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년 이슈’가 대한민국 전체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오른 가운데 제주지역에서도 청년 당사자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네 차례에 걸쳐 제주에서 함께 뭉쳐 자발적으로 공공성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청년들을 조명해봤다. 이들의 이야기가 더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편집자 주]

[꿈틀대는 제주 청년] (3) 협동조합 선택한 그들, 함께 미래 만든다

a1.jpg
▲ 지난 28일 카페 우유부단에서 열린 제주청년창업협동조합의 열여섯번째 '앞으로작당'. ⓒ 제주의소리

평일 저녁 제주시 성이시돌 목장 한 켠이 시끌벅적했다. 최근 문을 연 유기농 우유카페 ‘우유부단’을 향하는 발걸음들 때문이다. 20여명의 청년들로 카페 안은 금세 가득찼다.

모인 이들은 다양했다. 젊은 나이의 목장주부터 디자이너, 청년창업가, 수제잼을 만드는 젊은이,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의 청년들이 자리했다.

이날 주제는 우리나라 최대의 유기농 우유 생산 목장인 제주 성이시돌 목장과 예비사회적기업 섬이다(대표 김종현)가 공동투자와 협업으로 만든 ‘우유부단’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이었지만 발표는 짧았고, 참가자들 간 자유로운 대화가 주를 이뤘다. 이 젊은 청년들은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대화를 나눴다.

청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은 섬이다의 김종현 대표는 “이시돌 목장과 관련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기획이 있다면 얼마든지 문을 열어놓겠다”며 “청년들의 기획 플랫폼으로 이 공간을 생각해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작당’. 제주에서 진행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네트워킹 파티다. ‘제주생활벤처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이번이 벌써 16번째다.

매달 앞으로작당에는 자리를 잡은 선배 창업가, 타 지역의 기업인, 문화기획자, 대한민국 사회 곳곳의 혁신가들이 연사로 나선다. 제주지역 청년 창업가들의 지평을 넓혀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때로는 제주청년창업협동조합 내부의 기업들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참가자들은 이들의 모니터링 요원이자 조언자 역할을 담당한다. 기업이 갖고 있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젊은 기업가, 예비창업가 혹은 아이디어가 넘치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판을 깐 셈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프로젝트나 사업에도 도움을 얻는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다.

a2.jpg
▲ 지난 2월 25일 열렸던 '앞으로작당'. 한라봉가습기를 제작하는 제주 스타트업 PY디자인이 이 날의 주인공이었다. ⓒ 제주의소리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청년창업협동조합은 작년 7월 창립됐다. 만 39세 미만 예비창업가 혹은 창업가 30여명이 모인 곳이다. 예비 창업자들과 청년창업가들이 모여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는 차원에서 이 에너지를 바탕으로 ‘더 나은 제주’를 꿈꾸며 뭉쳤다. 관광, IT, 문화 등 각자의 영역도 다양하다.

시작은 주변을 둘러싼 고민에서부터였다. ‘왜 의식 있고 뭔가 창업을 해보려는 대학생들은 서울로 떠나는가’, ‘제주에 창업을 꿈꾸는 이 혹은 창업을 시도한 이들은 많은데 이들이 힘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지 않을까’, ‘제주에도 꽤 괜찮은 스타트업이 많은 것 같은데 같이 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없을까’.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뭉치기로 결심했고, 협동조합이라는 사회적경제 모델은 이와 밀접했다.

이제 청년창업협동조합은 네트워킹을 넘어 공동의 프로젝트나 사업을 구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청년들이 ‘각자도생’이 아닌 서로 손을 내밀어 ‘연대와 협동의 길’을 구체화 하고 있는 셈이다.

정제환(33) 제주청년창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그들의 움직임이 또다른 ‘터전’을 닦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저희 이전에도 제주에서 창업 열풍은 있었죠. 저희가 아마 2세대쯤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곧 이어 3세대도 나오겠죠. 저는 그 친구들이 봤을 때 창업가들의 협동조합이 뭔가 의미있는 일을 추진했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고 하면 큰 보람일 거 같아요”

a3.jpg
▲ 지난 달 25일 진행된 제주청년협동조합의 '리빙트래블'. '제주 자연을 도자기에 담다'라는 주제로 돌하르방공원과 복합문화공간 아일랜드살롱을 찾았다. ⓒ 제주의소리

“청년들이 비빌 언덕 만들고 싶었다”

제주청년협동조합이 출범한 것은 작년 7월.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게 취지였다. 삶의 문제들은 계속 올라오는데 이를 풀어낼 수 있는 청년 커뮤니티는 부재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도대체 제주의 청년들이 어디로갔냐’는 물음에 대해 나름대로 내린 답이다. 청년들이 느끼는 답답한 점을 찾아내고 자발적으로 모일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하나의 계기였다.

누구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같이 고민을 하던 이들이 뭉쳤다. 청소년 관련 모임, 토론 동아리, 시민단체 내 20대위원회 등 무언가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일종의 ‘욕구’가 있었던 이들이 모이게 됐다.

그 ‘욕구’는 단지 ‘좋은 일자리’, ‘돈 많이 벌기’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과 제주를 탐색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또 다른 ‘중요한 문제들’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제주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얘기들이 나왔고 제주청년 이색기행인 ‘도(島)를 아십니까’가 마련됐다. 직접 제주 신화와 역사의 현장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곳곳의 마을을 방문해 그곳이 품은 이야기를 만났다.

이는 곧 한 청년이 자신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제주 곳곳에서 풀어내는 기행인 ‘리빙트래블’로 발전했다.

제주가 ‘왜 좋은 지’, 그 숨어있는 매력을, 이 땅을 살아갈 젊은이들이 직접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a4.jpg
▲ 지난 4월 30일 진행된 '리빙트래블'. '제주여성을 상상하다'는 주제로 여성학을 공부하는 이민경씨가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진은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3리를 찾은 기행단. ⓒ 제주의소리

‘사회적경제에 대해 궁금하다’는 관심이 쏟아지자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손을 잡고 사회적경제 아카데미인 ‘청년 in 소셜 아일랜드’를 운영하게 됐다.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에 대해 강의를 듣고 서로 토론하며 실현가능한 모델에 대해 고민했다.

‘책을 함께, 깊게 읽고 싶다’는 소망들이 나오자 독서모임 ‘독야청청’을, 사회에 만연한 ‘남성 중심적인 폭력적인 시선’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나오자 여성학을 공부하는 모임인 ‘행복한 페미니즘’을 시작했다.

그들이 절실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당면한 중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발벗고 나선 셈이다. 청년들을 키우거나 청년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도움이 미비한 상황에서 이들은 스스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장봉수(29) 제주청년협동조합 이사장은 ‘청년들이 더 행복한 제주’를 만드는 데 그들의 노력이 보탬이 됐으면 한다.

“나에 대한 고민, 삶에 대한 탐색을 함께 하는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죠. 이런 흐름에서 올해는 사회적 시선과 답답한 현실 때문에 ‘숨어버린’ 청년들을 찾는 데 열중할 겁니다. 여기에 오면 ‘같이 놀 친구들이 있겠구나’, ‘소위 말하는 딴 짓을 실컷 해도 되겠구나’하는 곳이 됐으면 합니다. 사회적인 시선에서 탈피해서 여기 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펼쳐나가면 그것이 인정받는 곳이 됐으면 해요. 지금 청년들이 비빌 언덕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 비빌 언덕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