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칼럼> ‘능력자, 권력에 빌붙는 자, 아니면 무능력자?’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  

‘세계의 대통령, 세계 최고의 외교관, 세계의 조정관’은 유엔 사무총장을 일컫는 말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편성을 띤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도덕적 지도자다. 그만큼 복잡다단한 국제 사회의 역학 관계 속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기란 여러 제약과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유엔사무국 직원은 4만1000명이 넘는다.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사회에서 국가 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고, 안보리나 경제사회이사회 등 다른 유엔 주요 기관의 모든 회의에 참여해 위임된 임무를 수행한다. 그렇다면 반기문 사무총장은 제대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을까? 

반기문은 한국의 보배였다. 참여정부 시절, 그를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 예산과 인력이 총동원됐다. 그가 총장이 됐을 때 국민들은 ‘세계 대통령’을 배출했다며 기뻐했다. 외교관이 되겠다며 ‘반기문 키즈’들이 줄을 이었다. 안타깝지만,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그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는 그리 탐탁하지 않다. 퇴임 뒤 대선 출마 논란까지 점화되면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뜨악해지고 있다.

우선 2006년으로 되돌아보자. 외교부장관 반기문은 유엔사무총장에 나선다는 것을 공식으로 선언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멋진 일 아닌가!”라고까지 흥분했다. 그는 무려 15개국을 순방하며 반기문 후보를 전폭 지원했다. 이집트, 알제리, 아랍에미리트, 코스타리카, 아제르바이젠...당시 한국 대통령이 최초로 방문했던 나라들이다. 그해 10월 14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확정됐다. 

그 후 반기문 사무총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얼마나 고마워했을까?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운명하셨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장례식에 불참했다. 추모영상 메시지도 서면 메시지조차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정말 총애했음을 아는 국민들은 그런 그가, 장례식에 오지 않은 것은 물론 장례식 2개월 뒤 제주를 다녀가면서도 김해에 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946년 1월10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중앙홀에 51개 국가의 대표가 모여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첫 총회를 개최했다. 유엔의 창립자들은 행정조직의 수석 행정원을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이라 칭하였다. 1월24일 총회에서 “유엔 회원국은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immediately on retirement) 어떠한 정부직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무총장 자신도 그러한 (정부) 직책을 수락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should refrain from accepting)”는 권고를 담은 ‘결의 11(Ⅰ)호’도 채택했다. 

여기에는 유엔 사무총장은 재임 중 유엔 회원국의 내밀한 정보를 다수 취득하는 만큼, 적어도 퇴임 직후에는 특정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숨어있다. 이런 결의의 취지에 비춰, '퇴임 직후' 사무총장이 피해야 할 '정부직'(any govermental position)은 좁게는 임명직, 넓게는 선출직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세월이 흘렀으며, 유엔의 꿈을 수호한 8명의 사무총장이 있었다. 그들은 유엔 총회가 통과시킨 유엔 결의안 11(1)호를 위반하지 않았다. 쿠르트 발트하임은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이 됐다.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칠레 대통령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물론 사무총장 임기 이후 자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된 경우가 있지만 평균 5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반기문 총장의 ‘대통령 꿈’이 1946년 유엔의 꿈을 믿었던 사람들을 배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사무총장으로 코피 아난 사무총장을 꼽는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2001년에 유엔과 함께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코피 아난은 국제 무대에서 퇴임 뒤 가장 흥미로운 역할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코피 아난 재단’을 설립해 시리아와 케냐의 갈등 관리와 아프리카 농업개발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 외교가 배출한 최고의 외교관이 한국 정치판 한가운데서 몰매를 맞는 모습은 슬픈 광경이다. 반기문 총장은  ‘생산적 글로벌 시민’(productive global citizen)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번 한국에 머물면서 사실상 ‘대선 주자’ 행보를 열심히 하고 돌아갔다. 그것을 국민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대중 동향보고

