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24)차사본 4-강림차사강림차사본풀이 中

두 번째  이야기, 염라대왕 잡으러 저승 가는 강림차사를 돕는 문전하르방[門前神 문신]과 조왕할망[竈王神 부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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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사에게 바치는 떡춤, '나까시리 놀림'. 나끼시리는 굿에 쓰는 시루떡을 말한다. ⓒ 문무병

두 번째 이야기는 이승의 사람이 저승의 왕을 잡아오는 이야기다.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는 것은 이승과 저승의 문서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승의 문서 호적은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기록되지만, 저승의 문서를 기록하는 장적은 사람이 죽으면 관을 덮는 명정(銘旌)처럼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기록한다.

<차사본풀이>에 의하면, 이를 아는 사람은 강림의 부인이다. 강림은 부인을 잘 둔 덕에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저승을 산 사람(生人)으로 죽지 않고 다녀온 사람, 저승 염라왕에게 이승왕 김치 원님의 편지를 전달한 메신저가 되었다. 이승왕의 편지를 저승에 배달하는 우편배달부 강림차사는 목숨(定命)이 다하여 이승의 명부 호적에서 지워지고 저승의 명부 장적에 새로 이름이 올라가는 날(死亡日)에 망자의 집 대문에 염라대왕이 보낸 사망통지서 ‘적패지’ 를 붙인다. 죽음은 그렇게 완성된다.

<차사본풀이>에는 염라왕의 차사가 되기 전 강림, 이승의 관장 시절의 이승 사람 강림도 중요하게 그리고 있다. 이승 사람 강림은 이승 사람들, 김치 원님, 강림이 열여덟의 족은 각시, 과양생이지집년과 같은 이승의 바같 세상과 강림이가 떠나버린 집안 강림의 큰 부인과 문전 하르방과 조왕할망이 지키는 맑고 공정한 저승법이 살아있는 이승의 집안 세상, 선악의 세상으로 나누고 있다. 강림은 타락한 바깥세상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집안 큰 부인이 쌓아놓은 맑은 집안에 들어왔을 때, 큰 부인의 도움을 받아 저승으로 갈 수 있었다. <차사본풀이>는 강림차사가 똑똑하고 영리했기 때문에 저승 가서 염라왕을 잡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강림이가 똑똑한 것이 아니고 정말 똑똑하고 지혜로운 것은 강림의 조강지처 큰 부인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강림은 저승법을 몰랐다. 김치 원님이 저승에 가 염라왕을 잡아오라는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쓴 문서’는 저승에서는 효력이 없는 문서였다. 저승 가는 길은 저승의 글과 저승법으로 그려진 저승의 지도를 읽을 수 있어야 했다. 강림을 지켜주는 조강지처 부인은 하늘의 저승법을 알고 있는 조왕할망과 문전하르방을 정성으로 모시고 집안의 대소사를 해 왔다. 큰 부인을 돕는 문전 하르방은 ‘길눈’이 있어 문밖에 나가면 저승으로 가는 올레와 이승으로 가는 올레를 구분하여 알려주었다. 저승 법과 저승의 신호를 보며 복잡한  이른 여덟 갈림길도 강림에게 다 알려주었다. 그것은 강림의 열여덟의 첩, 이 세상의 귓것들(이승의 귀신)이어서 온갖 아양(언강)으로 강림을 홀리는 여자와 과양생이지집년이라는 악녀의 악행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승 왕 김치 원님의 타락한 이승법으로는 저승을 다스릴 수는 없었다.

