경국 버물왕의 착한 세 아들, 착한 아이들은 악연(惡緣)의 고리에 의해 악녀 ‘과양생이지집년’에게 죽임을 당해 주천강에 시체로 버려지고, 시체는 아름다운 삼색 연꽃으로 피어나고, 꽃을 거두어 걸어놓았던 꽃 화로에 넣고 태우니, 아름다운 삼색 구슬이 되었는데, 이를 가지고 놀다 삼색 구슬을 입에 넣어 삼키니 그날 이후 태기가 있어 하루에 세 아이가 태어났다. 악의 씨앗을 잉태한 악녀 ‘과양생이지집년’의 저주를 받아 다시 한날한시에 죽었다는 송사를 푸는 일이, <강림차사본풀이> 첫 번째 이야기다.

2.jpg
▲ 차사영맞이. ⓒ 문무병

첫 번째 이야기 

옛날 옛적에 제주에는 동개남(東觀音) 상좌절(上佐寺)과 서개남(西觀音) 금법당(金法堂)이 있었다. 동개남절은 동관음사(東觀音寺)의 ‘동관음절’이 제주말로 변한 것이다. 동개남절에는 부처님을 지키는 대사(大師)님이 상좌스님(小師)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때 동쪽으로 멀리 바다를 건너가면 동경국이란  땅이 있는데, 동경국에는 버물왕이 살았다.

하루는 절간 안에서 대사님이 소사(小師) 중을 불러다놓고 하는 말이, “소사야, 소사야. 나는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칠십을 넘기고 팔십을 넘겼으니, 나에게 주어진 목숨, 사고정명(四苦定命)도 끝이 난 듯하구나. 내가 죽으면, 나무 천 바리를 들여 화장(火葬)을 시키고 너 혼자서 산중 이 절간 법당을 지켜갈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을 테니 동경국 땅으로 내려가 보아라. 그곳에 가면 버물왕의 아홉 아들 중에 아래로 삼형제는 명(命)이 단단(短短) 짧아 열다섯 십오 세를 못 넘길 듯하니, 이 아이들을 데려다가 절간을 함께 지키면 어떻겠느냐?”하였다. 그 말이 있고 나서 대사(大師)님은 칠십을 넘기고 팔십(八十歲)을 다 채우는 날 임종(臨終)을 하였다.

소사님은, 대사님이 인간 세상에 살아계실 때 말씀하신 대로 들은 대로 나무 천(一千) 바리 들여 대사님을 화장 시켜드리고 절간 법당 부처님 전에 들어갔다. 하루는 무정 눈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대사님이 현몽(現夢)을 드리길, “소사야, 소사야. 내가 살았을 때 이르던 말을 벌써 잊었느냐. 어서 동경국 땅 버물왕 집으로 내려가 보아라.”하기에 그 말을 듣고, 번쩍 깨어보니, 몽롱(朦朧) 속에 꿈이었다.

소사님은 대사님이 꿈에 이른 대로, 한 귀 누른(고깔 꼭지의 모양) 굴송낙 둘러쓰고, 두 귀 누른(장삼의 소맷자락 모양) 비단장삼(緋緞長衫)에 목에는 염주(念珠) 걸고, 손에는 단주, 금바랑 옥바랑 들어 쥐고, 동경국 땅으로 소곡 소곡 내려가다 보니, 폭낭(팽나무) 그늘 아래서 동경국 버물왕의 아들 삼형제가 한줌 가득 붓을 잡고, 아름 가득 책을 안고, 삼천선비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소사님이 지나가다 멈춰 서서 말을 걸었다. 

“애들아. 너희들은 동경국 버물왕의 아들 삼형제가 아니냐?”
“예, 그렇습니다.”
“설운 아기들아. 너희들은 글을 잘 하면 무얼 하고, 활을 잘 쏘면 무얼 하겠느냐. 너희들은 명(命)이 단단(短短) 짧아서 열다섯 십오 세가 되면 정한 목숨[四苦定命]이 끝이라 하는구나.”

그렇게 말을 하고 소곡 소곡 소사님은 가버렸다. 그 말을 듣고, 동경국 버물왕의 아들 삼형제는  비새(飛鳥)같이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 삼형제는 따져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 우리도 다른 아이들처럼 명(命)이나 길게 날 거 아닙니까?”하며 하도 울어가니, “설운 아기야. 그게 무슨 말이냐? 거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어느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아이고, 어머니.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가 폭낭 그늘 아래서 놀고 있는데, 어떤 소사(小師僧)님이 넘어가다가 우리를 보고 열다섯 십오세가 정명(四苦定命)이라 일러주고 넘어가셨습니다.”

