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놀이책 Q&A’로 책과 함께 즐겁게 노는 법을, ‘어부가’로 <논어>에 담긴 가족 생활의 지혜를 전하고 있는 오승주 작가가 이번에는 ‘그림책’을 펼쳐보입니다. ‘어린이와 부모를 이어주는 그림책(일명 어부책)’입니다. 그림책만큼 아이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하고 소통한 매체는 없을 것입니다. 재밌는 그림책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유년기 경험, 다양한 아이들과 가족을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어부책’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승주의 어·부·책] (14) 마이볼, 겁쟁이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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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볼 | 유준재 (지은이) | 문학동네어린이 | 2011년 11월
겁쟁이 우리 아빠 ㅣ 티베 벨드캄프 (글), 필립 호프만 (그림), 김현좌 (옮긴이) | 해솔 | 2011년 2월

“아버지는 방황하시고, 어머니는 고생하시고”

제가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육지에서 오래 계셨고, 제주도에 내려오지 않으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제주도로 내려왔다는 것은 뭔가 꼬였다는 거죠. 저도 육지 생활을 오래해서 제주도로 내려오긴 했지만, 저의 귀향은 꼬인 것을 풀기 위함이었습니다. 군 전역하고 집에 왔을 때 아버지의 흰머리가 부쩍 늘었습니다.

<마이볼>의 화자인 아들이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 야구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장면에서 제 경험이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종종 통밭알 바다에 가서 조개를 잡곤 했거든요. 군대 휴가 나왔을 때도 몇 번 아버지와 갔었죠.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무슨 구멍을 발견했는지 갑자기 손을 쑥 집어넣어 낚지를 잡을 때도 있었습니다. 갓 사회인이 된 아들에게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바다에 조개 잡으러 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런데 덧붙인 뒤의 말이 지금도 가슴이 시릴 정도로 슬펐습니다.

“바쁜 일 있으면 안 가도 좋아”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오늘 가야죠!”라고 힘차게 대답하자 아버지가 신이 나서 조개도 잡고 보말도 잡고 꽃게도 잡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두 아들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약한 존재입니다. 아니, 약해지는 존재입니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힘이 커지는 반면 아버지는 점점 힘이 약해지죠. 저는 <겁쟁이 우리 아빠>와 <마이볼>이 그 점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겁쟁이 우리 아빠>를 보면서 힘을 내고 위로를 받은 까닭은 잘 키워놓은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멋진 일을 꾸몄기 때문입니다. 방안에만 틀어박혀 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결국 밖에 나가는 걸 꺼리고, 동물을 무서워하게 되자 아들이 동물원 친구들과 함께 모여 집안의 가구를 모두 동물로 바꾸는 기상천외한 선물을 하죠!

수년 동안 가족 교육과 책 놀이를 하고 다니면서 ‘아버지’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아버지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을 때 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구려가 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하다가 쓰러졌듯, 아버지도 사회의 온갖 폭력을 받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정작 가족을 감싸줄 여력은 없죠.

생각을 달리해서,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까? 아버지는 가족을 살갑게 대하는 법을 누구로부터도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어머니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족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훌륭한 아버지들이 많이 계시죠.

중요한 것은 엄마가 되었든 아이가 되었든 아빠가 되었든 사랑의 그릇에 사랑을 채워넣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사랑의 그릇이 있고, 가족에게는 가족 사랑의 그릇이 있습니다. 그릇에 사랑이 채워지면 자연스럽고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아빠의 그릇에 사랑을 조금 넣어달라는 말씀을 모든 아빠들을 대신해서 정중히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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