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년 이슈’가 대한민국 전체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오른 가운데 제주지역에서도 청년 당사자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네 차례에 걸쳐 제주에서 함께 뭉쳐 자발적으로 공공성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청년들을 조명해봤다. 이들의 이야기가 더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편집자 주]

[꿈틀대는 제주 청년] (1) 공유공간 ‘플레이스 일로와’ 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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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스 일로와. ⓒ 제주의소리

변화가 시작된 것은 올해 3월이었다.

2011년 창업한 뒤 제주대 창업보육센터에 머물던 스타트업 ‘티는사람’은 입주기간 만료를 앞두고 새로운 거처를 찾기 시작했다. 단순한 사무실을 구상한 건 아니었다. 사무실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지만, 뭔가 다른 이들에게 내어줄 ‘공유공간’에 대한 생각이 강했다. 과거에도 사무실은 그들의 업무공간만이 아니라 청년 창업가들이 아이디어를 모으는 장소, 팩스나 프린터가 필요한 청년들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사무실을 구하되 그 곳이 청년창업가들이 자유롭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과 병행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눔’과 ‘공유’가 이들이 생각한 새로운 사무실의 모습이었다.

나름대로의 꿈을 품고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 새로운 도전을 하던 20~30대 청춘 7명으로 구성된 작은 기업에게 최근 급격히 상승한 부동산 가격은 큰 장애물이었다.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임대료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제주시 원도심을 둘러보다 빈 공간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발품을 판 끝에 점찍은 곳이 1층엔 성인게임장, 3층엔 노래방이 있는 지금의 건물 2층이다. 원래 만화카페로 쓰이던 곳이었다.

장소는 구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내부가 노후돼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했다. 이제야 닻을 올린 스타트업에게 막대한 리모델링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바로 그때, 평소 이들의 지향점과 철학에 공감하는 이들이 몰려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리모델링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음알음 전해들은 게 전부였다. 자발적으로 모여든 청년들은 가구를 만들고, 페인트칠을 하고 전기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그 숫자는 점점 불어났다.

청년들은 학업 때문에, 취업 준비 때문에, 또 직장 때문에 주로 저녁 시간 때 이 곳을 찾았다. 밤 늦기 전 약 4시간 정도가 이들이 공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압축적으로 공정을 진행했다.

땀을 함께 흘리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웃었다. 도움을 준 청년들은 고단할텐데도 피곤함을 내색하기는 커녕 오히려 함께 즐기며 동참했다. 누군가는 야식을 사왔고, 누군가는 음료수 몇 박스를 들고 왔다. 이들의 소식이 SNS를 타고 퍼지면서 물결을 이뤘다. 하나의 작은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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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스 일로와의 리모델링에는 많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페인트칠부터 바닥과 천장 마감까지 모두 그들의 손으로 해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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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스 일로와의 리모델링에는 많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 제주의소리

그렇게 40여명이 플레이스 일로와가 탄생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

6월 25일, 플레이스일로와는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들이 외면하는 공간이라던 제주 원도심에서 벌어진 작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이금재 티는사람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면 아직도 감동이 가라앉지 않는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죠. 줄 수 있는 것도 마땅히 없는데 온 몸을 던져서 우릴 돕고, 또 그 모습에 반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찾아왔고. 지금까지 기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흐름과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점들이 모여서 하나의 선이 형성된 거 같아요. 이제 앞으로 우리가 갚아나가야 할 부분이죠”

플레이스일로와의 이야기는 벌써부터 분명한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시 청년담당 부서에서 찾아왔고, 도의원이 방문을 했다. 타 지역 청년그룹에서도 관심이 쏟아졌다.

이제 이 공간은 어떻게 쓰이게 될까? 티는사람의 사무실은 전체 약 165㎡ 중 약 24㎡. 나머지는 말그대로 공유공간으로 활용된다. 사무실이 없는 프리랜서를 위한 공간이자, 예비창업가들 혹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곳, 청년들이 모여 맘껏 작당을 꾸미는 장소다.

“오픈된 공간 자체를 네트워킹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려구요. 청년들이 와서 작당을 하고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해요. 프리랜서나 예비창업가들이 여기 오시면 함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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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스 일로와의 리모델링에는 많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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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스 일로와. ⓒ 제주의소리

서울의 ‘무중력지대’나 ‘스페이스노아’와 같은 공유공간을 부러워했던 이들이라면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남은 것은 기업가들과 창업가 혹은 예비창업가들, 청년들이 모여 이 공간 안을 톡톡튀는 콘텐츠로 채우는 일. 이미 사무실 한 켠엔 예비사회적기업 ‘섬이다’가 입주했다. 시작부터 여기서 벌어질 유쾌한 ‘작당’이 제주사회에 어떤 바람을 불어넣을지 관심이 크다. 특히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낸 만큼 기대감이 적지 않다.

다음은 플레이스 일로와의 책상과 책장 등 가구를 제작한 청년 김태형(30)씨의 얘기다.

“솔직히 재미있겠단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행하다 보니 내가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내가 이 사회의 청년으로서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올곧은 일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정 페이가 아닌 열정으로 참여했죠.

어느정도 틀이 잡힌 지금 죽어라 같이 고생해 만든 공간을 다른 청년들을 위해 비워두고 가장 구석에 자리를 잡은 티는사람 직원들을 보면 옳은일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주제넘은 이야기지만 일로와가 하나의 멋지고 큰 그릇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사회의 청년들이 이 그릇이 어울릴만한 멋진 식탁을 만들고, 그 위 누군가는 이 식탁이 어울릴만한 멋진 주방, 멋진 집까지 완성한다면 제가 사는 이 사회가 아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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