이승왕 김치 원님는 저승법을 몰랐고, 염라완은 이승법을 몰랐다. 저승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저승법을 알아야 했다. 그러므로 저승법을 몰랐던 강림은 기는 살아있지만 맑고 공정한 저승법을 몰랐으니 똑똑한 강림이는 아니었다. 똑똑하고 현명한 것은 강림의 부인이었다. 결국 강림을 저승으로 떠날 수 있게 한 것은 문전 하르방과 조왕 할망을 위하여 정성을 다한 부인의 부덕이 다. 강림을 저승에 가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게 한 것은 강림의 큰 부인의 지혜라는 <차사본풀이>의 중심 이야기는 강림을 저승 가서 염라왕을 잡아오게 하였다. 큰 부인은 조왕 할망의 도움으로 저승의 차림과 저승 갈 때 먹을 저승 음식을 준비했다. 관장패(官長牌)는 등에 지고, 적패지(赤牌旨)는 옷고름에 채워  저승갈 차림을 마련했다. 강림을 저승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저승길의 안내자 문전하르방과 저승 차림과 저승 음식을 차려준 조왕할망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리고 길눈이 문전하르방은 강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질토래비’(길 안내인 指路人)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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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수명을 기록한 저승문서 '적베지'를 등에 붙인 심방. 적베지를 다는 순간부터 심방은 영혼을 데리러 오는 저승차사가 된다. ⓒ 문무병

두 번째  이야기

강림 차사는 김치 원님에게 저승에 가 염라왕을 잡아 오겠다 약속했지만, 저승길은 어디로 가며, 어떤 땅을 지나가야 저승에 이르는지 몰랐다. 강림은 동헌 마당 연단 위에 서서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너무 막막하여 비새같이 슬피 울었다.

“어딜 가, 누구에게 듣고 이 일을 물을꼬?”
강림은 형방(刑房) 방에 달려갔다. “형방님. 나우다(접니다). 저승길 어디로 어떵 가는지 말해줍서.” “야. 나는 저승길을 어떵 가는지 알 말이라(알겠나)? 강림아.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별잔이나 받아먹고 가라. 작별잔이나 받앙 가라. 이 술이나 받고 가라.” 강림은 이방(吏房) 방에 달려갔다. “이방님. 내게 저승길을 말해줍서.” “난 저승길 어떵 가는지 알겠느냐. 가련하고, 불쌍하다. 이별잔 작별잔이나 받아먹엉 갔다 오라.”

강림은 “어딜 가면 누가 날 도와줄 건고? 동네 유지 어른님네나 찾아가 보주. 어르신. 말해 줍서.”
“난 모른다. 이별잔이나 받앙 가라.”며 술은 내어주었지만 저승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딜 가면 좋을까. 이제랑 친한 벗들이나 찾아보지 뭐. 친구 벗들 찾아 가,
“아이구. 설운 내 친구 벗들아. 오라. 나와 벗하여 저승이나 갔다 오게.”
아이구. 나도 싫다. 나도 싫다 해 가니, 너희들. 너무 그러지 말거라. 난 옛날 돈 있어 기생집(妓生家)도 다니고, 술집(酒家)에도 갈 때는 나도 가마. 나도 가마. 친구도 많더라마는 저승에 가려하니 외롭고 쓸쓸한 건 나 혼자 뿐이로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저승에 가는 걸까. 셈해 보니, 큰 각시 시집(嫁)오고 나 장가(丈家) 가던 날, 그날 사모관대(紗帽冠帶) 벗어두고, 버선 놓아두고, 족두리 벗겨 놓아두고, 그길로 집 나와 이구십팔(2×9) 열여덟 각시 집에 나다니면서 우리 큰 부인 간장 썩게 해서 울린 죄 너무 많으난, 이제랑 마지막 저승 가는 길에 큰 각시라도 찾아가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가야지 해서, 큰 각시 사는 집을 찾아서 소곡 소곡 가다 보니, 강림이 큰 각신 물보리 섞어 놓고 도고남절구에 도고남방애에 목청 좋은 소리로 이녁 전생팔자(前生八字) 생각하며 드리쿵쿵 내쿵쿵 짓고 있었다. 강림은 큰 부인 집에 들어가다가 올레에 서서 차마 진정 들어가진 못하고, 올레에 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강림이 큰 각시는 방애만 짓으며 쳐다보지도 않는 채 하다가, 올레 어귓담으로 살짝 보니, 강림이가 와서 우두커니 서 있었구나.  