반기문은 그저 ‘영혼 없는 존재’, ‘영혼 없는 외교 공무원’이었을까? 공무원은 변명이 달인이 될 때가 많다. 그렇지만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 등을 돌아볼 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심각한 시대의식 부재를 보여주고 말았다. 1985년 1월 7일 하버드대에서 연수중이던 반기문 참사관은 미국 주요 인사들이 김대중의 안전귀국을 요청한다는 정보를 입수, 류병현 당시 주미대사에게 보고하면서 프락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김대중이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인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하다 1982년 말 신병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김대중이 망명 2년여 만에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귀국하려 하자 귀국하면 재수감하겠다고 압박했다. 이에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캠페인(Campaign to Assure a Safe Returen for Kim Dae Jung)’을 주축으로 한 미국의 학계 및 법조계 인사 135명은 김대중의 무사귀환을 위한 연서를 전두환 대통령에 보냈다.  김대중의 무사귀환과 사회생활(public life) 보장을 통해 국내적인 신뢰를 도모하는 것은 1985년 국회의원 선거,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 및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화합을 성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망명기간 동안 김대중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했다.

반기문 역시 연수생 신분임에도 적극적으로 김대중의 동정을 상부에 보고하고 있었다. 바로 프락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자신의 영달을 향해 달려갔다. 반기문은 김대중의 귀국 직전인 같은 해 1월30일에도 김대중과 관련된 정보를 한차례 더 보고했다. 주미대사관측이 1985년 1월30일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김대중 동정' 전보에는 "하버드에 연수중인 반기문 연구원이 보내온 'The Harvard Crimson'지(1985년 1월 23일 자)의 김대중 관련 보도를 별첨 송부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외국 언론도 부정적 평가 

“대체로 반 총장은 모두가 거부하지 않을 가장 자질이 부족한 후보(lowest common denominator)를 뽑곤 하는 유엔의 단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사무총장이 된 이유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중 누구도 그를 특별히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아시아 출신을 원했고, 미국은 반기문이 전반적으로 자기네 편이라고 여겼다. 러시아는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별 특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올해 말 반기문이 임기를 마치고 나서 유엔이 다시 반복할 것으로 보이는 실수다.” - 이코노미스트 2016년 5월21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Master, mistress or mouse?(능력자, 권력에 빌붙는 자, 아니면 무능력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반기문 총장을 비판하고 새롭게 선출될 유엔 차기 사무총장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능력있고 독립적인 사람이 아니라 강대국의 입맛에 맞는 수장을 뽑게 되는 유엔의 체제적 결함을 짚었다. 

그리고 반기문 총장에 대해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까지 했다. "지금까지 유엔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8명 중 유일하게 널리 존경받는 이는 콩고 독립 후의 혼란상을 수습하려 노력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스웨덴 출신의 대그 하마슐드"라며,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이 그 다음 정도일 것"이라고 평했다. 반기문 총장의 이름은 그 다음에 나온다. "사교적 성격을 가진 코피 아난의 후임자, 한국 출신의 반기문은 가장 우둔한,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하나로 보인다(South Korea’s Ban Ki-moon, his outgoing successor, is viewed as the dullest—and among the worst)."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역대 유엔 사무총장은 크건 작건 회원국들의 강력한 정치적 압력에 자주 직면했는데, 반기문 총장의 재임기는 ‘불편한 타협(awkward compromises)’이 많았던 기간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위험 회피형(risk-averse)인 반기문 총장은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위한 시도를 했지만, 자꾸 물러서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역대 총장들에 대한 서열을 매긴다면 반기문 총장은 바닥권 쪽(toward the bottom)이다. 대체로 일부 서양언론은 다그 함마르셸드(2대 사무총장), 코피 아난(7대)을 가장 상위권에 두고 있고, 그 다음으로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5대)와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6대), 맨 밑바닥엔 쿠르트 발트하임(4대)을  위치시키고 있다. 그는 나치독일 군인으로 복무한 사실이 밝혀져 유엔의 명예를 더럽혔다. 발트하임 위에 반 총장과 트리그브 할브란 리(1대) 등이 있다.

