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일신교-국가’라는 체제의 바깥에 대해 사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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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19)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 『대칭성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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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자와 신이치 저 『대칭성 인류학 :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 김옥희 역. 동아시아, 2005년.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는 아사다 아키라(淺田彰)와 함께 일본 뉴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철학자다. 들뢰즈, 크리스테바, 데리다 등 유럽의 후기 구조주의의 흐름을 이어받으면서도, 그는 그것을 인류학과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논의를 펼쳐오고 있다. 『대칭성 인류학』은 그의 ‘비교종교론’ 강의록을 토대로 한 총 다섯 권의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시리즈의 총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적 사고가 과학적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진논리(binary logic)’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과학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대칭성의 논리’―이것은 정신분석의 마테 블랑코의 용어임―에 의해 독자적인 사상을 탄생시키려 했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이진논리를 도구로 하여 아리스토텔레스형의 논리를 작동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형의 논리는 A라는 명제가 있고 not A라는 명제가 있을 때 A와 not A는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는 형식논리다. 그런데 신화에서는 이와 같은 ‘모순율’을 전복하는 논리가 작동됨으로써 신화적 우주가 창조된다.

합리주의적 사고에서는 ‘클라인의 병’ 형의 사고 활동을 억압해, 모든 것을 삼차원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처리하려고 하지만, 신화적 사고에서는 안과 바깥, 부분과 전체가 구분되지 않는 ‘클라인의 병’ 형의 사고를 통해 더 고차원의 공간을 창출한다. 고차원적인 무의식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삼차원적인 현실세계의 논리에 맞추려고 하면, 압축이나 치환에 의한 비유나 상징이 출현하게 된다. 신화에 비유나 상징이 많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프로이트가 무의식 활동의 특징으로 제시한 ‘압축’이나 ‘치환’, ‘통사법의 무시’, ‘정동의 혼란’ 등을 분열증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특징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신화의 ‘대칭성의 원리’와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의식=유동적 지성’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낸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억압’과 관련하여 어두운 것으로 묘사했는데, 나카자와 신이치는 무의식이야말로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마음’이라는 생각을 피력한다. 근대 국민국가가 신화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한 적도 있지만, ‘국가를 갖지 않은 사회’에서 신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지혜를 주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논리는 일견 국민국가 너머에 대한 사유로 뻗어갈 잠재력이 있어 보인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교환은 증여로 뒤바뀌고, 언어에는 시가 탄생하고,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라는 사고가 생명을 되찾게 된다고 강변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경제에서부터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비대칭성의 원리에 의한 활동이 지나치게 활발해져, 인간 세계에 회복 불가능한 균형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대칭성의 논리’를 회복해야만 할 때라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원래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분할해 비균질화하는 현실적인 비대칭적 사고와, 여러 부분들을 하나로 잇는 동질성을 발견하는 대칭적 사고가 ‘복논리(bi-logic)’로 되어 있었으나, 일신교가 출현하고 국가 권력이 강화되면서 대칭적 사고를 억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 ‘복논리’를 경제 방면에도 적용하여, ‘증여’와 ‘교환’의 복논리에 의해 현생인류의 경제가 작동해오다가 ‘증여’의 원리가 ‘교환’의 원리에 의해 억압을 당함으로써 현재의 글로벌한 경제에 귀착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모든 것이 교환의 논리로 환원돼버리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증여의 논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계량적으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소’의 개념에 기반을 둔 ‘순수증여’를 상정해야만 한다는 흥미로운 증여론을 전개한다. 순수증여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는 증여라는 행위가 교환의 논리 속으로 휩쓸려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순수증여의 존재는 신의 죽음을 인정하더라도, 정령이나 성령, 천사와 같은 존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 전체가 교환 원리 일색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현생인류가 ‘불행’을 느끼는 것은 원래 인간 본연의 마음이 증여와 교환의 조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증여론/행복론이 종교론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예견 가능한 전개다. 

자본주의는 다차원적으로 결정되던 ‘가치’가 ‘단일한’ 가치척도로 환원되어, 계량적으로 수치화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메커니즘이다. 신의 영역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일신교(크리스트교)가 출현함으로써 그 이전까지 생활현실과 거의 같은 눈높이에 있었던 영성적인 것들이 인간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지게 된다. 일신교의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이와 같은 비대칭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 일신교의 비대칭성이 ‘권력의 출현’을 추동했다고 봄으로써, ‘자본주의-일신교-국가’라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동시대의 어떤 ‘체제’를 강력한 통일체로서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대칭성의 논리’는 윤리 사상으로서의 불교에 귀착한다. 그는 삶과 죽음의 비대칭성에 기반을 둔 과학적 사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죽음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온 현생인류의 마음의 구조를 불교에서 새삼 확인한다. 옴진리교 사건 이후 그가 『붓다의 꿈』(2001), 『불교가 좋다』(2003) 등으로 나아간 것은 그에 대한 방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는 불교란 신화적 사고가 공간 축에서 전개하는 사상을 시간 축에 투영해 전개하는 사상이라고 하면서, 무의식=유동적 지성의 본질을 이루는 대칭성의 논리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면 (대승)불교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도덕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납득할 만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명령이라고 한다면, 불교란 그런 도덕의 합리성을 넘어선 ‘윤리’를 내포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종교로서의 불교를 부정하고 ‘무심’이나 ‘법계’를 ‘무의식’으로 전치시키는 아크로바틱한 논리를 감행함으로써 불교를 대안 윤리나 대안 사상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셈이다. 그래서 그의 이론을 ‘초월자 없는 신비주의’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 책은 ‘미국화’하는 현재의 세계체제를 설명하는 이론적인 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일신교-국가’의 등질화된 세계의 바깥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시사해준다. ‘증여의 논리’와 ‘영성(무한소)’을 회복하는 것의 의미, 그리고 ‘행복’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장이지 제주대 국문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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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이지 교수

시인. 200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김구용시문학상, 오장환문학상 등 수상

현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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