“어째서 오늘은 우리 올레, 저 멀리 정낭에 가시 걷어내고, 정낭문 열고 누가 오셨습니까?”하며 인사를 하는데, 강림은 이리 말해도 침묵, 저리 말해도 침묵하며, 집안으로 허울허울 내달아 가옵디다. 가서 방문을 확 열어보니, 방안은 올려다보면, 능화도벽(菱花塗壁)이고 내려다보면, 각장장판, 벽장(壁欌)으로 보지 않는 채 하며 바라보니, 공단이불 서단이불 원앙(鴛鴦) 칭칭 잣벼개에 구둘 구석을 보지 않는 채 하며 바라보니, 정동화로(靑銅火爐) 일곱 개를 줄줄이 놓아두고 살고 있었다. 강림이가 한숨이랑 후-하고 쉬면서 앉아서 하는 말이,

“아이구. 홀어멍은 이녁 혼자만 삼년을 살면, 거부자(巨富者)가 되고, 홀아방은 삼년만 혼자 살다가는 거적문에 외(單) 돌쩌귀 하나 뿐”이로구나 혀를 차며, 구들에 들어가 앉으니, 강림이 큰 각시는 마당에서 방애만 지다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잘나도 내 낭군이요, 못나도 내 낭군이라. 어찌하여 우리집을 찾아 와싱고? 무슨 원인(原因)이 있어 와싱가? 그래도 내집에 온 손님인데 내가 가서 맞아 줘야지 하며 방에 들어가 문을 확하고 열어보니, 강림이가 엎드려 비새같이 울고 있었다.

“아이구, 이 어른아, 저 어른아. 어찌하여 난데없이 오셨는가요?” 하다 보니, “큰일 생길 때는 아니 찾아옵디다마는 조금 전에 그만 씩 저만 씩 내가 한 말이 섭섭해 우십니까? 여자(女子)라는 건 동산 위에 앉아 오줌을 싸도 치메깍(치맛자락) 젖는 줄 모르는 거, 여자의 작은 생각 아닙니까.” 와들랑하게 강림이가 일어나면서,

“아이구, 이 사람아, 저 사람아. 내가 그만씩 저만씩 한 말에 칭원해서 그리 울겠는가? 그런게 아니요. 이 고을에 사는 과양셍이지집년 난 삼형제 과거하고 와서 한날한시에 다 죽으니, 이 일 해결 못하면 저승 가 염내왕을 잡아오란 명을 받고 저승 염내왕 잡으러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당신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이렇게 들렸수다. ”

“아이구, 이 어른아. 그러면 저승 갔다 오라며 무슨 표적(標的)을 줍디까?” 물으니, 내어 놓은 걸 보니, ‘흰 종이에 검은 먹글’을 썼구나. 큰 부인은 그 걸 확 걷우고 동헌(東軒)마당 연단 위에 올라가 외쳤다. 
“어떤 판삽니까? 어떤 사똡니까? 이 글은 이승 문서 아닙니까? 저승 글은 붉은 것에 흰 글 써야 저승 글입니다.”하니, 모두들, 야, 강림이 큰 각시 역력하고 똑똑하다 칭찬하였다. 그땐 낸 법으로 지금 현재까지도 우리 인간 죽으면 저승 갈때는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명정을 쓰는 명정법(銘旌法)이 만들어졌다.