3.jpg
▲ 심방이 된 내력을 아뢰는 공시풀이. ⓒ 문무병

“느진덕이 정하님아. 저 멀리 정낭에 나가 보아라. 어떤 대사님이 계시거나, 어떤 소사중이 있으면 우리 집으로 어서 청해 데려오라.”하였다. 그때엔 느진덕이 정하님(下女)을 내보내 논두렁에 나가보니, 소사님은 벌써 논두렁을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고, 소사님. 소서님. 우리 집안 상전(上前)님이 청하십니다.”하여, 집안으로 모셔오니, 소사님은 들어서며, “이 집 어르신께 소승이 뵙습니다.”하며 들어오니, 안부인이 나서며,

“어느 절 대삽니까. 어느 절간 소삽니까?”
“예, 나는 동개남(東觀音) 상좌절(上佐寺), 서개남(西觀音) 금법당(金法堂)을 지키는 소사가 됩니다.”
“어째서 인간 땅에 내리셨습니까?”
“예. 내가 인간 땅에 내린 것은 우리 절도 파락(擺落)되고 우리 당도 파락(破落)이 되니, 인간 세상에 내려와 시주(勸齋三文)를 받아다 헌 당 헌 절을 수리하고 인간에 명(命)이 없는 자손(子孫) 명을 주고, 복(福)이 없는 자손(子孫)은 복을 주고, 아기(生佛還生) 없는 자손엔 생불환생을 시켜주기 위해 시주(勸齋三文)를 받으러 내려왔습니다.”

시주(勸齋三文) 받는 바라 뚜껑에 쌀을 들어, 높이 들어 스르르르 비우며, 한 방울이 떨어지면, 명(命)도 떨어집니다. 복(福)도 떨어지는 법입니다. 시주(勸齋三文)을 들어다 스르르르 부으며,

“소사님. 소사님. 단수육갑(單數六甲)이나 한번 짚어 봅서. 오행팔괘(五行八卦)나 한번 짚어 봅서.”
“예, 어째서 당신님은 아들은 낳는 게, 삼삼(三三)은 구(九) 아홉 형제가 탄생(誕生)했으며, 위(上)로 삼형제(三兄弟)도 죽어 갈림을 시키고, 아래(下)로 삼형제(三兄弟)도 죽어 갈림을 시키고, 지금 현재 남아있는 아기는 중간으로 삼형제가 있습니다만, 이 아기들은 명과 복이 너무 짧아, 열다섯 십오세를 못넘길 듯 합니다.”
“소사님. 그건 어떤 말입니까. 그러면, 원천강사주역(袁天綱四柱易 :당나라의 점장이 원천강이 가지고 다니던 사주, 주역과 같은 점서)를 가지고 있습니까?”
“가졌습니다.”
“그걸 보여주십서. 보게.”

내어 놓고 초장 이장 제삼장을 걷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동경국 땅 버물왕 아들 삼형제는 열다섯 십오 세를 못 넘길 듯하다는 세 글자가 또렷이 박혀 있었다. “소사님, 소사님. 죽을 점은 할 줄 알고, 살릴 점은 못합니까? 우리 아이들은 어찌하면 열다섯 십오 세를 넘겨 명과 복을 이을 수 있겠습니까?”하니, 그때엔 소사님이 하는 말이, “그런 게 아닙니다. 그리 말고 우리 절간 법당에 이 아이들을 보내십시오. 우리 절간 안에서 열다섯만 넘기면, 이 아이들 명과 복을 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사님, 소사님. 그런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소사님, 그리 말고 굴송낙도 한 번 빌려줍서. 굴장삼도 벗어 좀 빌려줍서. 우리 아이 큰아들부터 차래대로 굴송낙을 씌우고,  굴장삼을 입혀, 저 마당에 걸음을 걸려봐서 소사 차림이 어울리면, 절간 법당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소사님은 굴송낙도 벗어서 내어줬다. 굴장삼도 벗어서 내어줬다. 그걸 씌우고 입혀 설운 내 아기들, 차례대로 저기까지 걸음을 걸어 보라 하니,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소사 행장이 그럴듯했다. 그때는 동경국 안부인이 말씀하시기를, “소사님. 소사님. 소사님은 먼저 올라 가십서. 우리 아이들 곧 절간 법당으로 보내드리쿠다.”하였다.

이 말 듣고, 소사님은 소곡 소곡 절간 법당(法堂)으로 올라갔다. 그때는 동경국 안부인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설운 아기들아. 너희들 죽음과 삶이 맞설 수가 있겠느냐. 그대로 여기 있다가는 열다섯 십오 세를 못 넘길 듯하니, 절간 법당에 가 어떻게든 열다섯 십오 세만 넘기면, 너희들의 명과 복을 이어준다니까 절간에 가서 살다 오라.” “어서 그건 그리 하십서.”

