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시인의 시네마 줌(4) '아홉살 인생'

 '나는 낡아빠진 이불 보따리, 자질구레한 살림살이와 더불어 내가 살아야 할 가파른 세상으로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그때 내 나이 아홀 살이었다.' 그 다음은 이렇게 이어진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라고.

『아홉 살 인생』은 백만 부 넘게 팔린 소설과는 다르다. 순서가 뒤바뀐 것도 그렇거니와 토굴할메의 부재와 베트남에서 돌아온 하 상사의 유성(流星)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어른같이 우직한 아이두목 백여민(김석 분), 두목의 여자가 되고 싶은 유자똥 오금복(나아현 분), 두목의 오른팔인 시궁창 신기종(김명재 분), 새침떼기 장우림(이세영 분)만큼은 낯익은 얼굴들이다. 맹꽁이운동화 한 켤레에 300원하고, 멋진 선글라스 하나에 1300원하던 시절처럼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산도 들도 나무들도 파랗게 익어갈 하얀 마음 파란 마음들이다.

 그 시절 깡패였던 아버지는 착한 여자를 만나 성실한 남편으로 다시 태어나고, 여민도 아버지처럼 서울에서 전학 온 우림을 만나 아홉 살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던가. 풀잎 같은 사랑은 그렇듯 피아노선생을 좋아하는 동네총각을 가운데 두고 가슴앓이를 시작한다. 아버지와 동네총각 팔봉이 형, 여민이 해서 상·중·하의 소통은 이루어진 셈이다.

   
문제는 여민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신기종의 넘봄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가슴에 품고도 어쩌지 못하는 팔봉이 형처럼 머리가 뽀개질 것 같건만 그런 두목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시궁창 기종이가 태클을 걸어오는 것이다.

 "좋아하제?"
 "아이다!"
 "참말이가?"
 "그렇다니까!"
 "그라믄 내가 그 가스나 찍어도 되나?"

 어떤 대답을 해야하나. 팔봉이 형의 말마따나 가스나들은 속물이라고 말해버릴까. 아니다. 싸나이란 적어도 죽을 때까지 여자를 책임져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연애편지를 배달해주기 위해 찾아갔을 때 팔봉이 형도 그와 유사한 말을 했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글로 그 말을 대신하게 되는 거라고. 그럼 나도 이참에 편지를 한번 써볼까. 장우림 니가 쪼금씩 쪼금씩 좋아지기 시작한다고?

 허나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다. 잉크공장에서 일하다 애꾸가 된 엄마한테 색안경을 사드리려면 아이스케키도 열심히 팔아야 하고, 똥 푸는 집에 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 숫자도 세 알려 줘야 하고, 피아노 집 누나한테 달려가 마루가 반들반들하도록 청소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왜일까. 보고싶은 우림이처럼 영화『친구』가 가물가물 겹치는 까닭은.

 뚝뚝 분질러지는 경상도 말투에 욕설, 쌈박질까지도 꼭 빼 닮았다. 그래, 그 옆에 아까징끼와 급식빵, 무조건 좋은 미제(美製)와 지우개가 달리지 않은 연필, 아이스케키와 강냉이, 우리들의 솜씨와 빛나는 급훈이 없었다면, 검정고무신 한 짝은 입에 물고 다른 한 짝은 까까머리 위에 얹고 기다란 복도에서 벌서는 장면이 없었다면 아홉 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하랴.

가만, 거짓말쟁이 우림이가 살다온 곳이 젤라스라고 했던가? 그러자 유자똥을 뒤집어 부르면 똥자루가 되는 금복이가 그게 무슨 사탕 이름이냐며 맞받아 쳤던가? 그런 기억 하나 있다.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를 한국의 박은허로 잘못 받아썼다가 진땀을 흘렸던. 무식한 똥자루가 되고 말았던.

   
 아차! 점심시간만 되면 기가 죽었던 깡당 도시락과 선생님도 빼놓을 수 없다. 육각형 얼굴에, 화를 내면 이마에서 갯지렁이가 지나간 듯 파란 힘줄이 선명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교실에서 퍽! 퍽!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던……. 오죽했으면 존경하옵는 선생님을 월급기계라며 놀려댔으랴. 선생님의 체벌이 섬뜩하게 느껴진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말죽거리 잔혹사』가 따로 없다. 깡패 남편을 만난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건만 선생님의 체벌은 잔혹함, 그 자체다. 엄마 손잡고 입학할 나이면 모를까, 손 익고 귀 익고 눈도 익어 어딘가 모르게 짝꿍이 수상해 보일 3학년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과 가장 낮은 산인 소백산에 이르러 한참을 웃다보니 설설 슬픔이 스며들고 두어 자락 아픔도 묻어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영화는 왜 전학 온 학생이 그 모델이 되어야 하는지 지겹기도 하지만 피아노선생과 함께 간 중화요리 집에서 만난 팔봉이 형한테 다다르자 가슴 한켠이 싸해지기도 한다.

술 취한 형을 두고 나오는 여민의 마음이라고 어디 편했으랴. 그런데 어쩌자고 우림은 뜬금없이 겨우 한 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가면서 '나는 종잡을 수 없는 년'이라며 눈물을 보인 것일까. 서푼짜리 신파다. 어머니의 색안경을 사드릴 돈으로 여민이 빨간 머리핀을 사 우림의 손에 안기는 것도 그렇고, 우림이 서울로 돌아가면서 여민에게 색안경을 건네는 것도 그렇다. 눈까지 퐁퐁 내려 자꾸만 자꾸만 오 헨리의『크리스마스 선물』이 겹친다.

 그래도 봄이다. 사랑하는 당신이 있어서 바라봄이요, 사랑하는 당신과 마주할 수 있어서 마주봄이다. 아이들은 아홉 살 가슴에 우리들의 빛을 담아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을 신나게 부를 때이고, 어른들은 다시는 갈 수 없어 눈물짓던 그곳으로 꼭 한번 돌아가고 싶을 때다. 아홉 살 그 시절로!

※ 필자인 박영희 시인은 1962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태생으로 1985년 문학 무크 「民意」로 등단, 시집 「조카의 하늘」(1987), 「해 뜨는 검은 땅」(1990), 「팽이는 서고 싶다」(2001)를 펴냈으며, 옥중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1999)도 있다.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와 평론집 「김경숙」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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