강림이 부인은 집으로 돌아오자 설운 낭군 저승갈 때 입고 갈 옷을 지었다.  남방사주(藍紡紗紬) 저고리에 북방사주(白紡紗紬) 말바지에 외코 접은 백능(白綾)버선 벌통행전(行纏)을 지었다. 남수화주(藍水禾紬) 적쾌자(赤快子) 운문대단(雲紋大緞) 안을 바쳐 지었다. 한산모시 두루마기 관대(冠帶)까지 지어놓고, 관대 섶에 본메본장(증거물)으로 바늘 한 섶 놓아두고,
그 다음엔 저승 가며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강남서 들어온 백시루, 일본서 들어온 조그만 멧솥에 초층, 이층, 삼층 놓고 시루떡을 지었다. 윗층은 떼어서 일문전에 가서 차려놓고,
“일문전(一門前) 할아버지(門神). 우리 낭군님 저승 가는데 저승길 인도해 주십시오.”하고는 절 삼배를 하고, 소지(燒紙) 석장을 태웠었다. 또 한층은 떼여서 “조왕(竈王) 할머니(부엌신).  우리 낭군 저승길 인도하여 주십시오.”하고 절 삼배 올리고 소지 석장을 태웠다. 아래층은 떼어서 강림이 저승가면서 먹을 음식으로 탄탄하게 싸 놓았다. 모든 준비를 다 하여, 방문을 확하고 열어보니, 아이구. 강림인 콧소리만 화르르릉 화르르릉 하며 무정 눈에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구, 이 어른아, 저 어른아.  아이구. 어느 염치(廉恥)로 무정 눈에 잠이 들었수가. 저승길이란 건 아무도 대신 못가는 길입니다. 빨리 일어나서 저승 갑서.” 퍼뜩하게 강림인 깨어나 보니, 천황(天皇) 닭은 목을 들고 조지반반 울어간다. 지황(地皇) 닭은 꼬릴(尾)치고 고고고고 울어간다. 먼동 금동 대명천지(大明天地)가 밝아올 듯 해 가는구나. 그때엔 큰 각시 차려준 옷을 모두 차례차례 차려 입고, 차려놓은 점심밥 시루떡 옆 등에 껴가지고, 부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설운 정녀야. 오래오래 살고 있으면 나 저승 갔다 돌아와 우리 검은 머리가 벡발되도록 살아보주.”
굳은 언약을 하고 강림이는 올레 바깥으로 떠나갔다. 올레에 나가 바라보니, 어떤 여자가 빈 허벅지고 물을 길러 가다가 이리 젓고 저리 젓고 해가니, 강림인 삼각수 거슬린다. 붕어눈을 부릅뜬다. 청동 같은 팔뚝을 활딱 걷어 올린다. 그때는 벼락같은 소리를 우레같이 질러가며, 어떤 여자냐.
“여자라 한 건 꿈에만 시꾸와도 새물(邪物)인데, 강림이 저승 가는 길에 누구가 빈 허벅지고 젓느냐?” 그때 청동(靑銅)같은 팔뚝 걷어 손으로 와쌍하게 빈 허벅 두드리니, 허벅은 와쌍하게 깨졌다.

그땐 낸 법으로, 옛날은 사람이 죽어 <귀양풀이> 하려면, 사기그릇 가져다 와쌍와쌍 깨뜨려도 지금은 모든 게 개화법이 되니, 콩으로 살이살성(殺意殺星) 다리는 법이 되었습니다. 가다가 바라보니, 어떤 청투산이 마구할마님이 불붙였던 부지깽이 오그라진 작대기 짚고 행주치마 둘러입고 앞에 나서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구, 저기 가는 할머닌 어디로 가는 할마님이꽈? 빨리 내가 쫓아가 같이 말벗이나 하며 저승가야지. 강림이가 빨리 따라가면 할마님도 빨리 걷고, 강림이가 천천이 가면 할머니도 천천이 걸었다. 가다보니 높은 동산이 있었다. 동산에 가자 할머니는 오똑하게 앉았다. 강림이가 설운 할머니께 절을 허울허울 삼배(三拜)를 올리니,
“아이구, 어떤 도련님이 동산을 넘어가다가 이런 늙은이에게 절을 햄수가?” 
“아이구, 무슨 말씀을 그리 햄수가? 우리집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노인네가 다 있수다. 할머니는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하고 절을 허울허울 삼배를 하고 “아이구. 오세요. 우리 배고프고 시장하니, 점심밥이나 내여놓고 먹고 가면 어떻겠습니까?” 그때 내어놓고 점심을 먹으려고 할머니도 싸고 온 점심 톡 내어놓고, 강림이도 싸고 온 점심 톡 내어놓고 보니, 한 솥밑에 지은 한 솥밥이었다.
“할마니 점심과 내 점심이 어찌하여 이렇게 똑 같을 수가 있습니까?”
“아이고. 모른 소리 하지 말라. 나는 네 큰 각시네 집 조왕할망인데, 너 하는 행실이 하도 괘씸하더라마는 너의 큰 각시 정성이 기특하고 너의 큰 각시 정녀가 불쌍하니 너 저승길 가르쳐주려고 나왔다. 네 점심밥이랑 가지고 가다가 보면, 일문전 할아버지가 있을 테니, 할아버지 드리고 저승길을 말해달라 하고, 내 점심밥이랑 네가 먹고 가도록 해라.”
“예. 어서 그건 그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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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수명을 기록한 저승문서 '적베지'를 등에 붙인 심방. 적베지를 다는 순간부터 심방은 영혼을 데리러 오는 저승차사가 된다. ⓒ 문무병