그래서 아이들이 가려니까 은그릇 놋그릇(銀器鍮器)를 내어주려 해도 이걸 등에 지고 다니려면 무거워서 멀고 먼 길 가려면 짐이 될 듯하니, 그리 말고 비단을 삼삼(三×三)은구(九) 아홉 필을 내어주면서, “설운 아기들아. 이 비단을 등에 지고 다니다가 사람 일은 모른다. 난 데 없이 어느 길 노변에서라도 시장기가 몹시 나거들랑 사람 사는 곳이면 찾아가서, 식은 밥에 물말이라도 얻어먹고 이 비단 아홉 치씩만 끊어주고 시장기라도 멀리며 절간 법당에 올라가거라.” 하였다. 비단 아홉 필 끊어 주니, 삼형제는 비단을 지고서 나오려다가 비새같이 울었다. 그리고 아버님 전 하직 절을 올렸다. 어머님 전 하직 절을 올렸다.

“설운 아이들아. 몸조심하고 가 살다 오라.”
“아버지, 어머니. 잘 살암십서(살고 계십시오).” 하직을 하고 삼형제는 비새같이 울며 올레 바깥에 나와 소곡 소곡 절간 법당으로 올라가다 보니, 멀고 먼 길이라 저쪽 산중을 바라보니 절간 법당이 있었다.
올레에 문밖에 가 앉아서 비새같이 울고 있자니 절간에 맨 마당 지렁이에   늬눈이반둥개(눈에 점이 박혀 네 눈으로 보이는 제주산 토종 사냥개)가 드리쿵쿵 내쿵쿵 짖었다. 소사님은 절간 안에서 가만히 들으니, 하도 드리쿵쿵 내쿵쿵 개가 짖으니, 이거 분명 무슨 곡절이 있구나. 필유곡절(必有曲折)한 일이라 하였다. “이 산중에 누가 왔을까?”하여, 문밖에 나가보니, 거기에는 동경국 땅 버물왕 아들 삼형제가 와서 앉아 비새같이 울고 있었다.

“설운 아기들아,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하며 소사는 삼형제를 절간으로 데리고 들어가, 상탕(上湯)에 가서 메를 짓고, 중탕(中湯)에 가서 손과 발을 씻고, 하탕(下湯)에 가서 몸 목욕을 시켰다. 그리고 부처님 전에 데리고 들어가 부처님 전에 절 삼베(三拜)를 올리고, 칠성단(七星壇)에 앉아 영가단(靈駕壇)에 불공을 하였다. 절간 안에서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살다 보니, 하루는 따뜻한 봄철이 되었던지 저 산천을 바라보니, 잎(葉)은 돋아 청산(靑山)이 되고, 꽃(花)은 피여 화산(花山)이 되어 제 몸 자랑을 하니, 삼형제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소사께 물었다. “소사님, 소사님. 저희들 오늘은 저 산중에 올라가 바람 쏘일 겸, 꽃구경하며 산보(散步)를 하다 오면 안 될까요?”

“설운 아기들아. 그러면 어서 가서 꽃구경하며 산보를 하고 오너라.”하니 형제는 허가를 맡고 절간 바깥에 나가게 되었다. 절간 법당을 나와 저 산천에 올라 가보니 꽃구경도 좋았고 잎구경도 좋았다. 이산 저산 구경 좋다 다니다 높은 동산으로 우뚝하게 올라서서 하늘 위론  바라보지 않는 체하며 바라보니 검은 구름이 둥굴 둥굴 떠오르고 있었다. 거기 구름을 보니, 갑자기 아버님도 보고 싶었고, 어머님도 보고 싶었다.

아이구, 저 구름은 하늘 위로 떠  다니며 동경국 땅을 지나며,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얼굴을 보고 넘어 오다가 여기서 저기로 넘어가려면, 우리 삼형제 얼굴도 보며 넘어가고 있겠지만, 우리사 이거 아버님 어머님 살아 이별(離別)하고 얼굴 상봉(相逢)도 못하고 모든 일 생각을 하며, 삼형제는 산중에서 비새같이 울기 시작했다. 한참 울고 있자니, 절간 법당에서 대사님이 꿈에 현몽(現夢)하여 말하기를, “소사야, 소사야. 누가 저 아기들 산봉(山峰) 구경 보내라 하였느냐? 이 아기들 돌아오면,  난데없이 아버님 어머님 보고 싶어서 고향에 내려갔다 온다 해도 절대로 보내지 말라.”하였다. 그리고 퍼뜩 깨어보니 몽롱성에 꿈이었다. “참. 필유곡절(必有曲折)한 일이로구나.”하며, 앉아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다가, 삼

“아이구, 소사님. 그럴 줄 알았으면, 우리 산 구경 가지 말걸. 산 구경 갔다가, 난데없이 아버님도 보고 싶고, 어머님도 보고 싶어, 우리가 아무래도 고향 산천에 가 아버님 어머님 얼굴이나 상봉(相逢)하고 와서 더 살아도 더 살겠습니다.”

