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놀이책 Q&A’로 책과 함께 즐겁게 노는 법을, ‘어부가’로 <논어>에 담긴 가족 생활의 지혜를 전하고 있는 오승주 작가가 이번에는 ‘그림책’을 펼쳐보입니다. ‘어린이와 부모를 이어주는 그림책(일명 어부책)’입니다. 그림책만큼 아이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하고 소통한 매체는 없을 것입니다. 재밌는 그림책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유년기 경험, 다양한 아이들과 가족을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어부책’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승주의 어·부·책] (13) 스핑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엄마가 화났다

j.jpg

스핑키 ㅣ 윌리엄 스타이그 (지은이), 조은수 (옮긴이) | 비룡소 | 1995년 10월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ㅣ 몰리 뱅 (지은이), 박수현 (옮긴이) | 책읽는곰 | 2013년 11월
엄마가 화났다 l 최숙희 (지은이) | 책읽는곰 | 2011년 05월

한 아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아이는 오랜 시간 고독과 분노와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나와 알게 된 것은 16개월 남짓했지만 성실히 따라왔고, 때로는 저를 뿌리치고 달아나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와 굉장히 많은 시간 동안 통화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현재 상담을 받고 계십니다. 아이는 엄마보다 레고에게서 더 위로를 받았고, 엄마는 항상 바쁘셨습니다.

어른은 두 번째 유년시절을 산다는 한 심리학자의 말에 동감합니다. 유년시절에 불행이 없었던 어른은 별로 없겠죠. 저 역시 유년의 불행했던 시간들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분노는 제 깊이를 넘어섰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해묵은 분노 앞에 무기력한 어른일 뿐이었죠.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은 보통 아이들이 분노하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을 담아냈습니다. 제가 본 대부분의 아이들이 소피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스핑키의 분노는 차원이 다릅니다. 무척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겪었던 상처가 분노가 되었고, 가족을 버리고 싶을 정도까지 치달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들의 심경변화와 스핑키의 확고부동함이 아이 마음속에서 용솟음치는 분노의 파도소리를 생생히 들려줍니다.

저는 시골 아이였기 때문에 소피처럼 시원한 바다가 보이는 곳에 걸어서 갈 수 있었습니다. 젖은 빨래를 널어놓은 것처럼 분노가 바닷바람, 갈매기소리에, 나무와 구름에 흩어지면서 저는 스스로 치유되고 재생했습니다. 이에 비해 도시의 아이들은 분노를 풀 데가 공산품밖에 없습니다. 레고는 분노를 담아놓는 그릇은 될지언정 분노를 해소하는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집에 스핑키 같은 오래된 분노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는 가족이 이 글을 본다면 탁 트인 곳에서 오롯이 데이트를 해주는 가족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바다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면 자연정화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주었던 분노의 조각들이 고슴도치처럼 입혀진 아이의 마음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거기에는 엄마, 아빠, 누나, 형의 그림자가 서려 있습니다. 그걸 조금이나마 되찾아가십시오. 분노에 빠진 아이를 조금은 홀가분하게 만들어주세요.

].jpg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