그때엔 할머니의 점심밥을 강림이가 얻어먹고, 할머님께 절을 허울허울 삼베(三拜)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할머니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필아곡절(必有曲折)한 일이었다. 다시 강림이는 혼자 허울허울 가다보니,  아으, 높은 동산에 일문전(一門前) 할아버지가 하얀 수염에 긴 담뱃대 입에 물고 앉아있었다. 다시 절을 허울허울 삼배하니,
“어떤 도련님이 넘어가다 절을 합니까.”
“아이구, 우리집에도 백살 넘은 노인네들 다 있습니다. 할아버지. 점심이나 잡수십시오.” 하며 내어놓는 것도, 할아버지가 내어놓는 점심도 같은 솥에서 지은 같은 점심이었다.
“할아버지는 어째서 내 점심과 같습니까?”하고 강림이가 할아버지께 들으니, 할아버지 하는 말이, “난 네 큰 각시네 집 일문전(一門前) 하르방인데, 너의 큰 각시 하도 정성이 기특하니 네 저승길 말해주러 나왔네. 네 점심밥이랑 싸고 가다보면, 네 들어갈 길은 이른 여덟 공거름질(갈림길)을 다 세며 가다 보면, 개미 왼뿔만한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헤쳐가다 보면, 질토레비(길 안내인) 질감관(길안내인路監官)이 길을 닦다가 허기에 지쳐 누웠을테니, 그 싸고 간 점심밥을 드리고 저승길을 가르쳐달라 하고 저승 갔다 오너라.” 일렀구나. 그때엔 할아버지가 강림이 손잡고 높은 동산으로 올라가며,
“강림아. 지금부터 네가 들어갈 길은 이른 여덟 공거름질(갈림길)이니라.”
“이 길은 보니 시왕감사 신병사가 들어간 길이요.”
“이 길은 보니 원앙감서 원병서가 들어간 길이요.”
“이 길은 보니 짐치염라(金緻閻羅) 태산대왕(泰山大王)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초제 진광대왕(秦廣大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이제 초강대왕(初江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제삼 송제대왕(第三宋帝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제사 오관대왕(第四五官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제오 염라대왕(第五閻羅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제육 번성대왕(第六變成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제칠 태산대왕(第七泰山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제팔 평등대왕(第八平等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아홉 도시대왕(第九都市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제십 십전대왕(第十十轉王)이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열하나 지장대왕(地藏王), 열 둘 생불대왕(生佛王), 열 셋 좌두왕(左頭王), 열 넷 우두왕(右頭王), 열 다섯 동자판관(童子判官)이 들어간 길은 강림아.”
강림이 손잡고, 가리킨다.
“이 길은 보니 천황차사 월직사자(天皇差使月直使者) 들어간 길이요,”
“이 길은 보니 지황차사 일직사자(地皇差使日直使者) 들어간 길이요,”
“이 길은 인황차사 어금부도사나장(人皇差使御禁府都事羅將) 들어간 길,”
“이 길은 눈이 붉어 황사지관(黃使者),”
“이 길은 코가 붉어 적사지관(赤使者) 들어간 길이요,”
“이 길은 보니 악심사자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옥황차사 망나장 들어간 길,”
“이 길은 저승차사 이원사자 들어간 길,”
“이 길은 보니 인간(人間) 강림(姜林)이 들어갈 길이 되었더라.”