“아이구, 설운 애들아. 안 된다. 아무래도 너희들 열다섯 십오 세만 넘기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 “아이구, 그래도 가서 얼굴을 보고 와서 살아도 살아야지, 아무래도 어머님 아버님 보고파 못살겠소.” 하도 그래가니, 그때는 소사님이 못 가게 이르는 소리로, “너희들 그러면 내가 인돌 아래 침을 뱉을 테니 그 춤 마르기 전에 갔다 올 수가 있겠느냐?” 물었다. “예, 그 침이 마르기 전에 갔다 오겠습니다.” “이 아기들 이만하면 얼마나 가고 싶어야 이리 할꼬? 그럼 너희들 가기는 가라마는 과양 땅(濟州市 光陽)에 들어가면, 매우 조심하고 다녀오라 일렀구나.” 그리고 비단 삼삼(三三)은 구(九) 아홉 필 지어 온 걸 내어줬구나. 그걸 지어 가지고 부처님 전 하직 절(下直拜)을 올리고, 소사님 앞에 “우리는 고향산천 갔다 오겠습니다.” 절을 하고 그때엔 삼형제가 절간 밖으로 나와 나비 날 듯 새 날 듯, 어느 제랑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얼굴 상봉할까 나비 날 듯 새 날 듯 날아 내려왔다.

4.jpg
▲ 아기놀림. ⓒ 문무병

과양 땅에 가까이 오니 난데없이 시장기가 너무 났다. 한 발자국은 앞으로 내어 놓으면, 두 발자국은 뒤쪽으로 드려놓는지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었다. 삼형제가 허(虛)한 눈을 거듭 떠 이거 어데 쯤이나 왔나 휙 고개를 들어보니, 과양셍이지집년, 버무왕 아들 삼형제를 죽인 악녀(惡女)의 집은 네 귀에 풍경(風磬)달고 와라차라 잘 살고 있었다. 그때 삼형제는 아이고 시장기가 나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저 집은 네 귀에 풍경 달고 와라차라 과양셍이지집년이 살고 있으니, “애들아. 우리 저 집에 가서 식은 밥에 물에 말아서라도 한 숟가락 얻어먹고 가자.” “어서 그건 그러지 뭐.” 하였다. 그때는 큰형부터 대문밖에 들어서며 나서며, “날로 소승 절이 뵈옵니다.(지나는 소승이 뵈옵습니다)” 하였다.  과양셍이지집년 난간(欄干)에 걸터앉았다가 “야, 이거 오늘은 아침부터 재수가 없을 라나. 어째서 소사(小師) 자식 중(僧) 자식이 들어오는가. 수 장남아. 수 별감(首別監)아. 저 중 귀(耳) 잡아 내휘두르거라.”하니, 큰 형님 들어서도 귀 잡아 냅다치니 콕하고 박힌다.

둘째 형님 들어서도 귀 잡아 냅다 치니 콕하고 박힌다. 작은 아우도 들어서니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어째서 오늘은 하나도 아니라 셋이 내좇으면 족족 들어오는 거지. 저 중도 귀 잡아 내휘두르거라 하니, “여보시오. 당신님네, 동냥을 아니 주면, 족박조차 깨는 법입니까? 우리도 원래 소사 자식 아닙니다. 우리도 원래는 동경국 땅 버물왕의 아들인데, 명과 복이 짧아 절간에 가 불공을 드리다가,  아버님 어머님 얼굴 잠간 상봉하러 가는 길에, 하도 배고프고 시장하여, 식은 밥 물 말아 시장기나 멀여 갈까 잠간 들렸습니다.” 하니, 그때는 동경국 버물왕의 아들이란데 겁이 바싹 나서, 식은 밥 한 숟가락 놓아 물에 닥닥 말아, 숟가락 세 개 걸쳐 앞에 가져다가 내어놓았다. 그걸 한 숟가락 떠먹으니 눈이 번쩍 하였다.

산이라도 넘어갈 둣, 물이라도 넘어갈 듯하여, 작은 아우가 말하기를, “형님, 우리가 남의 것 공으로 먹고 공으로 쓰면, 목 걸리고 등 걸린다고 어머님이 말했수다. 과양셍이지집년은 어느 아기라도 있다면, 속적삼이나 해주라고 비단 아옵치(九寸)라도 끊어주겠지만, 아기도 없으니, 댕기라도 하고 다니라고, 비단 아홉 치(九寸)만 끊어주고 가면 어쩔까요?”