이처럼 반기문 총장에 대한 외국 언론의 평가를 보면 비판적인 기사가 너무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 뉴욕타임즈는 '힘 없는 관측자', 월스트리트저널은 'UN의 투명인간', 포린폴리시는 '가장 위험한 한국인', 워싱턴포스트는 '반 총장이 이끄는 유엔은 무능해지고 있다', 가디언은 '유엔을 심각하게 약화시킨 사무총장', "이를 어떻게 보는가. 반 총장을 동상으로 만들 만한 분이냐"고 보도했으며, 텔레그래프는 ‘지루할 정도로 꾸준한 반 총장이 한국 대통령직에 눈독 들이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반 총장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말솜씨가 없고 유엔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으로 평가받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차기 대권 주자”라고 비판했다.

반기문은 지금 대권 도전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이미 늦었지만 ‘역대 최악 사무총장’이라는 국제사회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남은 임기나마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마지막 의무다. 외신에 떠도는 ‘보이지 않는 사람’, ‘무능한 참관자’, ‘시시한 사람’ 같은 별명들이 왜 내 몸에 붙었는지 곰곰이 따져보아여 한다. 반기문 비판은 서구 언론뿐 아니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언론에서도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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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UN사무총장. 사진 제공=김관후. ⓒ제주의소리

반기문, 대권 도전 접어야  
  
반기문 총장의 전임자인 코피 아난은 모국 가나에서 유력한 대통령감으로 거론됐으나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비영리기구 ‘코피아난재단’을 설립했다. 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등 세계 원로들과 함께 ‘디 엘더스(The Elders)’를 만들어 민주주의, 평화, 인권 개선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왔다. 빈곤·기아·부패·기후변화 등 시급한 글로벌 이슈가 얼마나 많은가. 한국이 낳은 유엔 사무총장이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중재하는 데 헌신한다면 반기문 개인으로나 국가적 위상서나 얼마나 소망스러운 일인가? 

현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예멘에서는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 분쟁만도 백여 개에 이른다. 그 사이 50만 명 넘는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시간에도 숱한 아이들이 죽어갔다. 지금 전쟁 난민만도 6000만 명을 웃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 12명 가운데 1명이 난민이다. 그 가운데 51%가 아이들이다. 반기문이 사무총장이 재임기간 동안 난민이 2000만 명 늘어났다. 

그런 전쟁과 분쟁을 조정하고 난민을 돌보라고 국제사회가 권리와 의무를 맡긴 사람이 바로 유엔 사무총장의 임무다. 세계 시민사회가 짜낸 세금으로 멋들어진 집에다 활동비와 보험, 월급까지 줘가며 고용한 5년짜리 공직자가 바로 유엔 사무총장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대통령 연봉보다 많은 22만7000달러(약 2억7000만원)나 준다. 지구 총인구 71억명 가운데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자만도 24억명이다. 유엔 사무총장 연봉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 배불리 먹을 수 있을까?  바로 그 빈곤 문제도 유엔 사무총장이 풀어가야 할 가장 중대한 사안이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있으면서 출신국가의 대선 출마를 선언할 수는 없다. 유엔 사무총장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임기 이후 정치적 행보에만 관심이 있다거나, 유엔 사무총장직을 개인의 정치적 발판으로 삼는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은 임기동안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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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반기문 총장에 대한 국제적 반대세력의 비판은 반기문 개인뿐 아니라, 출신국가인 한국의 외교적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가 진정으로 논란을 잠재우기 원한다면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이다. 반기문의 메시지는 ‘기회만 되면 출마하겠다’는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지금  반기문의 행보에 뜻있는 사람들의 사선이 집중되고 있다.  /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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