강림아, 네가 들어갈 길은 이로부터 개미 왼뿔(左角)만한 길이로다.
그 길은 바라보니 동쪽 가진 서쪽으로 앙상한 길입디다.
서쪽 가진 동쪽으로 앙상한 길입디다. 어주리길 비주리길(꾸불꾸불 요철(凹凸)이 심한 길), 어허. 되었더라. 돌바쿳길(돌무더깃길)일러라.
아이구, 이 길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르바님전 절 삼배를 올리니, 하르바님도 강간무종(자취없이사라짐) 되었다.
강림이 혼자 동쪽 가진 들어서며 서쪽으로 한 가지 눕혀간다.
서쪽 가진 동쪽으로 눕히며, 가시덤불길 헤치며 가다보니,
질토래비(知路人) 질캄관(路監官)(저승길안내하는 신) 허기부처 길가(路邊)에 누워있었다.

“아이고, 누구십니까? 이 점심밥이나 먹고 정신이나 차리십서?” 하니,
그때는 하도 배고프고 시장하니, 질토래비 질감관은 듣지도 묻지도 않고 우선 시장기 멀려 그 점심을 먹고 조금 정신이 나니, 물었다.
“어디로 가는 누구십니까?”
“나는 인간 김치(金緻) 원님 몸 받은(소속된) 강림이가 됩니다. 저승 염라왕 잡으러 갑니다.”
“아이구, 저승은 가려면 검은 머리털이 백발(白髮)이 되도록 걸어도 저승은 못갑니다. 남의 것 공으로 먹고 공으로 쓰면, 목 걸리고 등 걸리는 법입니다 만, 그리말고 여기 나랑 같이 서 계십시오. 내일 모래 사오시(巳午時)날이 되면, 아랫녘의 원복장자(長者) 막내딸아기 다 죽어 가니 전새남굿(병자가 죽기 전에 살려주기를 비는 굿)을 할테니, 그때 염라왕이 내릴 때, 내가 길을 닦다가 허기에 부쳐 누웠을 테니, 여기 섰다가 염라왕 넘어가거든 잡아가면 되지않겠습니까?”
“아이고, 안됩니다. 아무래도 나는 저승을 갔다 와야 됩니다고 하니, 아이구, 그러면 속적삼이나 벗어 제게 주시오. 내가 강림이 삼혼(三魂)을 부르면, 저승 원대문에 가서 적패지(赤牌旨)를 붙이고, 다섯 번째 별련독굘(別輦獨驕) 잡아오면, 거기 염라왕이 타고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그때엔 강림인 속적삼을 벗어 주니, 질토래비가 그땐 속적삼을 들고서,
“강림이 본. 강림이 본. 강림이 본.” 하고 연 세 번을 부르니, 저승의 원대문에 가서 강림이 삼혼정에 적패지를 붙였다. 아닌게아니라 사오시(巳午時)가 되니 별련독교(別輦獨驕)들 타고 와라치라 내려왔다. 앞에 오는 첫 번 째 별연독교 잡아보니 빈 별연(別輦). 청가마(靑駕馬) 청별련(靑別輦), 흑가마(黑駕馬) 흑별련(黑別輦), 백가마(白駕馬) 백별련(白別輦) 잡아봐도 빈 별련독교였다. 다섯 번 째 별련, 옆 눈으로 확하고 보니, 눈은 보니 통대왈(큰대접)만 하고, 코는 말뚝코에  입은 작박(얕은 나무박)만한 무섭고 서꺼운 염라왕이 앉아있었다.
한번 보고 두 번 어찌 볼까. 내가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아무튼 나는 이때 잡아야지 하고,  홍삿줄을 내어놓고 달려들어 염라왕을 탄탄하게 사문결박(私門結縛)을 하였다. 그때는 염라왕이 하는 말이
“누가 감히 나를 사문결박 하느냐?”
강림사자 하는 말이,
“예, 저승왕도 왕입니다. 이승왕도 왕입니다. 나는 이승 김치 원 몸 받은 강림차사(姜林差使)요.”
“어째서 나를 사문결박 했느냐?” “인간에 나와 함께 가야합니다.”하니,
“아이구, 강림아. 강림아. 역력하고 똑똑하다. 사문결박 풀어 달라. 인정(人情)주마, 사정(事情)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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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베지를 등에 붙이기 전에 추는 춤, '적베지탐'. ⓒ 제주의소리