비단을 내어놓고 아홉 치 끊어주니, 과양셍이지집년 그처럼 와라치라 잘 살아도, 비단이란 건 아니 보았던 물건이었다. 그런 비단이 어디서 나왔는가, 비단을 보니 없었던 욕심이 생겨났다. “도련님네, 안으로 들어 옵서. 안사랑(內舍廊)도 좋습니다. 바깥사랑(外舍廊)도 좋습니다.” 하도 안으로 들어오시라 청하니, “ 야, 이거, 우리 비단 끊어 주니, 따뜻한 점심(點心)이나 해주려고 하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 점심밥이라도 얻어먹고 가자고 삼형젠 안으로 들어가니, 통영칠반(統營漆盤)을 차리고 들어오는데, 술을 들고 들어와, “도련님. 이 술 한 잔 잡수시오. 천년주(千年酒)요 만년주(萬年酒)요, 이태백(李太白)이 먹다 남은 포도주요.”하며, 하도 술을 권(勸)하니,

“아이구, 우린 절간에서 술도 안 먹고 고기도 안 먹습니다.”하니, “아이구, 그런 소리 맙서. 절간 안에선 안 먹어도 절간 바깥에 나오면 다 먹는 법이우다.” 하도 권하니 권에 겨워, 한 잔씩 호록호록 술을 마신 게 취(醉)하여, 동쪽으로도  빗씩한다(옆으로 스르르 넘어지는 모양). 서쪽으로도 빗씩한다.

남쪽으로도 빗씩하며 술이 취해 잠간 누웠는데, 과양셍이지집년은 부엌에 가서 솥뚜껑을 가서 왈그랑탕 왈그랑탕 하여가니, 삼형젠 누워 있다가 술에 취한 생각에도, 우리가 비단이랑 끊어주니까 우릴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려고 부엌(竈王)에 가 준비를 하고 있으니, 누워 자다가 차려오면, 먹고 가야지 하여, 누운 것이 무정눈에 잠이 실스르르하고 들었다. 과양셍이지집년은 삼년 묵은 간장에 오년 묵은 참기름을 솥에 놓아, 오근 도근 끓여서 방문을 활짝 열어보니, 삼형젠 무정눈에 잠들었구나. 이놈의 새끼들 잘 됐다. 왼쪽 귀(左耳)에서 오른쪽 귀(右耳)로, 오른쪽 귀(右耳)에서 왼쪽 귀(左耳)로 소르르 길어 넣었다. 삼형젠 얼음산(氷山)에 구름 녹 듯, 구름산(雲山) 얼음 녹듯, 삼형제 다 죽으니, 과양생이지집년이 비단은 모질게 빼앗아 이녁 눕는 구둘에 가 금동쾌상(金銅櫃床)안에 들여놓고 절커덕 잠궈 두고,

5.jpg
▲ 시왕 매어듦. ⓒ 문무병

“야, 수 장남 수 별감아. 이리 와서 보아라. 너희들, 오늘밤 삼경(三更) 깊은 밤, 개 고양이 모두 잠이 들고, 인간처가 하나도 없을 때, 이놈의 새끼들 데리고 가 주천강 연내못(酒泉江蓮花池)에 가서, 돌멩이 잔등에 하나씩 달아매어 모두 안으로 밀어 넣고 오라고 시켰구나. 혹시나 다니다 잘못되면 큰일이 나니까. 어서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가서 디밀어두고 오라 일렀다. 그때는 어느 영(令)이라 거부할 수 없어 수 장남 수 별감들은 그날 밤 삼경(夜三更) 밤이 깊으니 지게에 지어가지고 주천강 연내못에 가서 잔등에다 돌멩일 달아매며, 그러다 물위에 뜨면 적발이나 될까하여 주천강으로 모두 밀어 넣어버렸다. 뒷날 아침엔 도둑놈이 달아날까 문밖 보초 사는 격으로 이녁 했던 짐작은 있고, 잠자는 수장남들을 아침 동새벽에 가서 잠을 깨웠다. 

“야, 너희들. 어서 갔다 오너라. 어떤 표적(標的)이나 없는지 어서 갔다 오라고 하니, 그냥은 가면, 남이 알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말을 끌고 가 물 먹이는 핑계를 하고 어서 갔다 오라니, 말을 끌고 물 먹이는 핑계 하고 가서 보니, 아이고 어제도 없던 고장(花), 삼색(三色) 꽃이 동골 동골 주천강에 떴구나. 이거 필아곡절(必有曲折)한 일이여, 말은 물을 먹으려면,  어느 동안 고장(꽃)에 날려들어 말 주둥이로 박하고 무지르면 말은 앞발로 물을 팡하고 차고, 이제랑 저만 쯤 해서 먹여봐야지 해서 고장(꽃) 없는데 가서, 말 물먹이다 보면, 어느 동안 천리만리 있던 고장(꽃)이 날려들어 말 주둥이를 박하게 무지르고 하였다. 말은 물을 못 먹고 앞발로 물만 팡팡 지다가 집으로 끌고 오니,

