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천 4.3유해 발굴…백자훈 전 제주대 교수 증언11일 오후 2시 4.3유해발굴 현장설명회…재계

▲ 현장을 목격한 백자훈 전 제주대 교수.
지난 4일 제주시 화북천 하천정비현장에서 발굴된 4.3 유해와 관련해 "당시 6명의 얼굴을 검은 천으로 씌우고 손을 뒤로 묶은 후 총살했다"는 현장 증언이 나왔다.

화북 출신으로 당시 학살 목격자인 백자훈 전 제주대 교수는 "당시 군인들은 화북주민들을 집결 시킨 후 빨갱이들의 총살장면을 지켜보라면서 사살한 후 돌아갔다"며 "지금의 발굴 자리는 화북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해 나란히 묻은 곳으로 이들은 모두 도두리 출신이었다"고 증언했다.

또 백자훈씨는 "당시 제일 앞 줄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총살 당시 살점이 툭툭 튀기는 것을 느끼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며 "5명이 현장에서 즉사했지만 나머지 한 사람이 살아나 시신을 수습하러온 화북주민들에게 '우리 모두 도두출신'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 현장 증언하는 화북1동 안명호씨.

지난 4일 처음부터 현장 발굴작업을 지켜본 김용두씨(80.화북 1동)도 "동네에 살던 양치석씨의 밭에 있언 시체들이 일부를 민보단이 화북천 옆 밭으로 옮겨서 가매장 했다"며 "당시에는 근처에서 가볼 수 가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5~6구가 매장된 것으로 주민들은 알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현장 증언에 나선 안명호씨(73) 역시 "총살당한 사람들은 당시 화북사람들이 아니었다"며 "마을 사람들이 도두리 사람들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 화북천 현장에서 발굴된 4.3유골.

이에따라 제주도의 제주 4ㆍ3 희생자 구제발굴단은 11일 오후 2시 화북천 현장에서 제주 4ㆍ3 희생자 유해 발굴 재개에 따른 현장보고회를 갖는다.

지난 4일 유해발굴단은 4ㆍ3 당시 학살ㆍ암매장 추정지 가운데 하나인 '화북천 인근 밭'(제주시 화북 1동) 지역을 발굴한 결과 4·3 당시 총살되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2구가 확인됐으며 이날 발굴을 재개할 예정이다.

첫날 발굴된 2구의 유해 가운데 한 구는 두개골이 파손된 채로 발견 됐으며 다른 한 구는 두개골 파편과 치아, 위팔뼈가 발견됐으며 발굴된 유해와 유류품은 개체 분류 - 세척 - 촬영 - 보존 처리 등의 과정을 거쳐, 제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임시 안치될 예정이다.

발굴단은 "지난 60여년 동안 암매장됐던 희생자의 유해가 발견된 만큼 관련 유가족을 찾고 DNA 감식 등을 통해 희생자의 신원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하루빨리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4ㆍ3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관련 유가족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작업이 하루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 지난 4일 화북천 4.3유해발굴현장
<다음은 4.3연구소가 정리한 현장증언 내용>

1. 군인들이 쓰리쿼터에 6명을 싣고 와 양치석 씨밭에서 총살. 당시 군인들은 한 사람당 3명씩 담당하여 총 18명과 총살 현장 외곽에 보초로 10여명 정도가 있어서 대략 30명 정도의 군인이 총살 집행 현장에 있었다. 희생자 6명은 현장에 내기기 직전 군인들이 준 담배를 마지막으로 피웠다고 한다.
 - 시기는 대량학살의 초기였다고 함(1948년 11월 초ㆍ중순)

2. 군인들은 화북 주민들을 집결 시킨 후 빨갱이들의 총살 장면을 지켜 보라고 함
- 화북 초등학교 학생, 서부락 주민 30여명

3. 6명의 얼굴을 검은 천으로 씌우고 손을 뒤로 묶은 후 우선 장교가 권총으로 한발씩 쏘고, 40m 거리를 두고 사수 3명이 M-1 소총으로 한 사람당 6발씩 쏘았다. 군인들은 사살한 후 돌아갔다.

4. 나는 제일 앞 줄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총살 당시 살점이 툭툭 튀기는 것을 느끼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5. 확인 사살까지한 총살 현장에서 5명은 즉사했으나 그 중 한 사람은 머리나 심장에 총을 맞지 않고 살아 있어서 시신을 수습하러 온 화북 주민들에게 “우리는 도두 출신이다. 마을 길가에서 잡혀 억울하게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화북 같은데 도두리 부모 형제들에게 알려 달라”며 자신의 이름과 다른 5명의 이름을 말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화북 주민의 신고로 현장에 온 화북 지서 순경(도두리 출신 문oo)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복부에서 내장이 터지는 것을 보고는 어짜피 살 수 없음을 직감하고 다시 ‘죽여달라’고 해서 화북지서 순경이 총 한 발을 쏘아서 죽게 되었다.

6. 그 후 화북 주민들은 가마니에 시신을 담아 현재 매장지에 나란히 묻음

7. 그래서 백자훈 부친은 무덤 앞에 나무에 이름을 쓰고 꽂아 주었다. 2~3일 후에 유족들이 몇 구를 파갔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2구의 유해 가운데 한 구는 두개골이 파손된 채로 발견 됐으며 다른 한 구는 두개골 파편과 치아, 위팔뼈가 발견됐으며 발굴된 유해와 유류품은 개체 분류 - 세척 - 촬영 - 보존 처리 등의 과정을 거쳐, 제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임시 안치될 예정이다.

발굴단은 "지난 60여년 동안 암매장됐던 희생자의 유해가 발견된 만큼 관련 유가족을 찾고 DNA 감식 등을 통해 희생자의 신원을 회복시키는 작업이 하루빨리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4ㆍ3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관련 유가족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작업이 하루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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