그리하여 저승왕 염내왕도 강림이에게 가 인정주며 달랬다. 그때는 인정을 주니,  사문결박을 풀고 홍삿줄을 풀어주었다. 아이구. 그러면 어찌해야 인간에 갈 수 있겠느냐? 나와 함께 아랫녘에 원복장자 막내딸이 아파서 다 죽어가 전새남굿(병자를 살려내는 굿)을 하고 있을 테니 나와 함께 거기 가서 전새남굿이나 받아먹고 갑시다. 어서 걸랑 그렇게 하자. 그래서 염라왕을 따라가 아랫녘에 내려갔다. 그곳에 가보니 허데기(許宅)라는 큰심방이 시왕전을 바라들고 바라나오며 굿을 하고있었다. 올레에 와서 쌀을 조금 케우리며 “저승왕도 어서 옵서, 저승차사도 옵서. 이원사자도 옵서.” 모두 오라 하여도, 강림사자, 인간 강림일 오라하지 않으니, 다시 홍삿줄을 내어놓아 굿을 하던 허데기(許宅)란 심방을 탄탄하게 사문결박(私門結縛)을 시켰다. 그때엔 역력하고 똑똑한 신소미가 확하게 나서서 올레로 가 쌀을 훅훅하게 케우리며, “이승사자 강림사자(姜林使者)님도 살아 옵서. 오리정 신청궤로 어서 옵서.”하니, 죽어가던 큰심방도 파릿파릿 살아났다. 그때는 제물(祭物)을 따로 마련해 상을 차리려 해도 시간이 당장 급하였다. 한꺼번에 열 말 시루 세판 금시루을 마련하여 시왕맞이 할 때 쓸 나까시리(굿에 쓰는 시루떡)를 마련했다. 이렇게 시왕당클 아래 사자상을 마려해 놓고 상단에 올렸다가 내려 굿을 마칠 때가 되니, 동글동글 놀리다 염라왕은 청비새(靑悲鳥) 고고리로 환생하여 강림이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올라가니, 다시 강림이는 파리(蠅) 몸으로 환생하여 가서 염라왕님. 빨리 갑시다. 빨리 내려 갑시다 하며 붙잡으니, 야, 그 강림이 역력하고 똑똑하구나. 내려와 빨리 가자고 다그치니,
“아이고, 내일(來日) 모래 사오시가 되면, 내가 인간에 내려올테니 먼저 가 있으라.”
“아이구,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아무래도 염라왕님은 빨리 모시고 가야합니다. 어서 가요, 어서 가요”하며 하도 재촉하니, 그리 말고 돌아서보라 임금 왕자(王字) 날릴 용자(龍字)를 박아주며, 내가 사오시가 되면 내려갈테니 너무 걱정말고 내려가라며 하얀 강아지(白犬) 한 마리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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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시인.
내려갑니다. 염내왕님아, 사실이 이리저리하여 인간 몸이라 저승 염라왕님을 잡아오려니  이원사자님이 길을 닦다가 허기에 부쳐 누웠길레 점심밥을 드리고 나 삼혼을 빼어 저승갔습니다. 삼혼정(三魂情)은 나 신체(몸)로 들게나하여 인간 땅을 가오리다. 그땐 백강아지 내어주며 이 강아지를 따라가다 보면, 외나무 외다리에 행기물(놋그릇에 담긴 물)이 있으니 거기 가 풍덩하고 빠지면, 몸천(身體) 있는 곳에 갈수 있다니 그때는 백강아지 따라서 가다보니 외나무 외다리 행기물이 있었다. 거기 강아지가 들어가는 곳으로 풍덩하고 빠진 곳이 인간세상이었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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