“아이고, 가서 보니 무슨 표적이 없더냐.”
“아이구, 모른 소리 하지 맙서. 어제도 그 고장(꽃)이 없었수다마는 지난 밤사이에 삼색(三色) 박힌 꽃이 동글동글 떠서, 말이 물먹으려면 어느새 날려들어 말 주둥이 하도 무지러버리니 물도 못 먹이고 왔수다.”하니, 그때는 고장(꽃)이라 하니 그것에도 얼씬 욕심이 났다. 가는대 작은 구덕에 연서답(빨래) 담아놓고 홍글 홍글 주천강 연내못(蓮花泉)에 가서 앉아보니, “아따 꽃도 곱기도 곱다. 삼색 박힌 꽃이 물위에 동글동글 떴구나.”
빨래방망이로 물랑 이녁 앞으로 활활 당기며,

“이 꽃아, 저 꽃아, 아따 곱기도 곱다. 나에게 타고난 꽃이면 내 앞으로 오렴.” 활활 물을 당겨가니 꽃 세 송이가 동글동글 떠 왔다. 손을 물속에 들여 놓고 잔등으로 똑 하고 꽃 세송이를 꺾어 가는 댓구덕에 담아놓고 집으로 홍글 홍글 들어 와, 이 꽃을 어디다 놓아야 들며나며, 자꾸 하루 앉아 몇 천 번이라도 볼까하여, 문앞에 한 송이 꽂아놓고, 마루방 큰방 사이 기둥에 한 송이 꽂고, 문뒤에도 한 송이 꽂아놓았다. 꽃 세 송이 꽂아두고, 과양생이지집년 마당으로 나가려니, 앞살쩍(귀밑털)도 자꾸 잡아 북하고 당기고, 뒤에 장을 뜨러 가려면, 뒷살짝도 어느 동안 박하고 잡아당기고, 과양셍이 밥상 받아놓고 밥상도 들고 가려면, 생깃지둥 밑도 잡아 박하고 당겨버렸다.

“어따, 이 꽃 곱기사 곱다마는 행실이 괘씸한 꽃이여.”하며, 박박하고 비틀어 끊고 청동화로(靑銅火爐)에 놓고 확하고 불을 지펴버렸다. 불은 지펴놓고 생각하니, 내가 사람에게 머리타래를 매었으면 칭원하지만, 저 꽃(花)에 내 머리타래 다 잡혀 칭원하고 원통하여, 부화가 팥죽같이 나니, 올레에 가 서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있으니, 그 동네에 청토산이마구할망은 보릿대 뭉크리고, 검질 뭉크려 가지고 불씨 있으면, 식은 밥 물에 말아 데워먹으러 들어오다 보니, 광양생이지집년이 올레에 서 있었다.
“아이구, 과양생이지집년아, 너희집에 불씨나 있건 한 방울 주면, 나, 식은 밥 물에 말아 데워 먹겠다.”
“우리 부엌에 가 솥강알(솥아궁이)을 흩뜨려 보십서.”
솥강알은 가서 아무리 헤쌍(흩뜨려)보아도 불씨도 못보고, 구들에 청동화리(靑銅火爐)에나 가서 불씨 있는가 해 청동화로 흩뜨리다 보니, 난데없는 구슬(玉) 세 개가 나왔다. 구슬 세 개 들고 올레에 나왔다. 
“아이구, 이거 보라 너희 부엌에 가서 보니 아무 것도 없고, 청동화로에나 있을까 해서 불씨 주우러 가서 보니, 구슬 세 개 있어서 주워왔네.” 하였다. 그 구슬도 말끔히 뺏어 가졌다.
“이 늙은 것아. 불망의 불 없으면 그냥 오지. 누가 그거 홈파서 오라고 했나?” 나 아기 낳으면 주려고 더 숨길 데 없어, 불화로 속 잿속에 숨겨둔 걸 가져 왔다며 말끔히 뺏어 놓고, 손에 가지고 이리 동글 저리 동글, 이리 놓고 보아도 아따 곱다. 저리 놓고 보아도 곱다하며 이리 저리 가지고 놀다가, 이녁 자신도 모르게 입 속에 놓은 것이, 입 속에서 이리 동글 저리 동글하다 녹는 줄을 모르게 녹아서, 목 아래로 소르륵하고 구슬 세 개가 다 뱃속에 내려가 버렸다.

6.jpg
▲ 질치기. ⓒ 문무병
그리하여 그날부터 포태(胞胎)가 되었다. 한 달, 두 달, 연석달이 지났다. 아이구, 이거 장엔 장칼내 난다. 물엔 펄내도 난다. 밥엔 풀내 나 못 먹겠다. 아호열달(九十個月) 준삭(準朔) 채워 아기를 낳는 걸 보니, 아야 배여. 아야 배여. 구들 구석에서 누어 뒹굴다 낳는 건 보니, 아들 하날 낳았구나. 다시 딸을 날까보다 하였더니 다시 아들 낳고, 딸을 날까보다 하였더니 다시 아들 낳아 한날한시에 삼형제를 낳았다. 

이 아기들 노는 건 활소리요. 아기들 자는 건 글소리요. 아이구. 이 나라 사람 어느 누가 한꺼번에 아기 셋을 낳은 사람 있었는가. 낳고 보니 아들 셋 한꺼번에 낳게 됐다 보고하면, 무슨 큰 벼슬이나 내려줄까 하여 보고를 했는데, 어전(御殿)에서는 “어찌 사람이 아기를 한꺼번에 셋이나 낳을 수가 있나? 개(犬) 삼승할망이라면 새끼 셋을 낳게 하겠지.”하며, 쌀겨(糠) 서말을 마련해 보내었다. 이 아기들 크는 것이 한 살 두 살 일곱 살이 되어, 한문서당에 가니, 읽어도 장원, 써도 장원, 외어도 장원이었다. 글공부 활공부 모두 장원하니, 하루는 삼형제가 하는 말이,

“어머니, 어머니. 우리들은 서울 가서 과거를 보고 오겠습니다.”
“아이구, 설운 내 아기들아, 가지 말라. 너희들 잘못 다니다 어느 놈 손등에 어느 놈 발등에 다니다 죽게 되면 어쩔거냐? 가지마라.”하니,
“어머니, 아버지. 그거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래도 우리 삼형제는 과거를 보고 오겠습니다.”하여, 삼형제는 집을 떠났다. 과거보러 삼형제 상경하니, 과양생이지집년은 이 날이나 우리 아기들 올까? 저 날이나 올까? 매일 올레에 나가 서성거렸다.
하루는 높은 동산에 앉아 불림질을 펏닥펏닥 하고 있자니, 동쪽을 보니, 동으로 난데없이 과거해연 돌아오는 행열이 와라차라 비비둥당 주내나팔(喇叭) 불며 와라차라 들어오고 있었다.

그 행렬을 보며, 과양셍이지집년 우두커니 서서,
“어으허, 아이고. 어떤 집안은 산천도 좋아서 과거를 하고 저렇게 급제하고 오는가? 아이고, 설운 우리 아기들 삼형젠 어딜 가서 어느 놈 손등에 죽었는가, 어느 놈 발등에 간 죽었는가? 명천(明天)같은 하늘님아. 저기저기 과거를 하고 돌아오는 저놈의 새끼들랑, 여기 우리 집 올레쯤만 오면, 모가지나 오도독끼 꺾어지게 합서.”하며, 후욕(詬辱)누욕 욕을 하였다. 욕을 잔뜩 퍼붓고 앉아보니, 과양셍이지집년 집으로 과거 당선하고 들어오는 선비, 앞엔 보니 선비로다. 뒤엔 보니 후배로다. 삼만관속 육방하인 와라차라하며 들어오니 과양셍이지집년 불림질하다 솔박들고, 얼씨구나 좋다. 절씨구 좋구나.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우리집안 산천도 좋았구나. 춤을 덜싹덜싹 추어간다. 하매(下馬)를 하고 내리는 걸 보니,

큰 아들은 동방급제(東方及第) 했습니다 하며, 일문전상 차려놓고 절 삼베(三拜)를 하더니, 소꼭하니 죽어 아니 일어났다.
셋 아들은 팔도도장원(八道都壯元)을 했습니다 하며, 동네 유지급 어른들 모셔다 절을 하고 일어서다가 소꼭하게 죽어버렸다.
작은 아들은 문선급제(文選及第)를 했습니다. 부엌에 조왕(竈王)상 차려놓고 절을 하고 일어나려다  소꼭하니 한날한시간에 아들 셋이 다 죽어 버렸던 것이다.

과양셍이지집년은 나일이여, 나일이여. 아이고, 어찌하면 좋을까. 이 노릇 어찌할까? 아무리 울고 울어,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해도, 죽은 아기 아니 살아나는구나. 수 장남아, 수 별감아. 우선 앞 밭, 뒷 밭에 출병(가매장假埋葬)이나 해 두거라. 내가 꼭 이일을 해결(解決) 해야지. 이런 세상 어디 있으리. 과양셍이지집년 곰곰드리 생각을 하니, 이 고을에는 김 치(金緻) 원님(광해군 때 제주 판관)이 살고 있으니, 원님이나 한번 찾아 가 이거 해결을 해달라고 내가 등장(等狀)을 들어보아야지 하여, 원님을 찾아 가서 사실이 이렇고 저렇고, 약하약하 하여, “나는 한날한시에 아들 삼형제를 낳고, 한날한시에 삼형제는 다 과거를 해 돌아왔고, 한날한시에 이 아기들 다 죽었으니 이 일을 해결해 줍서.”
“그러면 집에 돌아갔다 아침에는 아침 소지(朝所志)를 올리고, 낮에는 점심 소지를 올리고, 어두어가면 저녁(夕) 소지를 올리되, 석 달 열흘 백일 동안 소지를 아홉상자반(九箱子半)을 드려 오면, 그 일을 처리해 주겠다.”고 일러주었다.

집으로 들어와서 그때 그날부터 하루에 삼세번 소지원정(所志願情)을 드렸다. 석 달 열흘 백일 동안 소지를 드려 아홉상자반 소지를 드려놓고, 결처(結處)를 해 달라 다시 원님을 찾아가,
“원님. 내 문제 해결을 어떻게 했습니까?” 하니,
아무리 곰곰드리 생각을 해도, 누구에게 매를 맞아 죽으나, 누구와 싸워 죽으나 했으면, 그 해결을 하지만, 이녁대로 이녁 욕사리 겨워서 죽은 일이니, 나 얘길 못하겠다 하였다. 다시 성담 바깥으로 빙빙 돌아다니며
“개 같은 김치 원이여, 개 같은 김치 원이여. 이만한 해결을 못하면서 원님사린 뭣하러 하냐?”하며, 하도 후욕누욕 욕을 하였다.
원님은 하도 칭원하고 원통해였던지,
“내가 저런 저런 과양셍이지집년만한 것에게 이런 욕을 들면서 어찌 내가 칭원해서 살겠나.” 하였다. 문을 안으로 잠그고 곰곰이 생각 중에, 지동토인은 밥상들고 들어와서 보니 안으로 문을 잠갔더라. 안부인이 와서 하는 말이,
“이 문 엽서. 이 문 엽서. 문 열어서 좋은 일이 있는지 궂은 일이 있는지 말해 줍서.”하니, 그때 문 열고 말하는걸 보니, 과양셍이지집년 사건(事件)때문이었다.

“아이구, 원님. 그렇게 걱정할 게 뭐 있습니까? 사흘 날 아침에는 개폐문(開閉門)법 열어서 이 고을에 어른 아이 막론(莫論)하고 동헌(東軒) 마당 모두 나오라고 하여서, 이 고을에 역력하고 똑똑한 강림이 있잖습니까? 문안에도 아홉 각시 데려 살고, 문 바깥에도 아홉 각시 데리고 이구 십팔 여덟 각시 데리고 각시 품안에서만 사는 강림이에게만 말하지 말았다가...강림이랑 궐을 잡혀서 강림이를 잡어다 저승가서 염내왕(閻羅王) 잡어오라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김치 원님은 부인님의 의견(意見)이 그럴듯하니, 그 날 열 관장에게 개폐문(開閉門)을 열라 사발통지를 돌려놓고, 뒷날 아침부터 열 관장 동헌마당(東軒) 입참(入參)을 시켜보니, 열 관장이 틀림없이 입참이 되고, 이튿날도 열 관장 틀림없고, 사흘 날도 열 관장 틀림이 없고, 나흘(四日) 닷새(五日) 엿새(六日)까지도 틀림이 없고, 이렛날은 마지막 동헌마당 입참을 시켜서 보니, 강림(姜林)이 하나가 뒤떨어졌습디다. 강림인 열여덟 기생 호첩에 반하여  잠을 자는 게, 날이 새는 줄도 몰라 강림이 궐(闕)이 나옵디다.

“강림이 궐이여, 강림이 궐이여, 강림이 궐.”하고 삼세번 외치니, 강림이가 퍼뜩 눈을 떠서 바라보니,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았다. 강님이 동헌마당 날려들어 바라보니, 앞에는 전패(죄인이 앞에 드는 패) 뒤에는 후패(後牌), 앞밭에는  작두(斫刀), 뒷밭에는 벌(罰)틀(형틀)이 걸려 있었다. 강림차사는 비새(悲鳥)같이 울면서 원님에게 말을 했다.
“원님. 원님. 나는 이제 죽을 목에 들었습니다만, 살 방도는 없겠습니까?”
“지금 당장 목숨 바쳐 죽겠느냐? 아니면, 너 저승에 가 염나왕(閻羅王)을 잡아오겠느냐?”

강림이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에게 저승가라는 이유(理由)는 어떤 이유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男子) 대장부로 태어나 이 자리에서 죽겠다고 했다가 당장 나를 죽여 버리면 그뿐일 것 같아서, 남자 대장부(大丈夫)라면, 명예(名譽)라도 남기고 죽겠다고, 어서 말을 하라니 난감했다.

170822_194308_2427.jpg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시인.

이 고을 사는 과양생이지집년. 한 날 한 시에 아들 삼형제 낳고, 한 날 한 시에 삼형제 과거해서 돌아와서, 한 날 한 시에 다 죽어버린 이 문제 해결을 못했는데, 저승에 가서 염라왕을 잡아오라 하니, 강림이는 잠간 생각을 해 보았다. 기왕지사(旣往之事) 죽을 바엔 이리 죽어도 죽고, 저리 죽어도 죽을 팔자, 아무래도 죽을 거라면, “예, 내가 저승에 가서 염내왕을 잡아오겠습니다.” 형제는 비새같이 울며 절간 법당으로 들어왔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시인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